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의 또 다른 내가, 아무런 슬픔도 절망도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은 당신에게 위로인가, 고통인가.
후회에는 늘 살아보지 못한 삶이 따라붙는다. 그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조금 더 일찍 손을 내밀었다면, 누군가를 붙잡았다면.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이미 지나간 순간의 결과를 바꾸어 본다. 물론 그 상상이 반드시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선택을 한 나는 지금보다 나은 사람일까. 혹은 또 다른 불행을 지니고 있을까. 알 수 없기에, 상상 속의 삶은 얼마든지 구원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조예은의 장편소설 『녹색 절벽의 신자들』에는 그 구원을 약속하는 장소가 있다. 외계인의 도래와 세상의 멸망을 믿는 종교 공동체 ‘녹색 절벽’. 신자들은 멸망 후 절벽이 자신들을 세계의 가장 행복한 지점으로 보내줄 것이라는 말을 믿는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선택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 말이다. 삶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약속은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건너야 하는 곳이 절벽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물어야 할까. 그 너머에 정말 행복이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행복의 이름을 빌려 위험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지.
오연은 교주 정환영에게 입양되어 녹색 절벽의 신자로 자랐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오연에게 환영의 말은 일상을 이루는 질서였다. 오연과 달리, 뒤늦게 그곳에 들어온 제언은 환영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같은 말을 듣고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오연은 당연했던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제언에게는 믿고 싶은 이유가 생긴다.
사이비를 다룬 이야기를 접할 때 우리는 흔히 ‘어떻게 저런 말을 믿지?’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안도감이 숨어 있다. 그러나 삶이 무너졌을 때는 고통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그것을 의심해야 할 이유보다 먼저 마음에 닿을 수도 있다. 우연처럼 찾아온 비극에도 이유가 있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곳이 있으며, 지금의 시간이 끝내 보상받으리라는 말은 삶이 무너진 자리에 질서를 부여한다.
그렇기에 신자들에게 믿음은 어떤 주장이 사실인지 가리는 일을 넘어, 무너진 삶을 다시 이해하려는 시도가 된다. 이 소설은 누가 옳았는지 가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가 진실처럼 느껴지는 자리까지 독자를 데려간다.
녹색 절벽이 약속하는 ‘가장 행복한 세계’는 제언에게 막연한 구원이 아니다. 제언은 행복한 세계의 자신을 상상한다.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은 채 살아온 또 다른 제언. 다른 사람의 행복은 남의 삶으로 남겨둘 수 있지만, ‘저 사람도 나일 수 있었다’는 생각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다시 보게 한다. 좌절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 앞에서, 견뎌온 상처는 새삼 부당한 일이 된다. 왜 하필 이쪽의 내가 그 일을 겪어야 했을까. 행복한 다른 삶의 가능성은 위로가 되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잔인한 비교가 될 수 있다.
나는 제언과 같은 답에 이르지 않았다. 슬픔을 겪지 않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 있다 해도, 그를 나라고 여기기는 어려웠다. 그는 나를 닮았을지언정 내가 살아온 시간을 살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존재는 내게 위로도 고통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제언의 마음을 더 오래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는 남의 삶처럼 보이는 가능성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다시 판단하게 할 만큼 절실할 수 있다는 것.
『녹색 절벽의 신자들』은 진실을 알아가는 독자의 자리도 흔든다. 오연이 본 세계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건은 한 번에 포개지지 않는다. 보는 자리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오연의 그림처럼, 장면은 그대로인데 그 앞에 선 독자가 달라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전개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사건의 결과를 미리 알면 각 장면을 정답과 단서로만 읽기 쉽다. 모른 채 읽을 때는 한 인물의 말을 믿었다가 의심하고, 이미 지나온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누군가에게는 다른 미래가 있기를 바라게 된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뿐 아니라 내가 어떤 진실을 바랐는지 발견하는 과정까지 이 소설의 일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인물들의 믿음에 동의할 수 없으면서도 그들을 쉽게 탓하지 못했다. 미스터리의 답이 궁금해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의 말이 너무 늦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닿기를 바랐다.
나는 아직도 녹색 절벽이 약속한 세계가 정말 있는지 묻고 싶다. 그보다 오래 남는 질문이 있다. 그들이 다른 세계의 행복을 기다리는 대신, 이 세계에서 조금 더 살아갈 수는 없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