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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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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은 영화 ‘주토피아2’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화제의 ‘주토피아2’가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전보다 썰렁해진 극장이지만, 올해는 애니메이션들이 힘써 온기를 싣고 있다. 지난 26일 개봉한 ‘주토피아2’는 시즌1에서 약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현실에서는 시즌1이 개봉한 이래로 10년이 지났는데, 하루가 1년 같고 1년이 하루 같은 계산법이 아닐 수 없다.

 

주토피아를 위기에서 구한 주디 홉스와 닉 와일드는 이제 막 짝을 이룬 햇병아리 파트너다. 피식자와 포식자, 멍청한 토끼와 교활한 여우(혹은 그 반대), 적대적으로 보이는 두 종이 같은 방향을 향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주토피아적인 상상력이다. 주디와 닉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조합이지만, 사실은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콩깍지가 벗겨지기 다소 이른 시기지만, 벌써부터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둘은 분명 다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2016년, ‘주토피아’가 개봉하자마자 주디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 뒤에 숨겨진 대범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주토피아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된 주디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주토피아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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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토피아2 스틸컷 ©Disney

 

 

10년이라는 시간이 단 일주일로 압축되었기에 주디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나는 이제 그의 등을 맘 편히 밀어줄 수 없는 어른(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이 되었다. 영화 초반, 사건 해결에 집착하는 주디의 모습에서 느꼈던 감정은 시즌1에 느꼈던 것이기보다 ‘인사이드 아웃2’의 불안이를 볼 때와 더 비슷했다.

 

특히 주객이 전도된 듯한 맹목적인 믿음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주디가 경찰이 된 것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오히려 주변을 돌보지 못하고 닉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방향이 어긋나면 그 간극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진다. 그럴 때는 빠른 게 독이 된다. 정의 앞에 타협하지 않는 주디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가 바라는 사랑은 우정과 닮아있다



주디와 닉의 관계가 사랑인지, 우정인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주토피아2’를 보며 오히려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바라는 사랑은 우정과 닮아있다.

 

일상에서 연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상대에 친구를 대입하면 오히려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한다. 연인에게는 쉽게 요구하는 것들을 친구에게 바란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욕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과 우정은 다르다고 반박할 수 있지만, 둘은 택일의 관계가 아니라 안정적인 사랑으로의 교집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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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토피아2 스틸컷 ©Disney

 

 

주디에게 주토피아의 평화는 가장 중요한 이상이었고, 그것을 닉과 함께 이루고 싶어 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조금도 마음을 굽히지 않는 태도가 닉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다는 것도 좋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도 있다. 그건 ‘무언가’가 아니라 ‘함께’에 초점을 맞출 때 가능해진다. 흔히 말하는 ‘마가 뜨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다. 보답받지 못해도 상처받지 않는 우정은 사랑의 베일을 쓰고 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이다.

 

닉과의 파트너십에 있어 흔들리는 주디에게 주디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

 

우리는 종종 사랑 속에서도 승부를 내려 한다. 말싸움에서 이기려 하고,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한다. 그러나 하트는 대칭이다. 어느 한쪽이 비대해지는 순간, 사랑은 그 형태를 잃는다. 그러므로 ‘바라지 않음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 부를 것이다.

 

 

 

포옹의 99가지 형태



닉(여우)과 포버트(스라소니)는 둘 다 토끼의 포식자이지만, 영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 다름은 때론 매력이 되기도, 위협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과 혐오가 일어난다. 어쩌면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더 넓게는 다름의 양극단에 서 있는 존재가 최고의 파트너가 되는 결말은 가장 유토피아적인 관점일 것이다.

 

영화 속 캐릭터의 설정이 실제 동물의 특성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이 놀랍다. 링슬리 가(家)는 영역 동물인 스라소니답게 자기 구역을 넓히는 데 집착한다. 반면, 게리(살모사)는 변온동물이라 온기에 민감하다. 또한 다른 동물을 휘감는 행위는 위협이 아닌 온기를 구하고 신뢰를 표하는 제스처, 즉 포옹으로 재해석된다.

 

영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문득 어릴 적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뱀띠지만, 그때는 막연하게 토끼띠가 되고 싶어 하거나, 고양이띠는 없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그러나 자기 독 때문에 해독제를 들고 다니는 무해하고 다정한 게리 덕에 이제는 ‘뱀’이라는 동물이 새롭게 보인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처럼, 포박이 ‘포옹’으로 보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을까. 주토피아의 세계관을 완성하기 위해 제작진이 동물의 생태를 얼마나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연구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노고 끝에 세상에 나온 ‘주토피아2’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에는 스쳐 지나가는 것에서 귀여움을 발견하고 싶어졌다.

 

오래 기다린 만큼 이번 작품이 주디와 닉의 관계성에 집중되길 바랐던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 주토피아의 서사는 사랑받기 충분한, 귀여운 토끼와 여우의 조합으로 완성된다. 귀여움이 최고의 서사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주토피아는 그보다 더 넓은 포용을 선택했다. 다양한 동물들을 바라보며 결국에는 사랑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경험이 이번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쿠키 영상으로 주디와 닉을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여지도 생겼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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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은 시리고 연약한 부분을 덮어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기술과 도구가 매서운 추위를 막아주는 시대에도, 이상하게 어딘가 모자란 1%의 비밀은 포옹에 담겨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더 큰 위로가 된다.

 

게리의 포옹을 보면, 언어만큼이나 포옹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포옹하려면 둘은 필요하고, 큰 일을 내려면 셋은 필요하다. 막혀버린 관계의 벽을 허물고 거센 추위를 견디려면 적어도 넷은 필요할 것이다. 이기는 것보다 함께하길 택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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