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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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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보이다>

 

“모든 작가들은 그들만의 수장고를 가지고 있다”

 

후즈아트 첫 기획 전시 <속, 보이다>에서 신진 작가들의 ‘수장고’를 소개합니다. 수장고는 귀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로, 모든 작가들은 그들만의 수장고를 갖고 있습니다. 아직 대중에게 선보이지 못했던 수장고 속 원석들을 처음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속, 보이다> 전시 서문

 

 

태어나 처음으로 전시기획을 하게 됐다. 미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데이터과학' 전공을 공부한 내가 전시기획이라니. 기획한 전시는 <속, 보이다>로 2024/10/12~16에 진행되었고, 약 4개월 간 기획했다. 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여정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 예술로 발걸음을 뗀 첫 시작은 아트인사이트다. 이곳에서 에디터에 이어 약 3년간 컬쳐리스트로 활동하며 문화초대로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는데, 그때 전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나에게 전시는 작가의 개성 있는 표현을 담아둔 영감의 창고이자, 작가의 세계가 담겨있는 공간적인 철학책이다. 여러 다양한 전시를 보다 보니 삶에 큰 메시지를 주는 전시의 제작 과정이 궁금해졌고, 이제는 관람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면의 일들까지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예술기획단체 후즈아트


 

그러나 전시기획이라는 일은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일은 아니었다. 예술 전시를 여는 것은 예술 관련 전공생들에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예술과 관련이 없는 나에겐 막막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SNS에서 청년 단체 후즈아트가 올해 첫 전시기획 단원을 모집하는 것을 보았다.

 

예술에 전공지식이나 경험이 없어도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었다. 예술 기획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고, 혼자는 어려워 함께의 힘이 필요하고, 예술계와의 연결로까지 이어지니 이 활동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예술과 타 전공의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예술계 대학생들의 아이디어, 예술업 종사자의 노련함과 인사이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 배울 거리들이 다양했다.

 

후즈아트라는 청년단체에서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준 덕분에 기획자들은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펼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1n명의 팀원과 전시기획을 위한 4개월의 여정이 시작됐다. 이 여정이 놀라운 이유는 후즈아트는 비영리 청년단체이며 2024 올해 처음 전시 기획이 꾸려져서, 기존 소유 갤러리나 협찬 등은 전무했고, 3~4분기에 시작하여 마땅한 지원사업도 없어 예산도 없었으며, 알고 지내던 작가 풀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들이 많이 담길 예정이니, 이 글을 통해 전시기획자를 꿈꾸고 있는 분, 전시 기획에 대해 궁금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전시 기획 프로세스 

1. 아이디어 발굴


 

전시 주제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팀원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했다. 첫 회의에서의 어색한 공기가 아직까지 생각난다. 첫 회의 때 팀원들은 빔프로젝트 앞에 서서 각자 어떤 전시를 재밌게 봤는지,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나아가 전시 기획을 위해 각자 어떤 전시를 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갔다. 10명이 넘는 팀원들이 각자 열고 싶은 다양한 전시 주제가 나왔지만 신기하게도 여러 주제들 속에서 공통점이 있었고 기획안은 10여 개에서 3개로, 곧 하나로 모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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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처음 공통적으로 모였던 아이디어는 "수장고"이다. 수장고는 '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로 흔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소장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인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보이는 수장고'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그러하여 속을 내비친다는 뜻으로 전시 제목은 <속, 보이다>로 지어졌다. 아이디어와 제목 모두 참신하고 센스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수장고'는 가장 많은 팀원에게 지지받은 전시 주제이기도 했지만, 우려가 많은 주제이기도 했다.

 

우선 일반인들과 친밀하지 않은 주제였다. 수장고가 뭔데? 라고 되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수장고의 컨셉에 대한 의미의 모호성이 문제였다. 초반 기획은 '미래의 수장고에 담길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이 컨셉은 본래 수장고의 의미가 뒤바뀌어 미래와 과거의 개념이 혼재되었고,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는 '수장고'로 관객에게 어떻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을 거쳤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친 결과 수장고는 '개념' 의미만 가져가고 신진작가를 중점으로 전시를 보여주기로 했다. 수장고는 물질적 창고에서 내면의 창고의 의미로 바뀌었다. 바로 신진 작가 내면의 잠들어있던 수장고를 이번 전시로 세상에 소개하는 방식이다.


