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낙화놀이를 본 적이 있다. 수면 위로 매달린 낙화봉 끝에 불을 붙이면, 타오르던 불꽃은 이내 불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한다. 수많은 불씨가 줄기를 이루듯 수면 위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채 이따금씩 불씨 하나를 눈으로 끝까지 쫓아본다. 시선이 수면에 닿는 순간 불씨는 사라지고 만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환하게 흩날리던 불씨들이 서서히 스러져가는 모습이, 재가 되어버리는 불씨들의 운명이. 소멸로서 비로소 낙화는 완결된다.
그리고 여기, 낙화를 닮은 한 남자의 인생이 있다.
"황야에서 숲까지 여기 초록이 있지"
뮤지컬 ‘초록’은 찬란히 피어오르다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리는 인물, ‘토마’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다. 이 극을 처음 접했을 때, ‘초록’과 비극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흔히 초록의 이미지는 움트는 생명, 안식 등에 어울리는 색으로 여겨진다. 포스터에서도 흔한 ‘초록’찾아볼 수 없었다. 이 극에서 ‘초록’이 어떤 상징으로 쓰일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극 중 ‘초록’은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며 극의 굵직한 감정선을 이끈다.
극은 현재(프롤로그)-과거-현재(에필로그)의 구조를 취한다. 짧은 프롤로그를 통해 이 극의 결말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먼저 보여준 뒤,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토마의 삶이 어떻게 피어올랐다가 스러지는지 보여준다.
그 굴곡진 인생에는 상단주의 딸이자 장차 상단의 후계자를 꿈꾸는 당찬 여인 유희, 바다에서 구해 올린 수수께끼의 인물 류인, 그리고 토마의 하나뿐인 동생 영진이 등장한다. 류인과 영진은 한 명의 배우가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반쪽이면 반쪽답게 살라.” - 차별과 멸시의 색
극 중 배경이 되는 1900년대 초 황해도 해주, 뱃사람들에게 초록은 생명을 삼키는 재앙의 색이었다. 이런 곳에서 흰 피부에 초록 눈을 한 토마가 환대받을 리 없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지만, 그에게는 살아갈 ‘빛’이 있었다. 바로 이부동생 ‘영진’이다. 한성에서 공부하는 동생의 학비를 버는 것.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전부였다. 친아버지로부터 버려지고,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받던 아픈 과거를 뒤로한 채, 동생은 기회의 땅으로 보내고 자신은 이곳 바다로 왔다.
“어린 동생을 안고 말해
나 이제 널 위해 살게
넌 나만 믿어
내 인생 헛되지 않았단 증거가 돼줘”
토마는 영진을 자신의 ‘빛’이라 표현한다. 그를 향한 차별은 이곳 해주에서만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면서 온갖 수모를 겪었을 그에게 영진은 고달픈 인생 속에서도 그가 살아가야 할 하나의 이유였다. 남은 거라곤 어린 동생뿐인 그에게 초록색 눈은 너무 가혹했다. 바다도, 만선도, 삶의 의지마저도 모두 영진에게서 비롯된 것. 이것이 토마의 인생이었다.
“눈보라 치는 날도 초록으로 있지” – 움트는 자연의 색
그런 토마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해주 바다 상단주의 딸 ‘유희’이다. 오빠들을 제치고 상단을 물려받고자 손목에 얼룩을 묻힌 채 뛰어다니는 그녀는 ‘자신만의 만선’을 꿈꾸는 당당한 여인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라는 토마와 비슷한 아픔을 겪지만, 그녀에게선 그와는 다른 밝은 기운이 풍긴다. 밝은 넘버, 당찬 가사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살아온 배경의 차이는 두 사람의 길이 비슷하면서도 처음부터 달랐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곤경에 처한 토마를 유희가 도와주게 되며 처음 만난다. 그녀가 처음 토마의 눈을 보고 건넨 말은 '아름다워요'였다. 둘은 이후 몇 번 더 마주치며 점점 가까워지고, 함께 낙화봉을 만들며 부르는 넘버 ‘초록’에서 유희는 토마에게 외부에도 굴하지 않고 푸르른, 황야에서 숲을 거쳐 바다까지 흐르는 대자연의 초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러준다.
“내겐 너(나)의 초록이 다짐과 용기로 남았다.”
