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식용곤충 연구·관리 위원회 청년스마트팜 신개발유용곤충육성 분양지원 사업 안내>
1. 빵충이란
2. 형태적 특성
3. 생장 주기
(중략) … 빵충의 안정적인 생산과 품질 유지를 위해 본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주시길 바랍니다. (중략)
13. 빵충 사육 준수 사항
(1) 번데기 발견 즉시 제거 및 회수 조치
(2) 빵충 개량 금지
(3) 사육 환경 소음 통제 및 유지
(4) 빵충의 성충 단계 사육 금지
(5) 빵충 출하 관리 규정
망했다. 김정한의 인생을 한 단어로 줄이자면 바로 그렇다. 망하고, 망하고, 또 망했다.
트럼펫터로 평생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지만 트럼펫을 불면 불수록 그의 앞에 모습을 드리운 것은 불안정한 소득과 미래뿐. 수년간 사귀어온 여자친구에게도 차이고, 그나마 약간의 음악 활동이라도 이어오던 밴드 ‘타바콬’에선 동료들에게 배신당한 뒤 손절. 옥탑방 옥상에서 몰래 재배해 동료들과 피워오던 푸른 대마만이 그의 곁에 남았지만, 그마저도 모두 털어 팔아치우고 나니 수중에 남은 것이라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전 여자친구가 알려준 국가 취업지원센터에 면담하러 온 어느 날, 정한에게 상담사가 던진 건 어쩌면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를 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귀농 어떠세요?”
그렇게 3억을 대출받고, 시골로 내려가고, 땅을 사고, 집을 구하고, 비닐하우스를 짓고, 설비를 설치하고, 딸기 모종을 심고… 하지만… 평생을 붙들어온 트럼펫을 포기하고 용감하게 새 출발을 했으니 결과도 그만큼 용감하게 돌아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태껏 망해오기만 한 인생답게 야심차게 시작한 딸기 농사마저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쪽박을 차고 만다.
망하고, 망하고, 여지없이 또 망해 이젠 정말로 눈앞이 캄캄한 정한의 앞에 한 줄기 빛이 내리쬔 것은 바로 그때였다. ‘청년스마트팜 신개발유용곤충육성 분양지원사업’. 무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미래 대체 식품으로서의 식용곤충 재배 사업.
그러나 신사업 교육을 들으러 찾아간 정한의 앞에 공무원들이 내보인 것은 누가 봐도 노릇하게 익어 갈색빛을 띠는, 영락없이 맛있어 보이기만 하는 빵이었다.
“이게… 곤충이라구요?”
김혜영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편소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이 최근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먼저 선보인 후 현장에서 초판이 모두 소진되었던 화제의 신작.
작품은 밑바닥까지 내려간 주인공 정한이 마지막 동아줄로 신종 식용 애벌레 ‘빵충’ 재배 사업에 뛰어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공적으로 개발되어 갓 구운 소금빵과 외형도 맛도 똑같은, 그러나 결국 속은 곤충이기 때문에 밀가루는 없이 단백질로만 가득 찬 꿈의 식품. 몸에 좋은 음식은 입에는 쓰다는데, 몸에도 좋고 맛까지도 좋은 빵충은 당연하다는 듯이 전 국민의 열광적인 러브콜을 받는다. 빵충으로 만든 디저트 열풍이 전국을 휩쓸면서 정한은 처음으로 짜릿한 성공을 거두지만, 어쩐 일인지 이 달콤함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언뜻 나폴리탄 괴담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의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은 실제로 괴담과 유사한 틀을 따른다. 정한을 포함해 빵충 사육에 뛰어든 사람들은 고수익이라는 보상을 얻지만, 그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판매가 가능한 건 번데기가 되기 전 유충 상태에서의 빵충뿐. 번데기가 된 빵충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할 것. 점검 시에는 반드시 담당자의 지시에 따를 것. 살아 있는 빵충은 바깥으로 유출하지 말 것. 그리고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빵충을 성충으로 변태시키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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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의 이번 작품은 빵충이라는 언뜻 뜬구름 같기도 한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파헤치고 꼬집는다. 서른 즈음 뭐라도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 모두가 똑같이 ‘정상’적인 인생 궤도에 올라야 하는 세계. 그를 위해선 해보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 한눈파는 것은 시간 낭비이거나 사치가 될 뿐인 세계. 발버둥 치는 청년층, 끊임없는 경쟁, 무책임한 관료들, 약자 멸시, 인종차별, 책임과 무책임, 죄와 양심, 선과 악.
흥미로운 소재와 주인공 정한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으로 흡입력 있게 전개를 이끌던 작품은 어느 순간 끝내 부화하고 만 ‘성체 빵충’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장르를 전환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이 현재와 과거, 시점과 시점을 자유자재로 오고 가며 긴박한 서스펜스를 선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현실을 꼬집는 짙은 블랙코미디 코드는 한 촉의 화살처럼 여전히 날카롭게 작품 전체를 꿰뚫는다.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져 배설되듯이 태어나는 빵충들. 채 자라나지도 못한 알과 애벌레를 산 채로 씹어먹는 인간들.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들과 광장 없는 공동체. 정녕 빵충이 모든 문제를 몰고 온 원흉이라면, 빵충이 등장하기 전의 세상은 흠결 없는 곳이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를 위협하는 진정한 위협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