 

 

2. 갤러리 선정 및 작가 선정


 

갤러리 선정에 있어서도 많은 고난이 있었다. 유동인구와 접근성을 위해 홍대, 성수 등의 장소가 후보군으로 뽑혔지만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뒤따랐다. 또한 위치, 면적, 기간, 비용, 구조 부대시설 등 많은 요소들을 한 번에 살펴봐야 했다. 장소가 넓고 접근성이 좋으면 비싸고, 예산이 저렴하면 층고가 낮고 협소하며 화장실이 문제 거나, 좀 괜찮은 갤러리가 있다 싶으면 해당 날짜에 이미 예약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담당 팀원이 데스크 서치로 장소를 물색하고 개별문의를 한 뒤, 단원들이 직접 갤러리를 사전답사로 살펴보았다. 면적과 접근성을 우선순위로 하여 가장 적합한 뎁센드2 갤러리를 대관했다. 성수역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7~8 작가의 작품을 장소가 확보된 장소였다. 상당한 예산이 대관비로 지출됐는데, 전시 기획이 하반기에 시작되어 대부분 상반기에 진행된 장소대관 지원사업에 응모하지 못한 게 아쉬운 점이다.


후즈아트는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예술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단체다. 예술계로의 발돋움음을 응원하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예술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신진 청년작가를 모집하기로 했다. 선정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 공모전, 커뮤니티에 업로드를 하고 메타 광고도 집행했으나 기대보다 적은 작가신청에 모집이 쉽지 않았다. 올해 후즈아트에서 처음 여는 전시이기에 신뢰감이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단원들이 직접 작가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각종 SNS에서 우리 전시와 함께 하면 어울릴 것 같은 신진작가들을 찾았다. 그들에게 제안을 하고 많은 작가분들이 흔쾌히 우리의 여정에 함께 올라타주셨다. 그렇게 전시 목적과 주제에 따라 적합한 7분의 작가분들은 선발하였다.


작가분들을 모집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전문적인 기획 활동을 위해 운영, 디자인, 홍보팀으로 나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어 그런지 업무강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동시에 단원들의 중도 하차도 있던 시기였다. 나는 전반적인 관리, 회계를 하는 운영팀으로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작가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게 되어 작가와 소통하는 모든 일을 도맡았고, 관련 문서작업을 진행했다.

 

운영팀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라니, 내가 해보지 않았던 업무였다. 그래서 더욱 도전해보고 싶었다. 지금껏 나의 업무 스타일은 마케팅에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해왔고 소통을 즐기기보다는 혼자 하는 일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엔 전반적인 관리를 하는 운영팀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싶었고, 예술가들과 긴밀히 소통해보고 싶었기에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선택했다.

 

 

 

3. 운영팀에서의 일


 

작가 커뮤니케이션

 

작가 모집부터 작가들과 조율해야 하는 모든 업무, 또 공지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요 소통 창구는 오픈채팅방으로 작가들의 문의사항이나 전시 방향에 대한 공지를 하고, 작가 문의나 새로운 의견이 있다면 기획 팀원들과 나누는 일을 했다. 한마디로 작가와 기획단원을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한 셈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제안이나 예상치 못했던 문의가 들어와 기획단원들에게 SOS를 치기도 했고,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해 그걸 해결하느라 밤에도 노트북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잘 진행하는 것보다 잘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는 실감하게 되었다. 전시 기간이 다가올수록 식은땀이 나는 에피소드들이 점점 많아졌다.