평생을 자신의 초록을 낙인이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초록 눈과 초록 바다. 초록은 운명이 그에게 던져준 재앙과 다름없었다. 유희가 심어준 초록의 기쁨은 넘버 이후 토마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번지게 만들었다. 토마의 삶이 유희를 만나 조금씩 반짝이고 있었다.
유희라는 또다른 빛은 토마의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린다. 넘버 '내가 원하는 건'은 유희가 자신의 꿈을 노래하는 곡이지만, 이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따라부르는 토마의 내면에서는 어렴풋한 욕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류인이 등장한다.
“너에게 닥칠 이 엄청난 행운을 감당할 수 있겠어?”
토마가 바다에서 구해낸 그는, 마치 토마를 이전부터 쭉 지켜봐 온 듯 익숙하게 대한다. 이내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 마냥 예언을 하며 토마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다. 류인의 예언 덕분에 토마는 유희의 시선 속에서 꿈에 그리던 만선을 이루고, 유희를 향한 자신의 마음도 확인하게 된다. 만선을 통해 바다 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토마는 점차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활짝 피어난다.
토마의 인생은 1막 클라이맥스인 '상어잡이'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유희는 '청상아리를 잡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직접 청상아리를 잡기로 한다. 물론, 토마와 함께.
본격적인 상어잡이 전 토마와 유희가 출항을 준비할 때 류인은 별이 수놓인 밤하늘 아래에서 그들을 맴돌며 출정을 노래한다. 넘버 '출정표'의 느릿한 멜로디와 여유로움은 큰 일을 앞둔 두 사람과 관객에게 폭풍전야 같은 고요를 선사한다. 이 넘버에 머물며 잠시 쉬어가다 보면 '출정표'에서 '상어잡이'로 넘어가며 분위기가 전환된다. 박진감 넘치는 리듬 위, 토마가 건네는 미끼와 낚싯줄을 류인이 하나씩 받아 바다로 던진다. 그는 마치 상어 인 양 무대 위를 휘저으며 발을 쿵쿵 구르기도 하며 이내 낚줄을 끊어버린다.
"내가 널 잡기만 하면
뾰족하게 날선 시선들 사이에
유희씨 마음도 사람들 인정도 차지하게 될 테니"
두 번의 실패. 마지막 한 번의 기회에 토마와 유희는 사력을 다해 낚싯대를 당긴다. 가까워진 상어를 향해 토마가 창을 던진다. 그 창은 류인의 손을 거쳐 상어에 정확히 꽂힌다. 둘만을 비춘 조명 속 토마와 유희는 환희의 키스를 나눈다.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순간이었다. 틀림없는 희극의 순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걸 그대로 두고 보겠나.”
하지만 류인이 습관처럼 내뱉던 이 말이 걸린다. 그 결말이 비극임을 알기에,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냥 기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어딘가 불편함을 남긴 채 무대는 암전되고, 삼 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눈에 보이는 진실조차도 못보는 게 인간입니다." - 질투와 의심의 색
영미권에서 '초록'은 질투와 부러움을 상징하는 색채로 통용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에 나오는 'Green-Eyed Monster'라는 표현이 그 계기가 되었는데, 뮤지컬 '초록'에서도 이러한 <오셀로>의 색채적 상징을 통해 질투를 그려냈음을 창작진이 미리 밝힌 바 있다. 2막으로 넘어오면서 자연스레 이 상징 하나만 남게 되어 결국 이 극이 비극으로 치닫는 원인이 질투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토마와 유희가 같은 곳을 바라본지도 삼 년, 유희는 자신만의 선단에서 꿈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었고, 토마 또한 상어잡이 이후로 비교적 안정된 삶을 보낸다. 곧 있을 낙화놀이의 제문을 읽는 위치까지 올라 선 토마 앞에 뜻밖의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토마의 동생 영진이다.
영진은 끝내 시험에 합격하여 토마를 보러 해주로 온 것이다. 십 년만에 재회한 두 형제는 서로를 얼싸안는다. 눈물의 감격도 잠시, 영진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확인한 토마의 표정이 묘하다. 그것은 확실히 반가움의 표정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의 얼굴에는 류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멸시하던 의붓아버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색이 토마의 얼굴에 스친다. 기뻐야 할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는다.
