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작·연출 대표작, 연극 <꽃의 비밀>이 돌아왔다. 2025년 이후 약 1년 반 만에 또다시 서울 대학로에서 관객을 만나는 <꽃의 비밀>은 ‘장진식 코미디’의 가장 유명한 레파토리 중 하나다. 2015년 12월 초연된 후 10년간 꾸준히 무대에 오른 <꽃의 비밀>은, 2026년 여섯 번째 시즌을 맞아 젠더프리 캐스팅을 시도하며 파격 변화를 예고했다.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네 명의 아내들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남편으로 남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동극이자 코미디극이다.
2026년 8월 19일, 서울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연극 <꽃의 비밀>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황석정과 안두호를 제외하고 장진 감독을 비롯한 출연진 전원이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선, 작품에 임하는 이들의 솔직한 의견이 오갔다. 다양한 연기 경력을 가진 배우들의 합류 소감, 12년 전 대본 집필 단계부터 젠더프리 캐스팅을 구상했다던 장진 감독의 연출 의도, 장진과 배우들의 질의응답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기자간담회는 작품 집필과 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의 진행으로 약 1시간 동안 이어졌다. 10년 동안 작품이 올라온 것에 감사하다며 말문을 연 장진은 “거의 모든 배우가 새로운 캐스트이며, 네 아내 역을(소피아·자스민·모니카·지나) 남성 배우들도 연기하는 것이 이번 시즌 가장 큰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장진은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해 “2014년 대본 집필 당시, 남자들이 여장한 채 시작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이미 했었다고 밝혔다. “성지루에게 대본을 주기도 했었는데, 주변 우려로 시행 못 했지만 이번엔 큰 용기를 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맏언니 소피아 역 세 배우 중에서도 가장 선배인 정경순은 “초연 때 인상 깊게 작품을 봤고, 하고 싶었다”라며 “그땐 자스민을 하고 싶었으나, 이번엔 흔쾌히 소피아를 하겠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전부터 장진과 작업하고 싶었다던 정경순은 “연극에선 슬랩스틱 코미디를 해본 적이 없다”라며 “첫 코미디 도전을 다 함께 즐겁게 하고 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초연 당시 가장 먼저 대본을 받아봤다던 성지루는 “대본을 잘못 보낸 게 아닌가”라 생각했었다며 솔직한 소회를 밝혔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염려돼 당시엔 제의를 거절했다던 성지루는 “초연 땐 공연계에 젠더프리 캐스팅이 많지 않았고, 젠더프리에 대한 모두의 이해도 부족했던 때였다”라며 “하지만 이번에 장진 감독과 <불란서 금고>를 같이 하며 <꽃의 비밀>도 함께 해보고 싶었다. 또다시 도전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초연에도 소피아를 연기했던 추귀정은 10년 만에 다시 합류한 소감에 대해 “배우가 10년 전에 한 역할을 또 할 수 있는 건 큰 영광이다”라며 “새롭게 캐릭터를 만든단 생각보단 초연 멤버로서 책임감이 더 앞선다”라고 답했다. 추귀정은 작품에 대해 “우리 작품 배우들의 평균 연령이 시즌을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10년 후에도 <꽃의 비밀>이 여전히 올라온다면 70대 배우들과 함께 이탈리아 실버타운 이야기도 그리고 싶다”라며 꿈을 이야기했다.
유쾌한 술주정뱅이 자스민 역에 남성 배우로 캐스팅된 정웅인은 “대학 동기 장진은 학생 때부터 천재적인 글솜씨로 유명했다”라며 서울예대 동기 장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장진과 함께 <서툰 사람들>, <얼음>을 공연했었던 정웅인은 “장진은 배우가 개인기를 할 필요가 없는 글을 쓰는 작가다”라며 “남성 배우로서 처음으로 자스민을 연기하게 돼 두렵기도 하지만, 열심히 연습하며 캐릭터의 습관·목소리 톤을 구축하고 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자스민이 된 것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않은 유선은 “2025년에 <꽃의 비밀>을 처음 접했는데 바로 재관람할 정도로 재밌게 봤다”라며 “자스민 역을 했던 장영남 배우에게 작품과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라 하니 ‘다음엔 자기(유선)가 해’라고 했다”라며 장내에 웃음을 안겼다. 캐스팅 연락을 받을 때부터 기뻤다던 유선은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몸에 전율이 올 정도였다.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싶었다”라며 “관객에겐 자스민이 재밌지만, 배우에겐 숙제도 많고 어려운 캐릭터다. 열심히 잘 만들어보겠다”라고 넘치는 의욕을 드러냈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인 모니카 역에 캐스팅된 박하선은 “언제 또 이런 아름다운 여성을 연기할 수 있을까 싶어 합류했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전에 연극 <홍도>를 했었는데 <불란서 금고>에 밀려 만년 2등이었다. 그래서 꼭 장진 감독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라는 박하선은 “연극 연습은 고통스럽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뿌듯하다. <꽃의 비밀>에 모든 걸 쏟겠다”라며 각오를 밝혔다.
모니카 역으로 첫 연극에 도전하는 경수진은 “전부터 무대에 꼭 서고 싶었는데 때마침 <꽃의 비밀>을 봤다”라며 “(장진) 감독님이 모니카와 지나를 먼저 제안해 주셔서 영광이었다”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배우 간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이니 템포, 발성, 동선 모두 열심히 배우고 있다. 14년 동안 매체를 한 경험을 응용하고 있지만, 무대와 영상의 차이점을 확실히 체득하며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연극 데뷔 소감을 이야기했다.
