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출발점을 톺아본다. 시작은 내면에서 차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였다. 블로그에 짧은 감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카테고리에 올린 글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뿌듯함이 찾아왔다. 즐거움도 잠시, 사춘기와 입시 스트레스가 한데 섞여 극한으로 치달으며 속엣말을 털어놓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울렁이는 속을 게워 내듯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자유에 대한 갈망과 족쇄 같은 현실이란 간극에 절망하며 '내가 가진 눅눅하고 우울한 감정은 결말이 없을까' 등 매 순간 흔들리는 감정의 해답을 찾고 싶어 썼다. 그러다 점점 누군가에게 내 말을 전하고 싶어졌고, 글이 삶이 되는 직업을 기웃거렸다.
사람은 대체로 무언갈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펜을 든다. 그 말은 단순한 형태에서 포동포동 살을 찌워 타당한 근거를 갖춘 우량아가 된다. 백지에 검은 흔적을 만들기까지 여정에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며 다들 기다림에 인색해졌다. 글을 고치고 편집해서 반듯하게 만드는 과정은 불필요한 과업이 되었다. 더불어 믿음도 AI 편에 섰다. 전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나 도서 등 검수받은 정보에 믿음이 생겼는데, 이젠 'AI가 아니라고 하는데요?' 한마디로 반박해 버린다. 그 기술마저 인터넷의 무수한 정보를 짜깁기해 출처가 불분명한데도.
불과 작년만 해도 AI의 작문 실력이 썩 준수하진 않았다. 위기의식 가득한 인공지능 관련 헤드라인은 대중을 겁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 새로운 버전으로 진화하며 흐름이 바뀌었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운영하던 기업들은 무료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재화로 거래할 수 있는 양질의 수준을 AI가 보여주면서 반려 비서로서 대체할 수 없는 우위를 차지한 것이다.
최근 잘 풀리지 않는 글을 AI와 대화하며 느꼈다. '지금까지 너와 나눈 대화를 글로 정리해 줘'라고 명령하니,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속도와 완성도로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해 낸 것이다. 본격적인 글을 쓰기 전 단계로,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이 녀석을 이용했는데, 예상과 달리 정리본 자체가 초안으로 가져가도 손색없는 구성을 보여주어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앞서 말한 백지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기다림을 쓸모없는 시간으로 간주한 느낌이었다.
긍지와 관련된 문제다. 사람은 의미있는 일을 자신이 잘 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은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장강명 『먼저 온 미래』 中)
독자의 검열 수준이 높아지며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환경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여기에서 AI는 언제든지 안전하고 완결된 글을 생산하는 치트키를 쓴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그러면 재미는 어디서 발생할까? 그건 인간의 경험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같은 바람을 맞아도 누군가는 선선해진 공기가 시원하다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겨울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저마다의 감각으로 글이 빚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 점이 독자와 글쓴이가 다음을 말하는 원동력이 되는데, AI는 여러 글을 답습하며 상투성을 띤다. 창작자의 고통으로 탄생한 표현이 인공지능엔 개별화할 수 있는 요소일 뿐이다.
글은 전문가, 비전문가를 나누지 않고 자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내가 가장 즐거웠던 글쓰기의 순간은 선명하다. 에디터가 되기 위해 들어간 교육원에서의 4개월과 안정된 생활로 드디어 마음 놓고 떠난 여름휴가를 기록할 때다. 확신이 없던 내가 누군가의 응원을 받았고, 그것이 실제 구체적인 성과로도 보였으며 '기대된다'는 약속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 감정을 남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잘 보여주려고 계속 쓰는구나 깨달았다.
"전 금미님 글을 읽을 때 속도감이 느껴져서 좋아요. 읽을 때 막힘이 없어요. 그래서 '구성이 좋다'는 선생님 말씀 공감했어요. 짜임새가 잘 갖춰져서 문장 앞뒤 맥락이 좋고,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려고 앞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거든요. 문장이 깔끔해서 한 번에 읽히는 것도 있어요. 화이팅하세요!" (교육원에서 받은 응원의 댓글 中)
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읽다 보니 편집자보다는 작가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실 듯합니다. (여름휴가 기록에 달린 댓글 中)
나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힘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내가 계속 글을 쓰며 가꾼 특징이다. 인공지능은 도달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그 피드백에 의지하며 글을 쓴다. 생산성을 따지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AI가 수백수십 권을 단시간에 집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그가 쓴 글을 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쓴 글을 선호하지 않는다. 비단 글뿐만이 아니다. 그림, 사진, 음악, 영화 등 예술 분야 곳곳에 포진한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창구에는 여전히 손때 묻은 감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