영진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했다. 사람들은 토마가 아닌 영진을 보기 위해 그의 집 문을 두드렸고, 결혼 이후에도 토마를 만나주지 않던 장인어른은 영진의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영진과의 만남을 청했다. 자기 대신 유희의 옆에 서 있는 영진을 바라보는 이때부터였을까, 그의 내면 속에서 질투의 감정이 서서히 끓어 오르고 있었다.
토마는 급히 류인을 찾는다. 그는 왜 갑자기 류인을 찾은걸까.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끝에는 류인이 아닌 영진이 서 있다. 영진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토마의 망상이 시작된다. 과거 기억의 고통에 몸부침 치는 토마 앞에 홀연 류인이 나타난다. 영진의 얼굴을 한 채로. 평생을 통해 쌓아온 불안과 류인의 등장은 유희와 영진을 향한 토마의 질투와 의심은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 보라색 조명이 켜지면 유희와 영진은 노골적으로 연인의 기색을 드러낸다. 모두 토마의 망상이다. 토마는 둘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음을 직감하고, 그 의심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간다.
토마의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질투는 열등감을 낳고 스스로를 잠식한다. 질투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한 인간의 모습이 비춰지며 무대는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세 개의 넘버에 걸쳐 이어지는 그의 망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유희와 영진의 관계가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내 눈을 가린 건 그 뿐" - 그리고, 파멸의 색
모두가 고대하던 낙화의 밤, 제문을 읽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분명 토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문을 든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목소리는 이내 영진의 목소리로 바뀐다. 극 내내 토마가 쌓아올린 탑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망연자실한 그의 표정은, 곧이어 시작된 낙화놀이의 아름다움과 대비되어 더욱 처연하게 보인다. 무대 뒤쪽으로 금빛 가루가 일제히 쏟아져 내린다. 모두에게 아름다워야 했을 그 낙화는,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어 버렸다.
질투로 인해 나약해질대로 나약해진 감정은 결국 영진을 향한 원망을 터트리고 만다. 억눌렸던 과거 기억들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며 토마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결국 토마는 한때 자신의 빛이었던, 아니 빛이라 여겼던 영진을 향해 격분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있던 영진을 때리고 목을 조르는 동안, 류인이 등장해 외친다.
"손끝을 알잖아, 자 기억해봐
살기 위해 그 손을 뻗었던 그 밤
그래, 바로 너야 저 바다에서
널 구한 건 바로 너"
격해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목을 조르던 토마의 손이 영진을 물에 빠뜨리기 직전 유희가 영진에게서 토마를 떼어냈지만, 몸을 일으키지 못한 영진은 결국 바다에 빠지고 만다. 유희의 절규가 울려 퍼진다.
의외로 여기서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멍한 표정의 토마와 유희의 절규 속에서, 갑자기 객석의 불이 하나 둘 켜지며 전구가 객석 뒤편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내려온다. 그것은 평생 자신을 빛이라 여겼던 형 토마를 위해 영진이 한성에서부터 준비해온 진짜 빛, '전기'였다. 토마가 두 사람의 사이의 은밀한 비밀이라 여겼던 것은, 실은 자신을 위해 두 사람이 오래 전부터 준비한 선물이었다.
토마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왜 이제야 말했냐며 유희를 원망해 보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질투와 욕망은 하나뿐인 동생의 죽음을 초래했다. 새로운 빛 앞에서 그의 오랜 빛이 꺼지는 순간이었다. 극심한 죄책감으로 울부짖는 토마 앞에 또다시 류인이 나타난다.
