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너울’은 등장인물 플로와 애니, 그리고 벨의 20대와 50대의 시간을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작품은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비추며, 과거의 선택과 관계가 현재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퀴어인 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시간을 살아내는지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작품 속 세 사람의 삶은 제목 그대로 ‘너울’처럼 흔들린다. 물 위의 파도가 어디로 향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듯, 세 사람이 퀴어라는 사실은 이들의 삶을 여러 방향으로 뒤흔든다.
플로와 애니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졌음에도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서로가 퀴어였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규정된 ‘정상적인 삶’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은 그렇게 규정된 단 하나의 경로에서 벗어나, 수많든 다른 길들로 걸어간다. 그리고 연극은 다양한 길 위를 각자의 방식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플로는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며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한다. 반면 애니는 벨과 깊은 관계를 맺고, 약혼하며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가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아간 이후에도 너울의 흔들림은 멈추지 않는다. 관계는 안정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사랑의 형태와 돌봄의 형식이 다르기에, 세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균열과 갈등이 발생한다.
한편, 플로가 벨에게 들려주는 외부 퀴어 커뮤니티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한 소속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의 지향성으로 인해 가족과 결별한 벨에게 플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상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벨은 플로의 이야기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모습의 삶을 살아내는 퀴어들의 모습이 극 중에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너울은 세 사람의 사랑과 삶을 극적인 사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작품 속 이들의 사랑과 관계는 거대한 사건으로 형상화되기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며 선택을 반복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에 가깝다.
함께 살아가며 각자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생기고, 서로를 돌보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누군가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책임지려 하며, 누군가는 자신의 방식대로 일상을 유지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킨다. 또 다른 누군가는 미처 다 하지 못했던 돌봄을 뒤늦게 돌아보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결국 '너울'은 사랑과 돌봄, 그리고 시간의 축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도는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지만, 그 파도를 지나온 사람들의 몸에는 그 흔적이 남는다. 작품 속 인물들 역시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흔들리고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완벽한 이해나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럼에도 계속 서로를 돌보려 하는 마음이다.
어쩌면 누군가와 삶의 일부를 함께한다는 것은, 너울 치는 파도를 함께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