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택시기사 김만섭은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울의 택시기사입니다. 밀린 월세를 걱정하고, 손님을 태워 돈을 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사람입니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외국인 손님을 광주까지 데려다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를 태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평범했던 그의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배경 5·18 민주화운동
영화의 배경이 되는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남 일대에서 벌어진 민주항쟁입니다. 1979년 12·12군사반란 이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해 가던 가운데, 1980년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계엄군이 전남대학교 등에 투입되었습니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했고, 이후 시위는 광주시민들에게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김만섭은 이런 상황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 광주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다녀올 곳이었습니다.
이 점이 『택시운전사』를 다른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와 조금 다르게 느끼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5·18의 한가운데에 있던 인물의 시선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 역시 만섭과 함께 광주의 현실을 처음 마주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이 영화가 5·18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도록 구성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영화 속 장면과 실제 역사를 찾아보게 됩니다.
5·18 당시 광주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폭력과 발포가 이어졌습니다. 광주역에서는 5월 20일 밤 계엄군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5월 21일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한 집단 발포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시민들은 무기를 확보해 시민군을 조직했고, 광주는 외부와 사실상 고립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특히 당시 광주의 상황은 외부에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웠습니다. 신군부의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목소리 역시 억압받았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증언과 사진, 영상, 취재기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수많은 기록과 증언이 남겨졌고, 현재 5·18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힌츠페터의 카메라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가 촬영한 영상은 단순한 취재 영상이 아니라, 당시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을 외부 세계에 전달하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만섭은 왜 다시 광주로 돌아갔을까
김만섭은 처음부터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무서워했고, 광주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서울에 어린 딸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는 것을 감수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다시 광주로 돌아갑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섭은 광주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모르고 있던 현실을 직접 보게 됩니다. 부상당한 시민들을 보고, 계엄군의 폭력을 목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순간 광주는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다녀오는 장소가 아니게 됩니다.
실제 김사복과 위르겐 힌츠페터
『택시운전사』는 실제 인물과 사건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실제 택시운전사 모델은 김사복 씨이고,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당시 광주의 참상을 직접 취재해 해외에 알린 인물입니다.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광주에 들어가 현장의 모습을 촬영했고, 그 영상은 이후 광주의 참상을 외부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영화 속 김만섭이라는 이름과 인물의 구체적인 성격, 일부 사건과 인물 관계는 영화적 각색을 거친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를 실제 5·18의 모든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기록영화로 보기보다는'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극영화 '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 역사와 영화적 서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작품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현장을 기록했고, 누군가는 그 사람을 광주로 데려갔으며, 또 누군가는 그들이 취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뒤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날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천만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택시운전사』는 2017년 개봉 이후 최종 약 1,2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개봉 19일 만에 천만 관객을 넘어섰고, 당시 2017년 첫 천만 영화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받아들인 방식입니다.
높은 평점을 남긴 관객들의 반응에서는 ‘눈물’, ‘민주주의’, ‘소시민’, ‘참혹하다’, ‘여운’과 같은 단어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반면 일부 관객들은 영화의 신파적 요소나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즉, 모든 관객이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많은 관객에게 닿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설명하는 대신 '한 평범한 사람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만섭의 눈을 따라가면서 광주를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언론에서도 이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5·18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김만섭과 힌츠페터가 보여주는 인간적인 관계가 관객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들었던 생각은 역사적 사건의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고 기억하는 역사도 누군가가 그 순간을 지켜내고, 기록하고, 전해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처음부터 용감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두려웠을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서로를 돕고, 끝까지 그날의 모습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날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택시운전사』는 5·18이라는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역사를 지켜낸 사람들의 용기까지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