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채로는 살 수 없었던 사람들 ― 『자연은 왜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가』
지은이: 로버트 칸, 크리스 퀴그 / 옮긴이: 박병철
우리는 우주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우주의 구성 물질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발밑의 흙, 손에 쥔 컵,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와 같이 어떤 입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입자들의 정체와 행동 방식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환경에 대해 놀라울 만큼 무지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자연은 왜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가』는 바로 그 ‘모호함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노학자 로버트 칸과 크리스 퀴그는 책의 서두에서 독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이 책은 일종의 여행이고, 우리에게는 들러야 할 정거장들이 있다고. 첫 정거장은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지대, 어느 깊은 계곡이다. 그곳에서 세 명의 젊은이가 번개를 이용해 원자를 쪼개려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정거장은 18세기 런던, 어느 구호기관의 기초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한 남자가 정전기와 도체와 부도체를 연구하던 작업실. 세 번째는 짙은 안개에 잠긴 스코틀랜드 벤네비스산 정상, 한 과학자가 안개상자를 발명해 하늘에서 쏟아지는 우주선을 처음으로 시각화하던 자리. 도표도 수식도 없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늦은 저녁 벽난로 앞에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가까이 보았던 발견의 순간들을 들려주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 정거장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에 있다. 미국의 모더니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1896년에 남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모든 디자이너가 따라야 할 제1계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문장은 자연의 세계에선 정반대로 적용된다. 자연에서는 기능이 형태를 따른다. 자연법칙에 내재한 대칭성이 먼저 있고, 그 대칭이 어떤 상호작용이 가능한지를 결정한다. 이 통찰을 처음으로 명료하게 표현한 사람은 1918년의 독일 수학자 헤르만 바일이었다. 그는 평소 광물과 유기체의 대칭에 유난한 관심을 보였는데, 누군가 이유를 물으면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고 한다. "비율의 조화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에서 생겨난 대칭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우주의 깊은 비밀이 한 수학자의 즐거움에서 시작된 거 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화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이 어딘가 먼 곳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PET 스캔 이야기가 등장한다. 병원에서 받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름 아닌 반물질의 생성과 소멸이다. 미국에서만 매년 200만 명의 몸 안에서 반물질이 생성되고 사라지고 있다. SF의 소재처럼 들리는 반물질이 사실은 누군가의 진단 영상을 만드는 일상의 기술로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두 저자는 입자물리학이 추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곳곳에 있다는 가볍게 던지듯 알려준다.
책의 진짜 무게는 마지막 장에 가면 더더욱 와닿는다. 표준모형이라는 단정한 체계가 완성되었고, 인류는 입자가속기와 정교한 이론을 통해 자연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 들여다보았다. 그런데도 이 우주의 대부분은 여전히 어둡다. 우리가 발견한 자연법칙이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자연이 우리를 위해 설계되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자연법칙이 생명을 허용하는 우주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류 원리라고 불리는 이 시선 앞에서 두 저자는 농담처럼 한 문장을 덧붙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군주가 아니라 하찮은 백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사실에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자연은 우리에게 경외감과 겸손함을 강요하지만, 자연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자괴감을 넘어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성과인가!" 우리가 우주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연 앞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자세라는 듯이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 그 자세가 있을 때만 우리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아미노산이 없는 세상, 숯검댕이로 가득 찬 대기, 그리고 대책 없이 작아지는 보손 덩어리 등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입자물리학의 세계에서 펼쳐졌다. 기본입자와 이들의 상호작용 에 대한 현재의 이론을 조금만 변형하면 이보다 더 희한한 세상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대부분의 세상에 는 물질의 종류가 우리 세상처럼 다양하지 않으며, 일어날 수 있는 반응도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가 "모든 가능한 세상 중 최고의 세 상에서 살고 있다"는 팡글로스 박사의 주장이 옳다는 보장은 없지 만, 지금까지 예시했던 세상 중에는 우리 세상이 단연 최고다.
- 607 페이지 발췌
이 책을 덮으며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입자물리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아니다. 알 수 없는 것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자세, 자기보다 거대한 것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두 저자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런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옛날부터 과학은 독점이 아닌 공유를 통해 발전해 왔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망설이는 독자가 있다면, 저자들이 첫 장에서 건네는 말을 빌려 안심시키고 싶다. 굳이 음악가가 아니어도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듯이, 전문 과학자가 아니어도 이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호기심, 그 한 가지만 챙긴 채 첫 정거장으로 향하면 된다. 나머지는 두 노학자가 알아서 안내해 줄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책이 건네줄 한 문장이 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모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