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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사라질 것들에 대한 찬사 - 표기식 사진전: 빛은 어떻게 떨어졌길래 모두 다르게 반짝여서 [전시]

고요에 도달하는 시간

by 이상아 에디터
2026.10.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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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을 받아내는 세계의 표정은 매 순간 달라진다. 그날의 바람과 해의 위치, 공기의 습도에 따라 물결의 모양이 바뀌고 계절을 건너는 나무는 어제와 다른 색으로 빛난다. 느리게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 변화는 빠르게만 느껴지고 우리는 그 차이를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표기식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앞에 멈춰 설 줄 아는 사진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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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기식은 디자인을 전공하여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3년 사진작가로 데뷔하였다. 샤이니, 이찬혁 등의 앨범 촬영을 비롯해 인물사진, 영화, 잡지, 브랜드 작업 등 폭넓은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다. 지난 9월 23일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에서 개막한 표기식 사진전 <빛은 어떻게 떨어졌길래 모두 다르게 반짝여서>에서는 그가 오래도록 바라본 빛과 물, 나무와, 고양이 그리고 곧 사라질 풍경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하는 상업 사진의 세계와 달리 그의 개인 작업은 서두름이 없다. 대상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고, 익숙한 풍경이 낯선 표정을 보여주는 순간에 집중한다. 표기식의 시선이 만들어낸 사진 속에는 고요와 사색이 가득하다.

       

       

       

      오랜 기다림


       

      사진은 흔히 찰나의 예술이라고불린다. 그러나 그의 사진 속에서는 한 번의 찰나보다 그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축적된 시간이 느껴진다.


      작가는 같은 나무 한 그루를 반복해서 촬영했다. 나무에 묻는 해와 찰나의 바람을 담아내고 봄의 꽃잎,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햇볕, 겨울의 순수함을 담아내었다. 그는 그저 나무를 찍을 뿐이었지만, 그 속에는 해가 가려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 계절의 변화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표기식의 시선은 ‘기다림’이 되고 반복된 방문은 그만의 작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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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촬영하는 일도 그에겐 습관처럼 배였다. 십여 년 동안 한강을 찾아가며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물의 표정을 관찰했다. 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듯해 보이지만 여름과 겨울의 물은 확연히 다른 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해의 각도와 바람이 달라지면 윤슬의 크기와 밀도도 수시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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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물결에게 멈추라고 할 수도, 원하는 곳에 빛을 떨어뜨릴 수도 없다. 나무가 흔들리는 방향도 인간이 만들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같은 장소를 다시 찾고, 대상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찰나를 찍기 위해 기다리는 다른 사진작가들에게 촬영 전의 기다림은 공백이다. 하지만 표기식에겐 공백이 아닌 대상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시간이다. 그는 작품을 사진 속에 담아내기 위해 대상들과 관계를 맺고 대상이 빚어내는 찰나를 담기 위해 긴 시간을 여행한다.

       

       

       

      풍경을 지우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시선


       

      표기식의 윤슬 사진에는 한강이라는 표식이 보이지 않는다. 다리도, 강변의 건물도, 산책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한강 물의 표면 가까이 다가가 물결과 빛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장소를 설명하는 정보가 사라지자 매일 보며 익숙하던 한강은 전혀 다른 세계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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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사용하는 과감한 클로즈업은 단순히 대상을 크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그는 넓은 풍경 대신 그 안에서 발견되지 않던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 물결 위로 눈이 부시게 부서진 빛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때론 쪼개어진 금속처럼 보이고, 때론 추상화의 붓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멈춰있는 물의 형태는 상상 속에서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고, 사진 속에는 담기지 않은 또 다른 빛들이 부서질 것만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매일 보아오던 물이 그의 프레임 안에 담겨 우리의 시선 속에서 낯선 형태와 색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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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남들과는 다르게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거대한 숲 대신 나무의 시간이 만들어낸 빈틈을 바라보고, 철거를 앞둔 아파트 대신 그 사이를 거니는 고양이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나무들을 발견한다. 어떠한 장소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시선에서 더 깊숙이 바라보고 그 속에 있는 생명체들을 섬세하게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대상 안에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하는지 느끼게 해준다.


      그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확인하기보다 지금까지 무엇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애도


       

      작가의 시선에 머무는 대상들은 한 상태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물결은 찰나의 순간에 형태를 바꾸고, 윤슬은 해의 위치가 달라지면 사라진다. 나무는 계절마다 잎을 피우고 떨어트리며, 인간이 만든 건축물은 재건축 앞에 그 의미를 잃어 이전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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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기식 작가의 사진 속 대상은 현실과는 다르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 속 존재들은 사라지기 전 얼마나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지 증명한다. 현실에선 사라졌지만, 사진 속에선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을 슬픔으로 애도하기 보다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선에는 슬픔만이 머물지 않는다.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지 않은 순간에도 그곳에 존재했기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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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빛은 어떻게 떨어졌길래 모두 다르게 반짝여서> 전시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고요 속에서 사색할 수 있게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흑백의 빛이 더욱 잘 느껴질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핀 조명을 활용해 사진을 돋보이게 하거나, 우드를 활용하여 전시장 전체를 진짜 숲속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특히 메인 사진이라 할 수 있는 윤슬을 표현한 사진들은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활용하고 마치 파도처럼 배치된 사진들을 통해 더 큰 물결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강렬한 사건이나 서사 대신 사진 속에 있는 대상을 직접 느끼게 하여 전시장 전체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대상의 결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빛을 오래 바라보는 동안, 전시장 밖에서 빠르게 흐르던 시간은 점점 느려진다. 마치 작가가 사진을 찍을 때처럼 우리는 기다림 속 고요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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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질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그것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존재하고 있음을 온전히 알아보는 일이다.


      변화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말하는 것 같은 작가의 사진은 소유가 아니라 관심이 되고, 기록은 보존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다. 표기식의 시선이 화면의 중심으로 불러온 존재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사라짐에 대한 기록이며, 사라지기 전의 모든 순간을 향한 찬사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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