다수의 연극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강은빈은 “처음에 연락받았을 때 많이 기쁘고 놀랐다”라며 “미모가 뛰어난 역할에 첫 남성 배우로서 도전한다는 것이 부담도 되지만, 선배들과 연출님에게 잘 배우고 있다”라며 설렘과 의욕을 드러냈다.
네 아내 중 막내이자 작품의 키를 쥔 지나 역에 남성 배우로 캐스팅된 임모윤은 “감독님과 2022년에 <서툰 사람들>을 함께 했었다”라며 “여성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라 연습 과정이 어렵긴 하지만, 끝엔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꽃의 비밀> 팀에서 실제로도 막내 배우이자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지나 역의 한수아는 “매일 고통스럽지만, 선배들 연기를 보며 많이 배우고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라며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꽃의 비밀>이 연극 데뷔인 지나 역할의 신슬기는 “황석정 선배에게 두렵다고 말했는데, 선배가 ‘이런 상황도 사랑해 버리라’라고 조언했다”라며 “밤낮없이 고민하는 선배들과 연출님을 보며 이 현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떨리지만 잘 해내겠다”라며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마을을 방문하는 보험공단 간호사 산드라 역의 전윤민은 “<꽃의 비밀>에 네 시즌째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라며 “다음 생엔 산드라로 태어나고 싶을 정도로 산드라를 사랑한다. 산드라도, 저(전윤민)도 많이 사랑해 주길 바란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더블 캐스팅으로 산드라를 연기하는 서은영은 “(장진) 감독님과 처음 작품을 하게 됐다”라며 “선배들에게 많이 질문하며 연습하고 있다.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보험공단 의사 카를로를 연기하는 김한결은 “장진 감독님과 <불란서 금고>, <댄포스가 옳았다>에 이어 <꽃의 비밀>까지 함께하게 됐다”라며 “수련하는 기분이다. 1년 동안 수련하며 어딜 가도 ‘허투루 안 배웠구나. 칼을 날카롭게 갈았구나’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라며 장진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는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카를로 김남희는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잘하고 있지만, 제 방식대로도 승화하며 연습 중이다”라며 웃음을 안겼다. 그는 “여성 역할을 하면 모니카를 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저음이라 자스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서툰 사람들> 연극을 보고 장진 작품에 꼭 출연하고 싶었다. 우연히 <댄포스가 옳았다> 회식에 참석했다가 <꽃의 비밀>에 합류하게 됐다”라며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그는 “제 나이대는 장진 감독님 작품을 보고 자랐고, 학교에서도 많이 공부했던 세대다”라며 “학창 시절의 우상 같은 분과 함께하게 돼 영광스럽다”라며 장진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장진은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한 우려를 말하는 질문에 “젠더프리 캐스팅은 배우에겐 큰 문제가 아니다. 집필 때부터 남성 배우 캐스팅을 염두에 뒀던 건 요즘 많이 시도하는 젠더프리와는 시작점이 다르다”라며 이번 시즌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러면서 “무대가 주는 환영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네 아내가 어쩔 수 없이 남장하는 상황을 남성 배우들이 연기한다면 그 환상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라며 “주위 우려가 커서 10년간 시도하지 못하다 이제야 도전한다”라고 새 시즌에 임하는 소감을 이야기했다.
남성 배우들이 합류하며 이전 시즌들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묻는 말에, 10년 만에 다시 소피아를 연기하는 추귀정은 “(장진) 감독님이 처음부터 남성 배우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쓴 거라서 믿고 따르고 있다”라며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남성이 연기하는 건 다른 감상을 줄 수 있다”라며 “남성 배우들을 그저 남자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캐릭터로서 우리와 동화되고 있다고 느낀다”라고 답했다.
간호사 산드라 역으로 네 시즌째 작품에 임하는 전윤민 또한 “극 중 간호사로서 남성 배우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이질감을 못 느끼고 있다. 젠더프리 공연에 참여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남장 연기 준비 과정과 어려움을 묻는 말에, 모니카를 연기하는 박하선은 “남장여자를 꼭 해보고 싶었다”라며 “본래 목소리가 저음이라 장진 감독님도 놀랐다”라고 웃음을 안겼다. “데뷔 20년쯤 되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쉽지 않다. 남장여자를 연기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 복이다”라며 자부심을 보인 박하선은 “열심히 준비해서 멋진 남자가 되겠다”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경수진은 “문근영 배우가 남장했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인상 깊게 봤었다”라며 “<꽃의 비밀>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기대하고 있다”라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남성에게 억압받는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소감을 묻는 물음에, 소피아에 캐스팅된 성지루는 “전엔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것들을, 소피아를 통해 간접 체험하고 있다”라며 “여성 캐릭터로서 억눌린 감정을 분출할 때 대리만족을 느끼며 여성들을 이해하게 됐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자스민을 연기하는 정웅인은 “자스민은 남편에 대한 애증을 느끼는 인물이다. 이런 감정들이 20년 이상 된 부부라면 한 번씩은 겪는 일이라 생각한다”라며 “자스민을 통해 많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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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꽃의 비밀>은 10년간 작품의 탄탄한 내공을 성공적으로 증명해 왔다. 연극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이미 공연 관람을 즐기는 관객까지도 부담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고통과 수련을 말한다. 그러한 고통은 최고의 무대를 구현하기 위한 값진 노력이 담긴 시간일 것이다. 쉽지 않은 연습을 하고 있지만, 작품이 주는 행복과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배우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감 또한 가득해 보였다.
새로운 얼굴들, 오랫동안 실행하지 못했던 본래의 연출 의도와 함께 돌아온 연극 <꽃의 비밀>은 공연계에 또다시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답은 9월 12일부터 11월 29일까지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되는 새로운 <꽃의 비밀>에서 공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