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경보를 뜻하기도 하는 '사이렌'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괴물로 묘사된다. 얼굴만 인간 여자, 몸은 새의 모습을 하고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아르고 호 원정대가 사이렌들을 만났을 때 오르페우스가 그들의 노랫소리를 덮는 리라 연주를 해 살아남은 것이 유명하다. 사이렌은 이렇듯 '유혹'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사이렌 전승은 사실 페르세포네 전승과도 관련되어 있다.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된 이후, 사이렌 자매들은 친구 페르세포네를 찾으러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이 전승에 따르면, 결국 페르세포네를 찾지 못한 사이렌들은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페르세포네를 애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사이렌이 노래할 때>도 이와 같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애쓰는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작품은 3명의 여성 주인공을 통해 사이렌 신화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선보인다. 이야기는 언니 데본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혼자서 감당하는 것에 지쳐 동생 시몬을 찾아 외딴섬의 럭셔리 저택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몬은 백만장자 자선가 미카엘라의 개인 비서가 된 후 사실상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피해 달아났었던 시몬은 대뜸 자신을 찾아온 언니를 외면하려 한다. 시몬이 가족보다 애착을 가지고 있는 상대는 저택의 안주인 미케일라다. 시몬은 미케일라를 거의 숭배하다시피 한다. 반면 데본은 미케일라가 모두를 가스라이팅 시키는 무서운 여자라고 느낀다. 극이 진행되며 미카엘라가 시몬과 남편 피터 사이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시몬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되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주요 인물 각각이 각자의 삶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며 극은 끝난다. 두 자매의 과거는 매우 트라우마적이다. 어머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자살 시도 당시 어렸던 시몬을 차에 태운 채 가스를 이용해 생을 마감했다. 언니 데본이 그 현장을 발견하고 시몬을 구했지만 그 후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아이들을 학대했고, 데본이 대학에 간 후 시몬은 결국 위탁 가정에 보내졌다. 데본은 죄책감으로 인해 다시 돌아와 그녀를 돌본다.
이로 인해 자매에게는 각자 다른 강박이 생긴다. 데본은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을 구하는 것에서 자기 자신의 쓸모를 찾아왔다. 데본은 시몬이 스스로 찾은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시몬은 이제 더 이상 구원받아야 할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동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데본은 동생 곁을 떠난다. 데본이 내린 결정은 사실 처음과 같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요트 여행 제안을 거절하고, 아버지를 다시 혼자서 돌보러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데본은 예전처럼 일방적인 희생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몬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며, 그녀를 돌보았던 것이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데본은 자신의 문제와 졸업한다.
반면 동생 시몬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것에 매달린다. 자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던 사람들에게서도 상처를 받았기에 시몬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도움이 안 되는 건 버려야 응당한 거다"라고 언니에게 말하는 시몬. 이건 정말 그녀가 가진 생각일까, 아니면 가장 사랑받고 싶던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방어기제일까?
작중에선 두 자매가 달아나듯 뛰어다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애정을 갈구하는 상대를 쫓아가고, 잊고 싶은 과거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반복된 상처의 패턴, 원치 않았던 남자들의 구애만 끌어당긴다. 이에 반해, 미케일라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능수능란하게 끌어당기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매들과 달리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모성애'가 있다. 그녀는 엄마가 되고 싶어 했지만 임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시몬을 비롯해 다른 여성들을 멘토링하고 보살피며 모성의 형태를 나름대로 실현했다. 그리고 이는 그녀에게 컬트로 보일 만큼의 매력을 만들어주었다. 다시 말해, 미케일라는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여성이었기에 타인을 수용할 수 있었다.
여성성이라고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모성애로 대표되는 '수용성'이 대표적이다.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남성은 자기 무의식 안에 있는 여성성(그는 이를 '아니마'라 표현했다)을 외부의 여성에게 투사한다. 이 투사된 아니마는 종종 이상화된 존재, 혹은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나를 원하는 대로 봐주지 않으면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마녀'가 되기 일쑤다. 그녀는 마녀가 되고, 괴물이 되며, 심지어 날개가 있다고까지 말해진다. 하지만 만약 여성이 남성의 기대에 부응했다면, 그 날개는 천사의 날개가 된다.
그래서 수용성은 아주 강력하지만, 아주 위험하기도 하다. <사이렌이 노래할 때>의 원작을 쓴 작가 몰리 스미스 메츠러는 이렇게 말했다. "사이렌은 괴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사이렌은 단지 뱃사람들의 시점에서만 묘사되었을 뿐, 그들 자신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죠. 사이렌은 사실 도움을 요청하며 노래하는 존재였을 수도 있어요. 배가 난파되는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요. 남성들은 자기 파괴를 하곤 '아름다운 여자 때문'이라고 말하죠."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사이렌이 노래할 때>는 미카엘라, 시몬, 데본 세 여성 인물 모두가 각기 ‘괴물’로 여겨졌던 순간들을 조명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 여성성과 트라우마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품고 있지만, 다소 심심한 전개와 부족한 유머감각으로 인해 그 강렬한 소재들이 쉽게 잊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영상미, 미케일라를 연기한 줄리안 무어 등의 연기가 이를 충분히 보완한다.
<사이렌이 노래할 때>를 재미있게 봤다면 추천하는 작품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여성 간의 연대와 폭력, 그리고 침묵 속 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