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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해 -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도서]

생의 마지막 겨를과 신념의 숭고함을 마주보며

by 조유진 에디터
2026.05.17 18:30

 

 

역사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에는 유독 눈길이 갔다. 한 번 더 눈여겨 보고 싶은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달나라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의 형태나, 모두가 꿈꿀 수 있는 이상향을 그리는 미래가 담긴 작품도 좋아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땀과 피가 묻어나오는 작품들에는 이상하리만치 흥미가 생기곤 했다. 그건 아마도 작품이 그리는 배경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관통하는 현장이자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 같아 보이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거쳐왔을 길은 허구보다도 더 픽션같을 때가 많았다. 인간이기에 상상할 수 있고, 실제로 행동할 수 있으며, 역사가 되어 작품으로 박제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기의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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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시나리오의 형태를 띠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유작으로, 인물들의 대화와 상황의 설명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이어진 공포 정치의 여파로부터 시작한다. 혁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구체제의 상징으로 소수가 된 콩피에뉴 가르멜 수도원 소속의 수녀들이 트론 광장의 단두대에서 순교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블랑슈라는 수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넓은 세상에 자신을 탄생시켜준 어머니의 죽음과 맞물린 블랑슈의 탄생은 말 그대로 삶의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부인을 잃고, 대신 딸을 얻게 된 들라포르스 후작은 이후 생겨난 블랑슈의 병적인 공포증에 대해 걱정한다. 오라버니인 기사와 아버지인 들라포르스 후작의 애정어린 걱정에 블랑슈는 흉흉한 세상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의견을 내고, 수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 공포정치로 이어지며 그 여파가 수녀원으로까지 치닫게 되고, 구체제의 상징인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다. 소수파가 된 수녀원의 자매들은 순교를 서원하고, 블랑슈는 이에 동참하지만, 막상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자, 공포에 질린 나머지, 수녀원에서 도망친다. 그러나 동료 수녀들이 결국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되자, 단두대가 놓인 광장 속 군중들 사이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며 죽음을 향해, 순교를 향해 스스로 내린 결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블랑슈는 들라포르스(용기와 힘)을 뜻하는 가문의 이름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꼬리표에 늘 시달린다. 수녀원에서조차 동료들과 신념에 대한 뜻을 저버리고 공포심에 가까스로 도망친다. 그러나 수녀들의 처형이 끝나가는 시점에 “임하소서 성령이여”를 부르며 단두대를 향해 결정적인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자 한다.


이처럼 순교를 마주한 인간의 심리를 담은 작품은 목을 겨누는 칼날 앞에서 꺼지려는 삶의 불씨를 비추는 동시에, 그 인간 안에서 되살아나는 영적인 생명력을 겨냥한다. 과감하게 생을 저버리며 자신의 신념에 대한 뜻을 앞세우는 인간에게서는 일종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자신의 목숨과 신념을 뒤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선택은 늘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 관심 있게 본 작품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위그노 교도(A Huguenot, on St. Bartholomew's Day)”에서도 흥미롭게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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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위그노 교도”은 벽 앞에서 연인이 애틋하게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다. 16세기 프랑스 종교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당시 권력을 거머쥔 가톨릭 강경파 세력이 소수파였던 위그노를 학살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담는다. 학살이 일어난 밤, 가톨릭 신자인 여성은 위그노 교도인 연인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가톨릭 상징인 흰 천을 연인의 팔에 억지로 두르려고 한다. 그러나 남성은 단호하고도 순수한 눈빛으로 흰 천을 거부하며 자기 생과 사랑하는 연인 대신 굳건한 신념을 선택하려고 한다.


사실 두 작품은 역사적 배경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기, 혁명 정부가 구체제의 상징으로 가톨릭을 박해하며 소수파가 된 수녀들을 처형하는 상황을 담는다. 반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위그노 교도”에서는 16세기 프랑스 가톨릭 강경파 세력이 소수파인 위그노에 대한 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두 작품 모두 지배적인 이념이나 권력이 소수를 탄압할 때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집중한다.

 

그러나 종교에서 벗어나 죽음을 직면한 인간에게 초점을 두고 감상하면 두 작품 모두 삶에 대한 애착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을 끝내 선택하는 용기에 대한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정체성과 목숨을 교환하는 순간, 무섭게 다가오는 생의 마지막 겨를과 신념의 숭고함은 인간이 죽음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성함으로 변환된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속 다양한 방면의 죽음으로 전개되는 블랑슈의 삶은 결국 공포 정치의 희생양으로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작품은 역사의 한 장면을 담아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개인의 삶이 얼마나 볼품없고 가냘픈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폭력적인 상황과 부조리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용기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드러내며 계속해서 뇌리에 남긴다.

 

그렇게 해서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은 계속해서 독자들의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지난 시대를 실재했던 누군가의 피와 땀이 섞여 있기에, 그리고 그 상황에 부닥쳐진 자가 바로 나였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계속해서 돌이켜보게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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