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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로의 몫을 남겨두는 일 - 연극 '페이백' [공연]

옳고 그름을 넘어 서로의 몫을 남겨두는 일에 대하여

by 임채희 에디터
2026.09.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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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부터 '가치소비'라는 트렌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상품을 구매할 때 단순히 가격이나 성능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해 구매한다는 것이다. 소비가 구매자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된 셈이다. 좋은 상품을 판매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브랜드라면 가격을 더 지불하더라도 구매한다.


      이러한 소비는 윤리적 소비로도 이어진다. 윤리적 소비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가 동물복지다. 이제는 마트에서도 달걀이나 닭고기에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표시된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동물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그 방법과 범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특히 동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식량으로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연극 <페이백>은 바로 이 간극에서 시작한다. 평생 닭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온 두만과 도축업을 그만두고 채식을 선택한 아들 흑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손녀 제원을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치관의 충돌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선택과 책임


       

      두만은 닭을 키워 생계를 유지하는 선택을 했다. 평생 닭을 키우며 가족을 부양해온 그에게 닭은 단순히 먹거리로 소비되는 동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어온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당연하게 여겨온 선택은 이제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손녀 제원은 좁은 공간에서 닭을 키우는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아들 흑이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지 않는다.


      반면 흑이는 과거 도축업에 종사했던 자신의 선택에 뒤늦게라도 책임을 지려한다. 음식으로 소비되는 동물의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친구 도원의 농장에서 도축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해 영상을 올리고, 도원이 농장에 피해가 생긴다며 영상을 내려달라고 해도 이를 거부한다. 흑이에게 영상을 지우는 것은 단순히 게시물을 삭제하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묵인해왔던 동물의 죽음을 다시 외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 중 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만에게는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삶이 있었고, 흑이에게는 자신이 저질렀던 일과 동물의 생명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 하지만 동물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를 입는 친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흑의 모습은 다소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과 그 선택으로 발생하는 타인과의 갈등 사이에서 생기는 모순. <페이백>은 이처럼 누구의 잘못이라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갈등을 그려내기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제원은 과연 선택했다고 볼 수 있을까.


       

      두만과 흑이의 갈등만큼이나 제원 역시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제원은 유치원 때부터 채식을 해왔다. 그러다 초등학교 때 아빠와 함께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흑이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흑이는 제원이 선택할 수 있도록 고기반찬을 꺼내 놓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택지를 내어놓는 것만으로 진정한 선택권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제원에게 어른들의 갈등은 무겁게 느껴진다. 아빠의 도축 영상이 퍼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해명해야 했던 제원은 자신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 아빠의 신념에 반감을 느끼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에게는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빠의 가치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원은 그 가치관이 만들어낸 갈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당해야 했던 셈이다.


      고기를 함께 먹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딸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해 줄 수는 없었을까. 제원이 언젠가 채식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면 흑이는 그것을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반대로 제원이 계속 채식을 하며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제원의 온전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극이 끝나자 여러 생각이 얽혔다. 내가 제원이라면 어땠을까. 이 가족의 앞으로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 이 가족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만은 계속해서 닭을 키울 것이고, 흑이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갈 것이며, 제원은 그 사이에서 계속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극을 보고 난 뒤 내린 결론 하나만은 확실했다.


      우리는 때로 어떤 문제를 마주할 때 좋다 혹은 싫다, 맞다 혹은 틀리다처럼 쉽게 나누어 생각하려 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어느 쪽이 옳은지 정하면 상황을 이해하기도, 해결책을 찾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그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페이백>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두만의 선택에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삶이 있었고, 흑이의 선택에는 동물의 생명에 대한 신념이 있다. 제원 역시 그 사이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의 선택만을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모든 선택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잘못된 행동에는 그에 따른 판단과 책임이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는 문제에서 옳고 그름으로만 나누어버린다면, 각자의 상황과 그에 따른 선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얼마나 쉽게 정리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들여다보고 정리하느냐에 있다. <페이백>은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기보다 하나의 문제를 서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게 한다.

       

       

       

      페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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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의 마지막에서 흑이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청년 구준과 함께 벌레를 잡는다. 해충약을 쓰자는 구준에게 흑이는 이와 같이 말한다.


      "자연 재배에서 30프로는 자연에게 돌려줘야 해. 30프로를 손해 보는 게 아니라 70프로를 받을 수 있게 30프로는 주는 거지."


      이 대사는 <페이백>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를 보여준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새로운 문제와 갈등도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생각만을 관철하는 것으로는 함께 살아가기 어렵다. 서로의 몫을 조금씩 남겨두고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페이백>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갈등 속에서 공존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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