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VaQi(바키)의 연극 <섬 이야기>(연출 이경성)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재현하는 대신, 사건을 다룬 사료와 리서치 기록, 그리고 객관적인 정황들을 무대 위에 정돈해 놓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역사적 참사를 다루는 기존의 많은 작품들이 감정의 극대화나 비극성의 직관적 전달에 집중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 공연은 의도적이라고 느낄 만큼 거리를 두고 사실을 관찰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공연의 첫인상을 결정지은 것은 무대 위에서 작동하는 물리적 장치들이다. 무대 양쪽에 고정된 두 대의 자전거가 있다. 배우들은 나레이션과 함께 자전거에 올라타 끊임없이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는 무대에 고정되어 있기에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페달을 밟음에 따라 자전거 조명의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하며 역동성을 대신 표현한다. 자전거는 페달을 굴리는 행위를 멈추는 순간 바로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 머무는 이 장치는, 과거의 사건을 멈춰있는 역사로 고정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돌려내야만 하는 연극적 동력으로 읽힌다.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미디어 장치 역시 관찰 가능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배우의 손에 들린 이어폰으로부터 배우의 입으로 전해져 오는 제주어 대사는 낯설고 생경한 음성으로 다가온다. 표준어에 밀려 실생활에서 사라져 가는 제주어의 현주소는 4.3 사건의 기억이 세대를 거치며 희미해지는 양상과 물리적으로 닮아있다. 동시에 무대 위를 실시간으로 비추는 라이브 카메라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소품, 그리고 무대 바깥의 공간을 프레임 안에 포착한다. 라이브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이 무대 전체를 바라보는 동시에, 미디어를 거쳐 재가공된 타인의 고통을 이중으로 관찰하게 만드는 시각적 격차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관찰 요소들 사이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연출이 비극을 조명하는 방식이다. 전 회차 제공되는 음성 해설과 문자 통역, 배우들의 신체 음성은 단순한 접근성 제공을 넘어 무대 위의 상황을 가장 객관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전하기 위한 장치다. 제주도의 푸른 밤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등장할 때 느껴지는 생경함은 참사의 현장 위에 들어선 휴양지라는 현대 제주의 아이러니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감정을 고조시키는 신파적 음악이나 과장된 연기를 배제하고, 사건의 개요와 유해 발굴 과정의 기록을 무덤덤하게 나열하는 방식은 관객이 비극을 일회성 슬픔으로 소비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와 같은 무대 장치와 연출의 절제는 결국 '땅 아래 묻힌 유해를 인양하고 기록하는 일'이라는 깊은 주제의식으로 귀결된다. 70여년 전 제주의 땅 밑에 매장된 수백 구의 유해를 찾아내는 과정은 단순히 과거의 억울함을 달래는 원혼 진혼곡에 그치지 않는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추적하며 사료를 수집하는 이 냉정한 작업은, 지금도 수몰되거나 잊혀가는 국가 폭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동시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과 기억을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석적인 질문을 던진다.
<섬 이야기>는 관객에게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 위에 놓인 자전거의 움직임, 사라져가는 제주어의 음성, 라이브 카메라의 프레임이라는 사실적 기호들을 통해 역사를 관찰하게 만든다. 감정의 과잉이 걷힌 자리에는 묻혀 있던 유해를 밝혀내는 차가운 사유와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정직한 시선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