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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기억은 왜 가장 아픈 순간만을 남길까 - 연극 ‘유리동물원’ [공연]

촛불을 꺼줘.

by 이진 에디터
2026.10.2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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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약한 유리는 쉽게 깨진다. 잘못 건드리면 바로 흠집이 나며,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정교하고 섬세한 세공품일수록 더하다. 아끼는 유리 세공품은 장식장에 넣어두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다. 유리만큼, 어쩌면 유리보다 더 연약하고 잘 깨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음도 장식장에 보관하기만 할 수 있을까.

       

      2026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유리동물원>이 10월 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했다. 11월 22일에 막을 내리는 <유리동물원>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더불어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3대 대표작이다. 1944년에 시카고에서 발표된 미국 현대 희곡의 걸작 <유리동물원>을 계기로 테니시 윌리엄스는 세계적인 스타 극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리동물원>은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 최우수 미국 연극상·시드니 하워드상·도널드슨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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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청이 연출한 토월정통연극 <유리동물원>은 발표 후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질문들과 함께 새로운 해석, 어렴풋한 희망까지 엿보이는 결말로 관객을 찾는다.


      ‘토월정통연극’은 예술의전당 대표 연극 브랜드로, 연극 본연의 예술성과 가치를 조명하며 동시대 감각과 시선을 담아 여러 명작을 재해석해 왔다. 2023년 셰익스피어 <오셀로>, 2024년 <햄릿>에 이어 2026년엔 <유리동물원>으로 돌아온 토월정통연극 시리즈는 고전의 재현에서 그치는 게 아닌, 오늘날에도 유효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선보인다.


      <유리동물원>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유리처럼 위태로운 한 가족의 힘겨운 삶과 상처, 공허와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남편이 떠난 뒤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과거의 영광과 미래를 향한 희망에 기대 살아온 어머니 ‘아만다’ 역엔 김성령과 최정원이 캐스팅됐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꿈과 자유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들 ‘톰’ 역은 장승조, 권율, 김경남이 연기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유리 동물들을 수집하는 여린 딸 ‘로라’ 역엔 정운선, 정새별, 임세미가 이름을 올렸다. 윙필드 가를 찾은 손님, 가족에게 앞날을 향한 기대를 품게 하는 신사 ‘짐’ 역엔 문유강, 배훈, 최정우가 출연한다. 모든 역할이 더블 캐스팅 혹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인물 관계와 감정선은 달라진다. 11명의 배우는 캐릭터의 다층적인 면모와 매력을 펼치며 작품의 결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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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연출하는 신유청은 대표작 <그을린 사랑>으로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백상연극상, 제7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 부문 최우수상을 받으며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고전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키며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여 온 신유청은, 9월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류 보편의 질문’을 강조했다.


      신유청은 처음 <유리동물원> 대본을 접했을 때 딸 로라를 결혼시키기 위한 ‘소개팅극’ 같았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직관적인 줄거리의 <유리동물원>이 왜 고전이자 미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작품이 됐는지 이유를 끈질기게 분석했다던 그는, 작품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당시 미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패스워드였다. 그저 가족극으로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시적 상징이란 비밀번호를 통해 연결된 것이다. 신유청은 “리얼리즘의 틀을 넘어, 작가가 심어놓은 시적 상징과 코드들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각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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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청의 말처럼 <유리동물원>은 그저 1930년대의 미국 어느 가정의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아만다, 톰, 로라, 짐이었다. 왜 지금 여기에서 다시 <유리동물원>인가에 대한 질문에, 작품은 ‘보편성’을 정답으로 제시한다.


      모든 인간은 불안하며, 헛된 기대와 꿈을 품은 채 힘겨운 현실을 버티고, 그러다가 쉽게 길을 잃는다. 코로나19와 팬데믹을 지나, AI가 일상을 잠식해 버린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2026년. 우리는 1930년대를 살아가는 네 인물을 보며 그들의 상처와 선택에 2026년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아픔을 직면하는 거울만이 아닌,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 또한 <유리동물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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