 

문제 해결을 하는 와중에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인데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그 사이에서 목적은 확실히 전달하면서 쿠션언어와 같이 부드러운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도했다. 가뜩이나 타인과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성격인데, 제안에 거절을 하고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니. 작가와 기획자와 커뮤니케이션은 개인적으로 몇 배는 힘들게 와닿았다. 힘든 만큼 더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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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작성

 

운영팀에서 또 처음 도전한 일이 있는데, 바로 <속, 보이다> 전시 서문을 작성한 것이다. 글을 쓰는 것만큼은 자신 있고 또 글로 콘텐츠를 소개하는 작업을 좋아하기에 하고 싶은 업무였다. 서문은 전시의 첫인상을 만들고 관람객이 전시를 이해하고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단순한 안내문을 넘어서서 전시 방향성과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수정에 수정을 거쳐 작성했다.

 

우리가 만든 전시가 어떤 전시인지 주제와 목적,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초반 수장고의 물질적인 개념설명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개념만 가져가기로 했다. 초반 메인 문구인 "수장고는 소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다"에서 "모든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내면의 수장고가 있습니다"로 수정되었다.

 

본격적인 전시 서문을 작성할 때, 작가와 관객 모두 포함하기보다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전시의 주제를 명확히 전달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작가는 그들만의 수장고를 가지고 있다"로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으로 작성했다.

 

또한 작가 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전시인만큼 작가의 이야기도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가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덕질과 인터뷰를 하면서 얼마나 깊게 그 사람을 아는지가 일에 있어서 큰 시너지를 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전시 작가 모집 때 받았던 자기소개와 작가 노트, 작품 설명 등을 정독하며 작가를 알아갔다. 어떤 주제를 관심 있게 연구하고 있고, 주로 쓰는 회화 방식이나 표현방법을 알아갔다. 그들이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이나 그림의 표현에서 어떤 작가인지를 넘어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들을 알아간다는 건 각각의 새로운 세계와 철학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획자가 그 누구보다 작가를 잘 알아야 관객에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있다.

 

아쉽게도 전시 서문에는 작가 소개가 포함되지 않았다. 전시의 주제와 기획의도, 기획존 설명이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되었다. 이곳에서 <속, 보이다>를 빛내주었던 7인의 청년작가들을 소개하겠다.

 

 

내면의 세상을 순수한 어린아이와 동물로 표현한 김혜진 작가,

동심과 순수성을 젤리에 담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김지은 작가,

현실과 개념세계의 관계를 탐구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최한결 작가,

자연의 편안함과 일상의 아늑함으로 더 나은 내일을 그리는 문우주 작가,

인간 내면의 에고와 영혼을 직관적으로 포착해내고자 하는 천지용 작가,

사유로 만들어진 감정의 조각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윤영우 작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희망이란 풍경으로 전하고 싶은 임하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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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OT진행

 

후즈아트의 주요 정신은 "예술을 통한 연결로 성장"이다. 이를 우리의 정체성으로 하여 <속, 보이다>에 함께 최종 선정된 작가들과 작가OT를 진행하기로 했다. 서치를 했을 때도 단원들의 전시 경험에서도 전시 진행 시 작가OT는 대부분 진행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같은 전시 공간에서 함께 작품을 거는데 얼굴도, 누군지도 모른 채 전시를 할 수 없었다.

 

이번 OT로 청년 작가들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되었음 했다. 타 대학교 또는 동시대 작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살고 있나,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나. 예술가들이 인사이트를 얻고 영감이 되기를 바랬다. 영감을 받는 것, 좋아하는 예술 등의 질문을 준비했다. 질문 이상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인체에서 영감을 얻는 등 작가들과의 공통점이 있어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OT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획 운영진과 작가진과의 의견 합의였다. 초반 전시 기획은 오픈 스튜디오 형식으로 작가의 작품과 작가의 소장품 등을 함께 디피하는 방식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가들은 이 기획이 전시 방향성과 다르고 구성이 다소 어수선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기획자, 작가 어느 하나를 위한 전시가 아니었기에 합의가 필요했다. 결국 회의를 거쳐 작가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해 작품만 우선 보여주고, 기획자들이 구상한 기획존은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전시서문과 리플릿 등이 완성되고 OT를 통해 작가들과 소통하여 전시 기획 구성이 잡혔다. 이제 전시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다음 편에서는 그 기간 동안 전시 기획존 세부 기획과 전시 설치, 전시 진행 과정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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