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변환][크기변환]3.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_평면표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21003846_andlnldw.jpg)
올해에만 벌써 일곱 번을 방문했을 정도로 덕수궁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요즘, 계절에 따라 풍경은 조금씩 달라져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덕수궁은 언제 찾아가도 좋은 장소다. 그런데 덕수궁을 찾을 때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궁궐을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 외국인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K-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진 영향일까.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궁궐과 같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찾는 외국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다는 사실이 반갑고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정작 우리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너무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역사책을 통해 궁궐과 유물의 이름을 배우고, 수학여행을 통해 역사적인 장소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해온 것들은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궁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석탑 하나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견뎌왔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앞에 서면 사진 한 장만 찍고 지나치기 쉽다. 너무 많이 들어왔고,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반면 궁궐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그들에게 궁궐의 건축물 하나, 오래된 유물 하나는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품은 대상이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문화유산의 익숙함에 사로잡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책이 있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약 30년간 공공기관과 협업하며 한국의 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 서헌강의 사진 에세이다. 책에는 널리 알려진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유산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담겨 있다. 사진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한 장의 사진을 찍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오랜 시간 문화유산을 마주하며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기록해왔는지를 함께 들려준다.
궁궐은 어쩌면 영원히 미지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포맷변환][크기변환]cskkkk-gyeongbokgung-palace-749049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8/20260821003920_glvehrwc.jpg)
궁궐은 갈 때마다 내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매번 같은 공간을 들어서면서도 매번 새로운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 · · 날씨가 살짝 바뀌기만 해도 아름답고 평온한 궁궐에는 어느새 권력을 둘러싼 영욕이 서린 삶이 가득해지고, 비운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가슴 시린 삶이 가득해진다. 오랜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시시각각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는 궁궐은 어쩌면 내게 영원히 미지의 공간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p.44
덕수궁을 자주 가는 편이다 보니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덕수궁을 좋아하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덕수궁의 모습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 대답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내가 덕수궁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같은 장소를 찾아가도 그날의 날씨와 계절, 나의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햇빛을 받아 고요하고 평온한 공간으로 보이다가도, 또 다른 날에는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삶이 떠오르기도 한다.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매번 다르다. 몇 번을 찾아가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덕수궁을 생각하면, 저자가 궁궐을 ‘영원히 미지의 공간’이라고 표현한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들의 사진
사진 한 장 한 장이 감탄을 자아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물렀고 책을 덮은 뒤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들의 사진이었다. 유물이나 건물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아 있는 문화유산과 달리 무형 유산은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 그렇기에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기 쉬운 문화유산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진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분들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오래 바라볼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눈빛이었다.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을 바라보는 눈에는 여전히 선명한 열정이 있었고, 손과 몸에는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이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름진 얼굴과 굳은 손, 표정 하나하나에서 그들이 살아온 세월과 그 시간 동안 지켜온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사진을 통해 기술이나 작품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어온 사람의 삶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에는 한평생 자신의 일을 지켜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무형 유산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기술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에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의 시간까지 함께 기억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부를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책을 읽는 동안 처음 마주하는 장소와 유산이 많았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던 문화유산에서도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화유산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 과정에는 한 장의 사진을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려온 저자의 오랜 노력이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와 순간이 사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에서 마주한 것은 문화유산의 새로운 모습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한 대상을 바라보고 기록해온 한 사람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화유산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