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푸른 난초맛 드라마, 작은 아씨들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10.1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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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저번 주 종영했다. 오래간만에 여러 방면에서 강렬한 여성 서사 드라마를 시청했다. <작은 아씨들>은 영화 작은 아씨들을 각색한 작품으로, 가난한 세 자매가 '정란회'라는 비밀결사 권력 단체와 대립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생들을 보살피는데 여념 없기에 희생에 익숙해져 버린 첫째 '인주', 가난한 자신보다 정의롭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참을 수 없는 기자 '인경', 미술에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만 언니들의 희생이 달갑지 않은 '인혜' 세 자매가 주인공이다.


갈수록 여성 서사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부쩍 늘어간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물론 여성 서사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와 같은 움직임은 실로 즐겁다. 그러나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까? 좋았던 만큼<작은 아씨들>을 관람하면서 들었던 아쉬운 점을 중점으로 리뷰를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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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에서는 철저히 세 자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뿐만 아니다. 천진난만함 속에 엄청난 광기를 내포한 '상아'라는 여성 악역 캐릭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극 중에서 상아는 비밀 연극을 한다. 비밀 연극의 타깃이 되는 대상, 즉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상황과 주변 인물들을 조작한다. 이후 그 상황을 알려주면서 주인공을 극단의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며 정신과 육체를 앗아가는 놀이다. 상아의 악랄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치다.


이러한 비밀 연극은 캐릭터 간에서만 펼쳐지지 않는다.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관객을 대상으로 연출을 통해 매회마다 비밀 연극을 시도한다. 위기에 처한 주인공에게 이입한 관객들은 극한의 시련에 긴장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조력자의 도움이나 주인공의 기지 발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면서 속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매회마다 이와 같은 '반전' 요소를 첨가하여 전개되는 구조를 반복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인주나 인경이가 아니다. 이들은 비밀연극의 존재 자체를 모르지만, 관객들은 비밀연극의 존재를 알고 있다. 반전이 반전으로서의 힘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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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갈수록 자극적인 소재와 배우의 연기에만 의존하는 형태로 발생하다 보니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11회차에서 초반부 인주 캐릭터에게 처해지는 고난이 정점을 찍는다. 특히 수감된 인주가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캐릭터가 혹사당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간의 비밀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어차피 문제가 곧 해결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란회가 사방에 포진되어 있음에도 판사와 심지어 변호사까지는 매수하지 않아 인주가 석방된다는 사실은 드라마적 허용으로 이해한다 한들, 배우가 배역에 이입하여 보여주는 탁월한 감정 연기가 작품에 몰입하게 만들지 않고, 지치게 만든다. 처절하고 가슴이 아리는 고도의 연기력이 오히려 서스펜스를 뭉개버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은 아씨들>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 아쉽다. 주인공들이 기지를 발휘해 시련을 탈출하는 장면이 극히 드물다. 교묘한 술수를 교묘한 술수로 받아치는 기발함보다, 무조건 맞서는 방식에 답답함만 느껴질 뿐이다. 당연히 명쾌한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도일, 최희재나 죽은 줄만 알았던 화영 같은 외부 캐릭터가 대신하여 교묘한 술책으로 맞받아친다. 알고보니 원한을 갖고 있던 인물이나 주인공만 빼고 모든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위기가 해결되기도 한다.

 

복선인줄 알았던 요소는 암시 차원에만 머물고, 이러한 암시들은 유추는 가능하더라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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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에 대해 토로했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글에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난초를 통해 사건을 전개시키는 방식이 흥미롭고, '닫힌 방'이나 '푸른 난초' 등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요소들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완벽하지 않고 저마다 취약점을 갖고 있는 세 자매의 캐릭터도 참으로 매력적이다. 캐릭터 간의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는 방식은 가히 탁월했다. '사랑한다'라는 대사 없이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루어질 듯 말 듯한 멜로 장면으로 인해 애간장이 타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아한 포장 속에, 자극으로 점철된 요소가 가득 담겨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고전적인 극작술을 반영한 웰메이드 드라마는 분명 존재하고, 드라마광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남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력과 각본의 힘만으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플롯 구조를 허술하게 짜는 작품들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작은 아씨들>에 등장했던 훌륭한 장치들을 기반으로, 세심한 플롯이 돋보이는 많은 작품들이 등장하길 기대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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