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인간이 살아가는 최초의 사회는 가족이다. 또한 태어나서 가장 먼저 쓰게 되는 글의 형태는 일기다. 어린 시절 쓴 일기의 대부분엔 가족 혹은 친구, 선생님 등 학교의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이렇듯 가족은 한 인간을 빚어내는 데 기초적인 기반이 되는 원형(原形 : 본디의 꼴)이다.
자식은 부모의 외모와 기질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고,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 얽매여 살아간다. 형제는 서로를 질투하면서도 아낀다. 이토록 질긴 가족이란 인연은 구성원 중 일부가 집에서 사라져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엉망인 삶도 핏줄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가족이다. 여기에서부터 인간의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1944년에 발표한 연극 <유리동물원>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윌리엄스의 본명 ‘토머스’에서 이름을 가져온 주인공 ‘톰’은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해설자이자 등장인물인 톰은 구두 창고에서 박봉을 받으며 일하고, 시인을 꿈꾸면서도 영화에 빠져 산다. 작품 밖 윌리엄스는 <유리동물원> 대성공을 시작으로 연극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가 됐지만, 작품 속 톰은 어떤 것도 얻지 못한 채 영화관으로 또다시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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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유리동물원>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데려왔다. <유리동물원>은 1950년대부터 2026년까지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연돼 왔으며, 연기·극작·연출을 공부하는 대학 학생들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계속 무대로 소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 아만다는 여러 구혼자가 찾아왔었던 젊은 시절의 환상에 빠져 산다. 남편이 떠난 후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생활을 견디면서도, 자식들은 지금보다 나은 인생을 살아가길 간절히 원한다. 결혼도, 일도 성취하지 못한 여성들이 친척 집을 전전하는 상황을 딸 로라가 맞이하게 될까 봐 두려운 아만다는 취업을 못 하는 딸의 혼인에 집착한다.
몸이 불편하고 수줍음이 많은 딸 로라는 집 안에서 유리 동물들과 함께 자신만의 세상에서 지낸다. 구두 창고에서 일하는 아들 톰은 시인을 꿈꾸지만, 집안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은 힘들다. 톰의 동료이자 로라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짐은 잘 나가던 학생 때와 달리 평범한 직장인이 됐고, 일을 하면서도 자기개발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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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반짝였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팍팍한 현실에 치여 살다 보면 꿈을 잃어버린다. 몸과 마음이 약하거나, 과거의 실패가 발목을 잡을 땐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지 못한다. 겉으론 평범하거나 괜찮은 삶을 살더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는 건 어렵다. 이미 생활 기반이 잡혀 있더라도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인맥 관리는 필수다.
작품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이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익숙하다. 오히려 이들의 아픔과 못다 이룬 꿈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와 닿아 극을 보면 마음이 아려올 정도다. <유리동물원>은 탄생부터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확보했다. 단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 삶에서 출발한 모든 이야기가 <유리동물원>처럼 백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유리동물원>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보편성과 더불어, 연극적·문학적 가치라는 특수성도 갖고 있기에 명작이다.
작품이 묘사하는 현실은 현대 비극이란 말에 걸맞게 늪으로 빨려 들어가듯 우울하다.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떠난 아버지, 불안정한 직업과 박봉으로 삶을 영위하는 어머니와 아들, 타고난 연약함으로 인해 사회 진출에 실패한 딸, 온전히 자립하지 못하는 여성들, 삶이 바뀔지도 모른단 기대를 잃은 후 촛불을 끄고 어둠으로 숨어드는 인간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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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작품 속 세계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로라가 돌보는 유리 동물들, 로라가 앓던 ‘플루 로지스(Pleurosis : 늑막염)’를 ‘블루 로지스(Blue Roses : 푸른 장미)’라 오해해 그녀의 삶이 ‘기적’이 된 일, 축음기, 영화, 오페레타, 수태고지(기독교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 운명과 신성한 기다림을 뜻한다), 촛불.
아름다움은 비참함과 맞닿아 있다. 유리 동물들과 축음기는 로라의 닫힌 세계이자 현실 도피다. 학창 시절 자신을 푸른 장미라 불러준 짐과의 극적인 재회는 로라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짐의 방문을 수태고지에 빗댈 정도였으니 말이다. 영화관은 톰의 도피처이며, 집을 따뜻하게 밝히던 촛불이 꺼지는 순간 가족들은 더 깊은 어둠으로 잠식된다.
신유청이 연출한 <유리동물원> 무대는 빛과 어둠의 대비, 톰의 기억 속에서 실제보다 기울고 변형된 집의 모습, 하얀 커튼을 통한 주방과 거실의 공간 분리를 통해 쓸쓸함과 소외감을 강조했다. 주방의 커튼을 친 채 장면들이 진행될 땐, 관객뿐 아니라 주방 밖 거실에 있는 극중 인물까지 소외된다. 가족 간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연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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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사회에서도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며, 집 안에서도 서로를 소외시킨다. 그들은 함께이면서도 혼자이며, 그러면서도 가족이기에 하나로 뭉친다.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머물러야 하는 절망이 공존하는 윙필드 가는 이처럼 밝지만 어둡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친 톰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만다와 로라, 심지어 짐까지도 각자의 영화를 본다. 아만다는 쓰디쓴 현실을 잊게 해줄 달콤한 과거와 미래를. 로라는 유리 동물로 만든 위태로운 자신의 세계를. 짐은 잠깐 머물다 떠날 옛 추억이 아닌 오래 살아갈 현실과 미래, 더 나은 삶을.
먼 곳을 ‘보는’ 이들을 보여주며 <유리동물원>은 관객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보고 있을 세계 또한 이들이 바라보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