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 속 숨겨진 예술 찾기: 전시 '매일, 예술' [미술/전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매일, 예술》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7.12 08: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646dbd67eff3a4.46994861-768x1087.jpg

 

바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특히,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대상 속에도 아름다움이 담겨 있으며, 다양한 기능과 목적을 가진 사물들도 때때로 각자의 미감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매일, 예술》은 디자인과 건축, 공예와 같이 실용성과 예술성의 관계를 풀어내는 영역을 다루는 작가 4인의 작업을 선보인다.

 

 

20230621-20230621_143402.jpg


 

첫 번째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한가운데 놓인 직육면체의 금속 집합체와 그 바깥으로 천장을 지탱하는 듯한 3개의 기둥이 보인다.

 

황형신의 〈레이어드 스틸〉은 불규칙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이루어진 여러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들로 이루어져있다. 마치 몬드리안의 그리드가 삼차원의 공간에 구현된 듯한 모습이었다.

 

가구를 제작하는 그의 의도에 의해 실제로 평상과 같이 앉을 수 있는 기능을 한다.

 

금속 특유의 차가움과 매끄러움 때문인지, 전시장 공간에 있는 작품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앉기에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앉으니 조금 다른 의자라는 느낌과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20230621-20230621_143513.jpg

 

 

세 개의 기둥(처럼 보이는 것)은 임정주의 〈토템을 위한 논엘로퀀트〉다.

 

검은색의 기둥은 자세히 보면 탄화참나무 조각이 쌓인 것이다. 이는 동묘에서 산 촛대가 알고 보니 화문석을 짤 때 쓰인 고드레였다는 작가의 일화로부터 기인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실제 제작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물이 사용되는 경우다.

 

non-eloquent는 ‘기능적이지 않은’이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 eloquent가 ‘유창한’, ‘웅변을 잘하는’이라는 점에서 ‘침묵하는’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이 침묵은 제작자(의 의도)의 침묵으로, 결국 대상이 무엇인지는 그것을 수용하고 사용하는 주체에게 전적으로 달렸음을 말한다.

 

한편, 각 요소가 층층이 쌓여 탑의 형상을 띠고 있는 점은 주술적인 면을 보여주며 작품의 침묵이 각 개인의 소망이나 염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듯 보이기도 한다.

 

 

20230621-20230621_150327.jpg

 

 

〈토템을 위한 논엘로퀀트〉가 수직적 쌓기로 구성되었다면, 〈논엘로퀀트 무리〉는 수평적 나열을 보여준다.

 

목재, 콘크리트, 오석, FRP와 같은 다양한 재료가 각기 다른 형상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며 어떤 기능을 가진 사물과 조형적 미감을 나타내는 대상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정해진 레일 위에 놓인 세 개의 목재 구로 구성된 〈구, 잔상〉은 의자이면서 동시에 굴러갈 수 있는 일종의 공이기도 하다. ‘잔상’은 관람자의 개입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20230621-20230621_142844.jpg

 

 

권중모는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미감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다. 먹과 옻칠을 입힌 한지를 겹치거나 접고 그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빛을 발산하는 작업이 특징이다. 어떤 것을 기리는 기념비 같기도 한 〈뉴 웨이브 시리즈 조형〉은 한지, 나무와 같은 소재를 사용하여 한옥의 창호를 연상시킨다.

 

조형은 아래 좌대와 같은 부분과 위의 세 유닛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부분은 마름모의 형태가 반복되며 이는 한지의 겹침무늬에서도 이어진다. 세 유닛은 완전한 마름모가 아니기에 위로 갈수록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기울어져 보이면서도 빛의 방향이 이를 상충하여 균형 잡히도록 한다.

 

작품 속 빛은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한지를 통해 형태와 물질성을 획득하는 듯하다.

 

 

20230621-20230621_150124.jpg

 

 

다른 방에 들어가면 바닥에 놓인 두 이불을 마주하게 된다. 정확히는 좌대 위에 올라가 있다.

 

이슬기의 〈이불 프로젝트 : U〉는 일상품을 제작하는 전통 공예에 구술문화를 접목한 결과다. 그가 과거 누비이불을 덮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통영 누비 장인과 협업하여 제작한 이불로, 친숙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면서도 전시장에 있어선지 조금 낯설기도 하다.

 

각 이불에서 기하학적 형태로 그려진 전통적인 색면들은 작품명을 알고 나면 특정 형상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U: 학수고대〉에서 목을 길게 뺀 학의 모습이나 〈U: 수박 겉핥기〉의 커다란 수박의 모양이 그렇다.

 

이슬기는 개인적 공간인 이불에 공동체 의식인 속담을 부여함으로써 이불을 ‘주술적 조각’으로 변모시켰다.

 

 

20230621-20230621_150913.jpg

 

 

흥미로운 점은 4개의 이불 작품 중 두 점은 좌대 위에, 다른 두 점은 벽면에 설치하였다는 점이다.

 

뚜렷한 질감이 있는 삼차원의 물질로서 조각이면서도 회화적인 화면을 갖고 있는 이불은 조각도 회화도 아니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따뜻함과 포근함의 감각으로 머물면서 자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대상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 내에서 소위 순수예술과 기능적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람자 혹은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 경험의 위상이 높아졌다.

 

익숙하고 무관심했던 주변의 대상들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감각 경험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길을, 전시 매일 예술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정충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