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우리의 여름에게》가 2026년 7월 16일부터 9월 27일까지 열리고 있다. 다섯 개의 기념 특별전 중 청년작가전에 해당하는 이번 전시는 26팀의 청년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 서문을 보고 떠오른 비유가 있다. 사람의 일생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해 지금이 몇 시쯤인지 가늠하는 '인생 시계'처럼, 삶을 계절로 바꾸어 본다면 청춘은 여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면서도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계절이라는 점에서, 여름은 청년 작가들의 시간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은유로 제시된다.

전시의 핵심 개념: 무작위성
이번 전시가 내세우는 핵심어는 '무작위성'이다. 이는 언뜻 낯설게 들리지만, 전시 구성 방식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참여 작가 26팀은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가구, 건축, 도자, 디자인, 섬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이들에게 장르는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영역에 가깝다. 따라서 전시는 이들을 기존의 장르 구분에 따라 배치하는 대신, 장르의 경계를 걷어내고 '예술'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 나란히 세웠다.
정해진 관람 동선 대신 관람객이 자유롭게 방향을 선택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무작위성'은 단순히 우연을 연출하는 장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작업을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하게 하는 방법론에 가깝다. 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채 여러 가능성 사이를 오가는 청년의 시간과도 닮아 있다. 전시는 이 불확실성을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다룬다.
관람객이 만들어가는 동선과 공간
이 개념은 실제 관람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일반적인 전시는 입구에서 출구까지 기획자가 정한 순서를 따라가게 한다. 반면 이 전시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람객이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에 따라 마주하는 작가와 작품의 순서가 달라지고,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건너뛸지, 어느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를지도 관람객의 몫이 된다. 작품의 총량은 같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은 관람객 수만큼 달라지는 셈이다.
이는 정해진 목차 대신 알고리즘이 흩어놓은 선택지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피드를 만드는 오늘날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도 닮아 있다.

공간 구성 역시 이 원리를 뒷받침한다. 전시장은 하나의 큰 홀로 트여 있지 않고, 크고 작은 방과 벽으로 잘게 나뉘어 있다. 관람객은 다음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알지 못한 채 벽을 돌아 들어가야 하며, 이 때문에 눈보다 발이 먼저 공간에 도착한다. 발걸음을 옮긴 뒤에야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작품과 마주하게 되는 구조다.
관람객의 선택은 더 작은 단위에서도 이어진다. 곳곳에 놓인 팸플릿을 꺼내볼지 지나칠지, 작품 곁의 여러 키워드 중 무엇을 먼저 읽을지 정하는 것까지도 관람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던 관람객들은 어느 순간 같은 작품 앞에 도착한다. 무작위하게 흩어진 선택이 저마다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경험들은 결국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겹친다.
이때 무작위성은 무질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예기치 않게 관계를 맺도록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제목이 담은 의미
이 모든 경험은 전시의 제목에 응축되어 있다. 《우리의 여름에게》는 편지의 첫 줄, '~에게(To.)'로 시작하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편지의 수신인이 된다. 정해진 순서 없이 26팀의 세계를 오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나는 동안 편지의 내용은 조금씩 채워지고, 전시장을 나설 때는 그 편지의 발신인이 된다.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순서로 걸었는지, 어디에서 오래 머물렀는지에 따라 완성되는 편지의 내용도 저마다 달라진다.
따라서 제목은 관람객 역시 그 편지를 완성하는 사람으로 초대하는 문장에 가깝다. 정해진 답을 받아가는 관찰자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나가며
전시가 말하는 여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궤적이며, 삶에서 가장 뜨거운 한가운데를 뜻한다. 26팀의 작가들이 서로 다른 매체와 방식으로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듯, 관람객 역시 정해진 길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를 통과한다.
서로 다른 작업과 선택이 한 공간에서 만나고 겹치는 과정은 청춘의 시간이 그러하듯 하나의 방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관계 맺기는 흩어진 채로 남지 않고, 서로 섞여가며 하나의 연대를 이룬다.

이 연대는 작품이 지닌 생동감에서도 비롯된다. 청년 작가들의 작업은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만큼 자유롭고, 그만큼 날것의 에너지를 지닌다.
이 활력이 전시 공간 전체에 퍼지면서, 관람객은 단지 작품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에너지 안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려 들어간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관람객을 같은 자리로 모으고, 낯선 마주침을 불편함이 아닌 환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 전시에서 무작위성은 우연 자체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에 가깝다. 무엇이 될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이기에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만나고, 때로는 다른 길을 걸은 사람과 같은 곳에 도착한다.
서로 다른 여름이 한 공간에서 겹쳐질 때, '나의 여름'은 '우리의 여름'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