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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쉰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때가 바로 쉼이 필요한 때다.

 

최근 ‘쉬는 청년’들이 12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혹자는 청년들이 게으르다, 눈이 높다고들 말하지만, 120만 명 중에 한 명으로서 제대로 된 명함 하나 없이 살아가는 한 사람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한지 잘 안다. 쉬는 것보다 잘 쉬는 게 중요한 때이다. 자취 4년 차, 유명한 집순이인 나는 홈프로텍터로 전향했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두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시간 끝에 오늘이 되었다. 이 쉼은 우연이 아닌 온전한 선택이다. 뒤처질까 하는 조바심에 주말도 편히 보내지 못한 이들에게 홈프로텍터로 잘 살고, 살 쉬는 법을 공유하고 싶다.

 

 

 

환경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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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보다 먼저 공간이 정리되어야 한다. 되고 싶은 ‘모습’에 앞서, 그 모습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시작은 ‘정리’다. 공간을 비워야 그 안에 취향이 스며든다.

 

공간에는 역할이 필요하다. 코로나 학번으로 입학해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그 시기에 나는 책상에서는 집중이 안 되고, 침대에서는 쉬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 모를 피로감에 시달렸다. 돌아보면 공간의 역할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노트북을 열어 수업을 듣고, 정돈되지 않은 책상에서 할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때, 공간을 분리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만, 움직이는 대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선도 중요하다. 동선에 따라 필요한 물건들이 배치되면, 생각도 정돈된다. 결과적으로 뇌의 피로를 줄여준다. 이러한 환경이 유지되려면 물건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맥시멀리스트인 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살 때는 한 번 더 고민하는 습관을 들였다.

 

홈프로텍터의 장점은 환경을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순간도 있다. 첫 자취를 시작했던 집은 학교와 가깝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었다. 누수, 벌레, 노후한 시설의 집합체였다. 집을 꾸미고 싶은 마음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넘기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다음 집을 고를 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지금 있는 내 공간을 바꾸기 어렵다면 아지트를 개척해 보자.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에 오랜 시간을 머무는 일은 자기 파괴에 가깝다. 주변에 조용한 카페나 공유 오피스, 혹 비용이 부담된다면 도서관도 괜찮다. 잠시 머물 공간은 생각보다 많다. 마음 가는 곳이 좋은 곳이다.

 

 

 

무료함과 친구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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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프로텍터의 삶이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 어색한 순간이 도둑같이 찾아온다. 이 불안함을 견디기 어렵다면, 홈프로텍터는 적성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모두가 이 직업(?)이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알고도 홈프로텍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는 무료함과 친해져야 한다.

 

무료함은 진실한 취향이 발향지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야 말로 내밀한 욕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평소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타인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 보자. 아마도 처음에는 막막할 것이다. 그럼, 눈에 보이는 것부터 따라 해보면 된다. 유행하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무언가여도 상관없다. 다만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야 한다. 즐거운가. 편안한가. 계속할 것인가.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다른 걸 찾으면 그만인 것이다.

 

무료함과 친해지기 위한 두 번째 전략은 ‘적당한 유료함’이다. 유료라는 말 그대로 돈을 쓰는 것,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집에만 있는데 왜 돈이 나갈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취향을 찾았으면 응당 소비가 필요하다. 책, 운동 장비, 취미 도구 등 대부분은 ‘약간의 유료함’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홈프로텍터도 여전히 사회적 동물이다. 의식적으로 사람들과 만나며 생각과 감정이 고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정으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찾는다. 그래야 혼자인 시간은 더욱 빛을 발한다.

 

 

 

홈프로텍터는 계약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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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프로텍터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백수다.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명확한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 어영부영 이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면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휴식의 양, 재정적 여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자. 여기서 목표는 꼭 생산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나를 비우는 것’이 좋은 목표가 될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쉴 때이다.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 홈프로텍터의 삶을 청산하더라도 온전히 쉬길 바란다. 해야 할 일 앞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것, 쉬는 시간에 일 생각을 하는 것. 머리는 복잡하고, 몸은 누워있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시간이 없다. 쉬기로 정했다면, 제대로 쉬자.

 

나의 쉼이 오늘도 쉼을 필요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 쉼으로 도피하지 않길, 쉼을 선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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