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이 죽음을 앞두고 남겼다고 전해지는 마지막 한마디. “할 말이 있다.”
죽음을 앞둔 허균과 광해군이 마지막으로 독대했다면 어땠을까. 연극 <몬스터 허균>은 바로 이 상상에서 출발한다. 2022년 제19회 공주 고마나루 국제연극제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조선의 이단아 허균과 그를 죽여야 하는 왕 광해군, 권력의 중심에서 자신의 욕망을 좇는 이이첨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홍길동. 그러나 정작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어떤 세상을 꿈꿨는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품은 역사 속 인물을 되살리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허균의 신념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이념 대립: 허균과 광해군, 허균과 이이첨
허균은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대의 엄격한 신분질서와 유교적 봉건체제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던 인물이다. 서자들과 교류하며 사회적 약자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신분을 넘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서자라는 설정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반면 광해군은 왕의 자리에 서 있다. 허균이 꿈꾸는 세상이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더라도, 왕으로서 지켜야 할 권력과 질서가 존재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신념을 이해하면서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이 지점이 작품의 가장 큰 비극이다. 어느 한쪽만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 어렵고, 각자의 논리와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단단하기에 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한 왕과 신하의 갈등을 넘어선다. 특히 광해군이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설득하며 거듭 “제발, 제발”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허균을 살리고 싶은 마음과 그를 살릴 수 없는 현실이 뒤엉켜 있는 듯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별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허균과 이이첨의 대립은 또 다른 결의 긴장을 만든다. 허균은 죄인으로서 목에 쇠사슬을 차고 있고, 그 사슬은 이이첨이 쥐고 있다. 허균이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하면 이이첨은 신하가 높아야 한다는 재상 중심의 사회를 내세우며 사슬을 더 세게 당기고, 허균은 끝내 무릎을 꿇는다. 사슬이 당겨질 때마다 무대에 울려 퍼지는 철컥, 촤라락 하는 금속음은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권력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인간이 권력에 종속되는 순간을 시청각으로 동시에 보여준다.
이이첨과의 대립이 극의 갈등을 날카롭게 벼린다면, 광해군과의 대립은 그 갈등에 비극적인 깊이를 더한다.
이 대립을 지탱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감정을 과장해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기보다 인물의 신념을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연기가 돋보였고, 허균과 광해군의 장면에서는 각자의 생각과 감정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는 균형이 느껴졌다. 오랜 무대 경험에서 비롯된 듯한 안정감과 밀도가 극의 무게를 받쳐 주었다.
무거운 역사를 유쾌하게 풀어낸 현대판 마당극
역사극이라고 하면 무거운 분위기와 진지한 대사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몬스터 허균>은 다르다. 풍자와 해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현대판 마당극이자 음악극의 형식으로 비극적인 역사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 중심에는 악기 연주자이자 극의 흐름에 한마디씩 거드는 '산받이'들이 있다. 전통 연희에서 산받이는 연희자의 말에 응수하며 놀이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산받이들도 연주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대사에 참여하며 극에 감칠맛을 더한다. 극을 이끄는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에 재치 있게 끼어들며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도 한다. 여기에 랩과 현대적인 표현을 적절히 섞어 전통연희가 오늘날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음악의 완성도다. 수많은 악기를 동원하지 않고도 노래와 연주만으로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연주자들은 때로는 악단으로, 때로는 노래하는 배우로, 때로는 이야기꾼으로 기능하고, 각자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공연 전체에 리듬감과 생동감이 살아난다.
홍길동, 허균의 분신
이 작품에서 홍길동은 소설 속 영웅이 아니라, 허균의 신념이 몸을 얻어 탄생한 존재에 가깝다. 극 중 허균은 홍길동전 중 왕을 죽이는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다고 한다. 정권을 바꾸고 나라를 다시 세우는 혁명적인 전개는 소설 속 인물 '홍길동'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책 안에서 스스로 써 나간다. 허균이 차마 쓰지 못한 대목을 허균의 분신이 대신 해내는 셈이다. 이야기는 한번 쓰이면 쓴 사람도 통제할 수 없다. 허균이 사라진 뒤에도 그가 만든 이야기가 남은 이유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뒤의 이야기다. 늙은 홍길동이 등장해, 율도국으로 떠난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에서 잘 살았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아니, 거기도 똑같더이다”이다. 홍길동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를 두고 조선의 명문가 자식이어야 한다는 쪽과 율도국의 핏줄이 이어받아야 한다는 쪽이 갈라지고, 신하들끼리 또다시 싸움이 벌어진다. 떠나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이 장면은 이상향을 찾아 떠난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씁쓸한 사실을 웃음 속에 슬쩍 건넨다.
400년 전 허균의 질문, 우리는 지금 어떻게 답할까
<몬스터 허균>은 허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자유와 평등, 이상사회와 혁명이라는 주제를 통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가능한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허균이 고민했던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완전히 낯설지 않다. 사회의 불합리함을 발견하고도 현실적인 이유로 침묵해야 하는 순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조직의 질서가 충돌하는 순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도 그 가능성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특히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에게 허균의 이야기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협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작품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과거의 인물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역사 속 질문을 다시 꺼내 놓는 것. 이것이 역사극이 현재의 관객에게 줄 수 있는 힘이다.
“할 말이 있다.”
흥겹게 시작한 공연은 마지막에 묵직한 슬픔을 남긴다. 처음부터 이어져 온 흥겨운 노래가 마지막 순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변하고, 노래하는 허균에게서는 자신의 신념만큼은 끝내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꿈꿨던 세상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목소리다. 한바탕 놀이판을 즐겼다고 생각한 순간 인물들의 삶과 신념이 다시 마음을 두드린다는 점에서, 비극성을 잃지 않고 전통 연희와 현대적 감각을 풀어낸 작품의 완성도가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몬스터 허균>은 오랜만에 소극장에서 만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음악, 재치 있는 연출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 다만 좌석의 불편함이 관람에 방해가 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좋은 작품일수록 관객이 공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관람 환경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인물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좋아하는 분, 무거운 역사극보다 풍자와 해학이 살아 있는 공연을 찾는 분,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연극을 좋아하는 분께 추천한다. 신념과 현실의 충돌을 들여다보고 싶거나 『홍길동전』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싶은 분이라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관람 당일에는 중장년층 관객이 많았는데, 이 작품이 오늘날 청춘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만큼 2030 관객에게도 더 널리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할 말이 있다.” 허균이 끝내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400년 전 '천하의 괴물'이라 불렸던 허균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