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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4일 류연수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보이 인 더 풀>이 개봉한다. 수영을 좋아하는 13살 소녀 석영과 물갈퀴를 가진 12살 소년 우주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 성장 드라마다.

 

갑작스러운 이사에 석영은 불만이 가득하다.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고, 작은 동네에서 수영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엄마와 다툰 후, 무작정 찾아간 수영장에서 자기보다 한 뼘 작은 소년 우주를 만난다. 서툰 관심의 표현으로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석영은 우주에게 평생 함께 수영하자고 말하지만, 결국 재능이라는 벽은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시간이 흐르며 어린 날의 약속은 희미해지고, 우주의 물갈퀴도 점점 옅어져 간다.

 

<보이 인 더 풀>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며 연출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감정과 짜증 섞인 덥고 습한 사춘기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위태롭게 일렁이던 그 시절의 여름, 청춘을 담은 <보이 인 더 풀>의 시원한 물내음이 불어온다.

 

 

 

물갈퀴로 여름을 헤엄치다


 

여름, 소년과 소녀, 성장과 사랑.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문법이다. 그러나 <보이 인 더 풀>의 그것들은 새롭다. 류연수 감독은 GV를 통해 해당 시나리오는 대학 시절 집필한 단편으로 지금보다 스토리라인이 더 단조로웠다고 말했다. 그때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면 ‘물갈퀴’다. 출품을 앞두고 장편화 하는 과정에서 ‘물갈퀴’라는 소재가 불현듯 떠올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물갈퀴는 ‘킥(Kick)’이 되었다. 어쩌면 치고 빠지는 게 아니라 이것을 빼고는 영화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곳곳에서 그 역할을 다한다. 석영과 우주를 연결하는 비밀, 꿈을 위한 도약, 재능의 비극. 영화를 성실히 헤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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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슈퍼


 

영화에서 딱 두 번 윤아슈퍼의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13살 석영에게 한 번, 18살 우주에게 한 번. 안부는 묻고 싶은데,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나마 나은 할머니를 찾는다.

 

 

- 할머니는 잘 계시니?

 

 

공교롭게도 묻는 시점에는 이미 돌아가신 후다. 무안한 마음에 슈퍼 귀퉁이에 있는 간식을 챙겨준다.

 

윤아슈퍼는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을 위한 마음의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살던 도시를 떠나 탐탁지 않은 석영과 타지에서 살다가 돌아갈 집이 없어진 우주를 반겨준다. 스치듯 지나가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어딘가 있었으면 하는 곳이다.

 

 

 

독립영화, <보이 인 더 풀>


 

<보이 인 더 풀>은 독립영화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간에 선호는 없지만, 각각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독립영화에 바라는 것은 실험과 도전이다.

 

신선함은 어렵다. 갓 잡아 올린 물고기에게 길어야 하루다. 신선함에는 기약이 있다. 그러나 매일 새로 잡아도, 매번 같은 것을 잡으면 신선하지 않다. 관객은 독립영화는 새롭기를, 신선하기를 바랄 테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 어디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지가 고민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류연수 감독이 꺼내 든 카드 중 하나는 석영 역을 맡은 효우다. 효우는 댄스 크루 ‘훅(HOOK)’의 멤버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하여 대중에게 얼굴을 보인 바 있다. 감독은 당시 연기가 가미된 댄스 무대를 통해 그녀를 눈여겨봤다고 했다. 비전공자인 신인 배우에게 주연을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석영’을 구현하고자 기꺼이 새로운 얼굴을 세웠다. GV에서는 “연극, 뮤지컬과 다르게 스크린 연기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성패와 상관없이 새로움을 향해 기꺼이 뛰어든 감독의 태도가 독립영화의 실험성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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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의 시선


 

영화를 보면서 석영은 확실히 우주를 좋아하는데, 우주는 석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영화의 대사가 적은 편이기도 하고, 석영에 비해 우주는 감정 표현이 적은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석영을 의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성으로서 생각하는지 모호한 면이 있었다.

 

류연수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두 사람에게 이성 간의 호감 혹은 그 이상의 감정이 있지만, 본인은 멜로 표현에 있어 보수적인 편이라고 언급했다. 확실히 절제된 감이 있다. 한편, 우주 역을 맡은 이민재 배우는 우주가 석영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해석했다. 물갈퀴가 옅어지고, 기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연애보다도 눈앞의 상황이 급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감독과 이민재 배우 간의 미세한 해석의 차이가 ‘우주’를 더 입체적이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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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해. 정정당당하게, 물갈퀴 없이!


 

영화와 GV를 함께 관람한 입장에서 <보이 인 더 풀>은 꽉 닫힌 결말이다. 우주가 수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물갈퀴는 서서히 옅어진다. 재능처럼 보였던 물갈퀴는 대회에 나갈 수 없는 ‘결격사유’가 되었고, 우주는 석영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시간이 흘러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집으로 돌아온 석영이 아쿠아리움의 잠수부로 일하는 우주와 재회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말에는 우주를 보고 싶은 석영의 바람이 담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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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수 감독은 물갈퀴를 ‘재능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재능은 겉보기에 좋아 보일지라도, 이를 통해 성공하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재능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재능의 비중이 큰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감독이기에 이를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듯 하다.

 

대회를 앞두고 우주는 물갈퀴를 잘라낸다. 이민재 배우는 우주가 오히려 홀가분할 것이라며, 실제로 해당 장면을 연기하면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명의 관객으로서 조금 다른 소회가 남는다.

 

우주가 옅어지다 못해 결격사유가 되어버린 물갈퀴를 잘라낼 때, 지난 시간 동안 여러 이유로 잘려 나간 물갈퀴들이 떠오른다. 있으나 마나 한 장점, 기준에 들지 못하는 능력, 그 애매함 앞에 잘려 나간 꿈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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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먼저 잘라낸 사람은 석영이다.

 

우주를 체고(체육고등학교)로 데려가고자 하는 코치가 석영을 보며 “저 정도 실력을 가진 애는 널렸다.”라고 말했을 때, 석영은 자신의 물갈퀴를 자르고 수영을 그만두었다. 이전에 입상한 경험이 있음에도 말이다. 열정적이던 13살의 석영과 담담하면서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19살 석영 사이의 간극은 그가 2007년 여름에 자기 일부를 두고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이 인 더 풀>의 진짜 결말은 오랜 시간을 지나 석영이 다시 수영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수영장에서 모르는 여자애가 말을 걸어온다. 나름 수영으로 알아주던 석영에게 훈수까지 둔다. 어린아이가 첨언할만한 그 정도의 재능일지라도 석영을 헤엄칠 것이다.

 

물갈퀴가 없어도 아가미가 없어도 사람을 수영할 수 있다. 대신 숨은 더 짧게 쉬고, 팔은 더 멀리 뻗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 단단한 석영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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