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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슈게이즈, 소음과 잔향 사이 [음악]

국내 음악 속 슈게이즈

by 오가영 에디터
2026.09.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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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음악은 가수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주기 위해 악기 소리를 뒤로 물린다. 그러나 슈게이즈는 그 반대에 놓여있다. 기타 사운드는 보컬을 덮을 만큼 크게 들리고, 악기 소리 사이에 묻힌 가사는 또렷하게 들리지 않는다.

       

      슈게이즈(Shoegaze)는 신발을 뜻하는 ‘슈(Shoe)’와 응시한다는 의미의 ‘게이즈(Gaze)’가 합쳐진 이름이다. 1990년대 초 영국 음악 매체는 무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연주하던 밴드들을 ‘슈게이저’라고 불렀다. 발치에 놓인 여러 개의 이펙터 페달을 내려다보느라 관객과 눈을 맞추지 않는 모습에서 비롯된, 처음에는 다소 조롱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여러 겹으로 쌓인 악기 소리는 크고 거칠며, 보컬은 그 사이에 들릴 듯 말 듯 묻힌다. 시끄러운 기타 사운드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데도 곡의 분위기는 오히려 내향적이고 몽환적이다. 거친 소음과 여린 목소리가 함께 들리는 것은 슈게이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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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말 영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슈게이즈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슬로우다이브, 라이드, 러쉬 등을 중심으로 1990년대 초 짧은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그런지와 브릿팝이 부상하고 영국 음악 매체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한동안 유행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장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에는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통해 재해석됐고, 2010년대에는 1세대 밴드들의 재결합과 함께 또 한 번 조명됐다.

       

      2020년대의 슈게이즈 붐 역시 갑작스러운 부활이라기보다 여러 차례 이어진 재발견에 가깝다. 스트리밍과 숏폼 플랫폼을 통해 이전 세대의 곡이 새로운 청자에게 도달했고, 젊은 음악가들은 슈게이즈를 이모와 슬로코어, 전자음악 등과 자유롭게 섞기 시작했다. 일부 음악가들은 전문 스튜디오가 아닌 방에서 노트북과 가상 악기를 활용해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 슈게이즈


       

      국내에서도 비둘기우유와 불싸조, FOG 등 슈게이즈 계열의 음악을 들려준 팀들이 꾸준히 활동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널리 조명받지는 못했다. 새로운 전환점 중 하나는 파란노을이 2021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었다. 방에서 홀로 만든 이 앨범은 해외 음악 커뮤니티와 매체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아시안 글로우와 브로큰티스, 왑띠 등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동시대 음악가들도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슈게이즈를 파란노을 이후의 음악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슈게이즈의 문법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국내 음악 곳곳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음 세 곡은 국내 슈게이즈의 완전한 계보라기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밴드 음악 속에서 그 소리가 어떻게 쓰이고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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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발표된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는 국내 모던록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델리스파이스를 슈게이즈 밴드로 분류하기는 어렵고, 이 곡 역시 보컬과 각 악기의 소리가 비교적 뚜렷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슈게이즈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기타의 잔향과 노이즈가 겹쳐지며 소리가 두꺼워지는 방식에서는 슈게이즈적인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혁오, 〈New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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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오가 2020년 발표한 앨범 『사랑으로』의 마지막 곡 〈New born〉은 그 길이가 8분 45초에 달한다. 긴 재생 시간에 비해 곡의 뼈대는 비교적 단순하다. 곡은 하나의 리프를 계속 반복하며, 여기에 더해지는 악기 소리로 변화를 만들어 낸다.

       

      보컬이 곡의 중심을 끝까지 이끌지 않고 악기 사운드가 서사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New born〉은 슈게이즈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반복은 단조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닌, 소리가 변하는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같은 리프 위에 여러 겹의 악기 소리와 노이즈가 쌓이며, 사운드는 점차 크고 거칠어진다.

       

       

       

      파란노을,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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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두 곡에서 슈게이즈의 성향과 문법을 발견할 수 있다면, 파란노을의 〈아름다운 세상〉은 슈게이즈를 중심에 둔 새로운 국내 음악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곡은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의 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이다. 매끄럽게 정돈되지 않은 기타와 거칠게 몰아치는 드럼이 곡을 가득 채우고, 보컬은 그 아래 낮게 묻힌다.

       

      그 안에서 파란노을은 “세상살이와 멀어져 가는 내 자신이 너무나 역겨워”라고 노래한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과 거듭된 실패를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고, 이어 어리고 미숙했던 날들마저 사라지기를 바란다. 제목 속 ‘아름다운 세상’과 화자가 바라보는 자신 사이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가사에서는 자신의 실패를 감추고 싶다고 말하지만, 거친 기타와 드럼 사운드는 곡 전체를 큰 소리로 메운다. 숨고 싶다는 고백이 오히려 가장 시끄러운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세상〉은 역설적이다.

       

      파란노을의 음악은 1990년대 영국의 슈게이즈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방 안의 컴퓨터와 제한된 장비에서 나온 거친 음질, 이모의 정서와 한국어로 쓰인 자기혐오의 언어가 기존의 문법과 뒤섞인다. 이 불완전함은 감춰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음악을 이루는 일부가 된다. 능숙하게 다듬어진 소리보다 실패와 열등감이 묻은 소리가 더 솔직할 수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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