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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공포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여자들에 대하여 [영화]

슬래셔 영화는 살인마가 아닌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by 윤선주 에디터
2026.10.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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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에는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생존자가 있다. 그중에서도 슬래셔 장르의 주인공은 항상 여자다.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마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다 끝내 살아남는 여자. 그래서 이들은 ‘파이널 걸’이라고 불린다.

       

      슬래셔 장르의 전성기인 1970~80년대의 클리셰는 이랬다. 십대 청소년이 술과 약물을 즐기고 섹스를 하며 온갖 금기를 어기면 마치 처벌받듯이 살인마에게 죽는다. ‘죽어도 싼’ 아이들은 죽고, 도덕적 흠결이 없으며 순결한 주인공이 살인마에게서 도망쳐 경찰관이나 낯선 사람의 도움을 받아 구출된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쓰러졌던 살인마는 죽지도 않고 속편으로 돌아온다.

       


      “좋아하는 공포영화가 뭐야?”

      “나 그런 쓰레기 같은 영화 안 봐.”

      “왜 안 봐? 너무 무서워서?”

      “그게 아니라 다 똑같잖아. 뭣 하러 봐? 살인마가 연기도 못하는 가슴 큰 여자애를 쫓아다니고. 걔는 현관으로 뛰어나가면 될 걸 꼭 계단 위로 도망가고 말이야.”

       

      영화 <스크림> 중에서
       

       

      ‘살인마에게 쫓기는 십대’라는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이 쏟아지자 식상함을 느낀 관객들이 떠나갔다. 슬래셔 영화의 제작이 줄어들고 극장 상영조차 어려워지던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영화가 바로 <스크림>이다.

       


      스크림 시드니.png

       

       

      살해당한 어머니의 1주기가 다가오던 날, 시드니는 음성 변조된 전화를 받는다. “죽고 싶어, 시드니? 네 엄마도 죽기 싫어했지.” 가면 쓴 살인마의 등장에 시드니는 혼란스러워한다. 엄마가 죽은 그날 자신이 목격했던 남자가 범인이 아니라면, 가면을 쓰고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살인마가 범인일지도 모른다. 살인마는 시드니의 주위를 맴돌다가 그녀의 친구들을 죽이고 남자친구마저 공격하며 다가간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 공포영화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야. 첫 번째 규칙. 섹스 금지. 섹스는 죽음이야. 두 번째 규칙. 술과 마약 금지. 죄를 저지르면 안 돼. 3번 규칙은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로 이렇게 말하면 안 돼. "금방 돌아올게" 다시는 안 돌아오니까. 규칙을 깨면 죽는 거야.”

       

      영화 <스크림> 중에서
       

       

       

      공포영화의 규칙을 깨고 살아남은 소녀



      시드니는 남자친구와 섹스하고 공포영화의 첫 번째 규칙을 어기지만 살아남는다. 가면 속 얼굴의 정체를 알게 된 시드니는 도망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살인마를 죽여버린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죽지 않은 살인마는 속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크림은 가면 쓴 살인마이고, 1편의 살인마는 죽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시드니의 앞에 나타난다. 시드니의 팔자가 참 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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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마를 사냥하는 파이널 걸의 등장


       

      영화 <유아 넥스트>의 주인공 에린은 남자친구의 초대로 숲속의 외딴 저택에 가게 된다. 남자친구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부모의 결혼기념일 축하 파티를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가족 중 한 명의 이마에 꽂힌다.

       

      핸드폰은 터지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자 가족들은 공포에 빠진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생존 훈련을 받았던 에린은 침착하게 대응한다. 저택의 창문과 문이 제대로 닫혀있는지부터 확인하고, 괴한의 침입을 대비해 집안 곳곳에 트랩을 설치한다. 그리고 마침내 동물 탈을 쓴 괴한들이 나타나자 망설임 없이 죽여버린다.

       

      살인마에게 쫓기다가 힘겹게 살아남는 슬래셔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에린은 도끼를 들고 전사처럼 싸운다. 저택 안의 사물을 활용하고, 사정없이 잔혹하게 살인마를 응징한다. 가족들을 사냥하려 했던 괴한들은 도리어 에린의 사냥감이 된다.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는 이렇다. ‘살인마들이 상대를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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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편이 돌아오면, 생존자의 반격이 시작된다



      1978년 개봉한 영화 <할로윈>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는 죽지도 않고 열한 번을 돌아왔다. (할로윈은 총 13편의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이 많은 영화를 다 볼 필요는 없다. 1978년 첫 번째 할로윈과 2018년의 할로윈만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아쉽게도 지금은 첫 번째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2018년의 할로윈 한 편만 봐도 전작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 무리는 없다.

       

      마이클은 6살의 어린 나이에 누나를 죽였다. 정신 병원에 갇혀 살던 그는 15년 후, 병원에서 탈출해 마을로 돌아온다. 마스크를 쓴 마이클은 우연히 만난 고등학생 로리를 스토킹하며 로리의 친구들을 죽이고 집에 숨어든다. 로리는 마이클과 사투를 벌이다가 경찰에게 구조된다.

       


      할로윈 로리 3.png

       

       

      40년이 흘렀지만 로리는 여전히 공포의 할로윈 밤을 잊지 못한다. 살인마 마이클이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공포는 생존자 로리의 발목을 잡았다. 불안과 강박이 결혼 생활을 망쳤고, 어린 딸에게 생존 훈련을 강요하다가 양육권마저 잃었다. 사람들은 로리를 망상에 빠진 미친 사람처럼 대했다. 그럼에도 로리는 그만둘 수 없었다. 딸과 손녀에게까지 같은 트라우마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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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이 돌아오자 로리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총을 든다. 온갖 무기와 함정을 준비해 둔 로리는 이제 도망치지 않는다. 공포를 끝내기 위해 직접 맞서 싸운다. 트라우마는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지만,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완전무장한 로리는 살인마에게서 가족을 지키고 또 한 번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스크림 마스크.png

       

       

      가면 쓴 살인마는 얼마든지 그 정체를 바꿀 수 있다. 영화 <스크림>이 그랬듯 전편에서 살인마가 죽으면 후속편에서는 '다른 사람'이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하지만 생존자는 후속편으로 다시 돌아온다. 생존자가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는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슬래셔 영화를 보며 이입하게 되는 건 살인마가 아닌 주인공이다. 살인마의 시점에서 보는 관음증적인 시선이나 피 튀기는 재미보다는, 살인마를 두려워하며 도망치다가도 끝내 반격하며 살아남는 쾌감이 더 짜릿한 법이다. 힘없이 도망만 칠 것 같던 주인공이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우는 순간, 영화는 더 흥미로워진다. 그래서 슬래셔 영화는 결국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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