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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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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랜 친구와 같은 것이다.”

   

우리 곁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극장’을 향한 세 감독의 따뜻한 고백이 시작된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 영화 『극장의 시간들』이 오는 3월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의 개관 25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시네마 러브레터’다. 영화와 사랑에 빠진 청춘들의 기록 「침팬지」, 제작자의 시점에서 촬영 현장의 고충과 고뇌를 담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극장에서의 재회를 그린 「영화의 시간」까지, 세 가지 각기 다른 ‘극장의 시간들’을 선사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으며 작품성을 입증한 『극장의 시간들』은 김대명, 고아성, 권해효, 장혜진 등 탄탄한 연기 내공을 지닌 배우들의 합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원슈타인, 문상훈 등 그간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뜻밖의 캐스팅으로 신선함을 더한다. “어제는 웃고, 오늘은 울고, 내일은 꿈꾸는” 모두가 한 번쯤은 머물렀던 공간, 익숙하지만 잠시 멀어졌던 그곳의 시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침팬지: 기억 ≦ 시간


 

어린 시절, 주말마다 영화관에 갔다. 그게 우리 가족이 ‘화목’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내 의사가 반영되었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 시절 본 영화가 수십, 혹은 백 편 이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반의 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는 영화 선택권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 『시네마 천국』, 『굿 윌 헌팅』이지만, 가족 나들이에 이러한 취향이 반영될 리 만무했다. 인상 깊지 않으니 기억나지 않고, 더러는 러닝타임의 절반을 내리 잤다. 인제 와서는 본 것도 안 본 것 같고, 안 본 것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혹은 극장이 아닌 곳에서 봤지만, 극장에서 봤다고 우겨 보기도 한다. 기억이란 늘 이런 식이다.

 

「침팬지」의 고도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동물들의 이야기가 적힌 이야기를 읽게 된다. 거기서 거기인 당연한 말을 지나 침팬지에 대한 얘기에 눈길이 간다.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우리나라에 온 3마리 중 유일하게 살아 도착한 침팬지, 그 침팬지 이야기를 모모와 제제에게 들려주고 직접 동물원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침팬지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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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셋은 영화도 보고, 춤도 추며 모든 일상을 함께하지만, 그렇게 돈독했던 우정도 세월 앞에 속절없이 옅어진다. 우연히 다시 찾은 책방에서 다시 침팬지 이야기의 페이지를 펼쳐 보지만, 이전에 봤던 이야기는 지워지고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평범한’ 기록만이 남겨져 있다.

 

“이야기가 아니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남게 되더라고요.”

 

침팬지는 어디로 갔을까. 침팬지(chimpanzee)의 어원은 가짜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지만, 거기 있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본 시간만큼 잤기에 흐릿해 진 내 기억처럼 말이다. 다시 찾은 극장에 앉아 있는 고도의 뒤로 침팬지가 들어온다. 분명한 건 기억은 허상일지라도, 함께 했던 시간만큼은 진짜다.

 

 

 

자연스럽게: 부자연스러운 요청


 

한때 영화에 쉽게 첨언할 수 없었다. 첫 영화 작업을 마치고 난 직후였다. 감히 논하자면 영화란 변수도 한계도 많은 작업이다. 2시간짜리 영화에서 1분짜리 흠을 찾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제작의 과정에서는 최선과 차선도 없이 차악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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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를 보고 있으니 가난했던 학생 감독 시절이 떠오른다. 촬영 현장에서는 늘 말도 안 되는 요구가 오간다. 카메라가 분명 눈앞에 있는데, 없는 것처럼 생각해달라는 식의 말이 밥 먹듯이 하는 게 연기고, 영화다.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자연스러움을 요구하게 되는 모순이 그 자체로 영화적이다.

 

아이들은 비로소 카메라 밖에서 자연스러워진다. 감독이 요구하는 작은 것 하나에도 깔깔대며 자연 안에 뛰노는 아이들은 사실 카페를 더 자주 가고, 마라탕후루를 좋아한다. 감독이 ‘자연스러움’ 혹은 ‘아이다움’은 연출이지만, 한편 우리는 그것이 만들어진 연출에 불과하다 해도 때론 감동한다. 감독은 그저 그 괴리 속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요구를 자연스럽게 번역할 방법을 궁리할 뿐이다.

 

 

 

「영화의 시간」: 우연히 환대받길


 

주인공 ‘영화’와 ‘우연’은 오랜만에 극장에서 재회한다. 극장 청소부로 일하는 우연은 영화에게 영화(Movie)를 보며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매니저의 호기로운 추천과 달리 영화는 지루하고, 객석의 관객들은 하나둘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 정적을 깨고, 잠든 관객을 앞에 두고 감독이 무대에 올라 기묘한 열변을 토한다.

 

“우리는 영화를 잘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

 

영화가 영화 보는 걸 방해한다니, 이런 역설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 대사로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너무 기대했기에, 혹은 잘 감상하고 싶어서 오히려 관람을 미뤘던 날들이 생각난다. 2만 원 가까이 되는 티켓값을 투자할 만한 영화일까 싶어 재고 따지다 작품이 스크린에서 내려가면 아쉬워한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작 영화를 잘 모른다는 자격지심에 쉽게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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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 ‘영화’처럼 우연에 손에 이끌려 무작정 극장에 가고 싶어진다. 어릴 적 본 영화의 줄거리는 가물가물해도, 그때의 극장 풍경만큼은 또렷하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 어렵게 자리를 선점하고, 팝콘과 콜라를 품에 안은 채 지류 티켓을 ‘끊어’ 상영관에 들어가던 그 설렘 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극장에서 ‘환대받는다’는 기분을 잃어버렸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던 아마추어 평론가들의 투박한 후기도 듣지 못하고, 엔딩 크레딧처럼 꼬리가 긴 여운도 사라졌다.

 

이 영화의 제목은 왜 ‘극장의 시간’이 아니라 ’극장의 시간‘들’일까. 이 복수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한때는 같은 극장에 있었던 우리들의 시간을 포괄하는 단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우리의 기억 속의 극장은 결코 영화만 보는 곳은 아니었다.

 

영화의 로케이션인 씨네큐브에 앉아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인 동시에 영화의 주연이자 조연이 된 것 같은 묘한 일체감을 느낀다. 티켓 한 장 가격이 OTT 한 달 이용권으로 치환되기 쉬운 요즘, 그럼에도 아직 극장에 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극장의 시간들』같은 영화가 더 많아진다면, 더 자주 기꺼이 극장을 찾을 것이다. 오랜만에 온전하게 환대받는 기분을 만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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