아니, 사실 그는 항상 토마와 함께 있었다. 생각해보면, 토마가 무엇을 원하고 욕망할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후 질투와 불안의 감정이 겉잡을 수 없이 부풀었을 때도 그가 나타나 토마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했다. 류인은 토마가 흘려온 감정을 먹고 자라난, 그의 내면이 인격화된 존재였다. 토마의 행동을 조종하고, 잘못된 것을 보도록 이끈 것은 결국 외부의 무언가가 아닌 자기 자신었다. 원인을 자꾸만 외부에서 찾는 토마를 향한 류인의 꾸짖음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왜 류인이 영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답은 결국 토마의 삶 속에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욕망일까, 아니면 질투일까. 바로 '죄책감'이다. 토마가 의붓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하던 그 날, 살고 싶은 강렬한 욕망 속에서 류인이 태어났다. 토마는 살기 위해 의붓아버지를 죽였지만, 자신이 죽인 그 사람은 결국 영진의 아버지이다. 때문에 그는 엄청난 죄책감을 떠안는다. 그렇다, 영진은 토마의 '빛'이기 이전에 '죄책감'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토마의 거대한 죄책감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류인은 영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 불안, 내 질투, 내 욕망
내 눈을 가린 건 그 뿐"
영진의 죽음 이후 토마는 류인이 지켜 보는 앞에서 영진에게서 받은 만년필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모든 비극의 시작인 자신의 초록 눈을 찌름으로써 그는 모든 초록으로부터 벗어난다. 동시에 그것은 정념에 가려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한 자신을 향한 자기 파괴이기도 하다. 비극이 되어버린 그의 인생이 스친다.
"낙화가 찬란히 피어오를 때
나 잠시 빛났으나
결국 남은 건 타버린 재뿐"
'출정표'. 토마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앞두고 나왔던 이 넘버는, 그의 파멸 이후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비극의 종막을 알리는 듯한 울림 속, 토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 속으로 침잠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운명이란 결국 삶을 운반하는 것이었으며, 삶은 자신이 선택한대로 흘러가는 것이었음을.
초록이 머문 자리
"여기 초록이 있었지."
에필로그. 초록이 머물던 자리는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운명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유희에게 담담히 전한 토마는, 그녀와 다른 길로 나아가며 극은 막을 내린다. 어쩌면 처음부터 달랐던 길. 그들의 닿지 않는 춤은 마치 두 사람의 어긋난 결말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넘버 '초록 rep.'의 초록은, 쓸쓸함만을 남긴다.
그들의 비극은 다른 것들에 비해 유독 쓰라렸다. 토마의 삶이 너무 불쌍해서였을까. 그 먹먹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극의 비극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파괴적이지 않으면서 한때 그에게 빛이 되어줬던 주변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극을 보며 오해하면 안되는 점은, 영진은 그저 순수하게 형의 평안만을 바라는 동생이었다는 점이다. 극 중 대놓고 비춰지는 유희와의 모습들과, 류인을 왔다갔다 하는 모습 때문에 자칫하면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해주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우쭐할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을 위한 형의 헌신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넘버 '낙화의 밤'에서 영진의 가사 "그래서 말하죠 내가 누구인지. 오늘날 나를 만든 게 누구인지도. 그 마음 변함 없어."에서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기고 떠난 선물에서도 그가 오직 형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희 또한 마찬가지다. 영진은 사랑하는 남편의 하나뿐인 가족이었기에 정성을 쏟은 것 뿐, 영진에게 건넨 손수건과 다정한 말들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한성에서 영진을 만났던 일도, 그가 해주로 오고 있다는 사실도 토마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이유는 결국 그의 기쁜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파괴적인 결말로 끝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일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은 토마의 눈에서 왜곡되어 재앙이 되버렸고, 결국 더 큰 슬픔을 낳았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사건들의 원인은 토마의 외부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건 그의 내면에서 촉발되었다.
특히 끝내 파괴된 영진과 토마의 관계는 내게 풀리지 않는 질문을 남겼다. 영진을 향한 토마의 헌신은 정말 하나뿐인 가족을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게 맞았을까. 토마는 영진을 가족이라는 껍질 아래,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존재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 답은 토마만이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극 중 영진이 토마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자기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거라는 말에 토마는 '가족이란 다 그런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이 그의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질투와 의심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 자신에게 빛이었던 자에게 해를 입힐 수 있을만큼 나약한 감정이라는 사실이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다.
꼭 재가 되어야만 했을까. 운명이 뭐길래 그의 삶은 불꽃놀이가 아닌, 낙화가 되었을까. 찬란히 타오르다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낙화와 같은 그의 삶이 너무 쓰릴 때면 생각한다. 비록 그의 삶의 빛은 꺼졌지만, 분명히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음을. 불씨가 꺼지기 전 그의 모습이 약간의 위안을 준다.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낙화를 멈출 수는 없지만, 그에게 혹여라도 희미한 불씨가 남아있다면 그 남은 불씨가 바람에 멀리 흩날려 조금이라도 더 빛을 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