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세 愛情萬歲, 애정을 찾을 수 없는 도시에서 외치는 소리
1994년에 개봉한,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는 당대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적막하고 길게 그려낸 영화이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2026년, 한국에서 개봉하였다. 1994년이라면 이제 먼 과거가 되었고, 도시의 풍경은 많이 변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긴 시간 울음을 쏟아낼 때, 영화는 현재에도 유효한, 어떠한 공명을 일으킨다. 그것은 고독, 외로움, 소외와 같은 단어들로 말할 수 있는, 그러나 그 단어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다. 이 글에서는 수십 년 전의 영화와 우리가 공명하는 무언가에 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1.
아파트의 빈집 열쇠를 훔쳐서 들어간 한 남자, 샤오강이다. 샤오강은 그곳에서 살려는 게 아니다. 죽으려고 한다. 한참 망설이다 손목을 그은 채 피를 뚝뚝 흘리던 그가 인기척에 일어난다. 한 여자와 남자가 다른 방에서 격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나온 그는 이 현장을 확인한 후, 다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화장실에서 손목을 치료하고 있는 샤오강. 그는 일을 마친 후, 다시 조심스럽게 빈집으로 수박 한 통을 사서 들어온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수박과 키스를 시도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목을 베었던 칼로 수박에 눈을 파본다. 그러나 당연히 수박은 사람이 될 수 없다.
한편, 이 집에 왔던 여자 역시 주인은 아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메이린이라는 여자다. 온종일 빈집에서 사람을 기다린다. 그저 잠깐 있다 떠나갈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친절했다가, 모두를 떠나보내고 다시 빈집을 나선다. 지금 샤오강이 머무는 빈집도 매매로 내놓은 집이다. 메이린과 섹스했던 남자인 아룽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생기고 번지르르하지만, 노점에서 불법으로 옷을 파는 상인이다. 사장이라고, 수입한다고 자랑하지만, 그도 딱히 머물 곳이 없는 처지기에 아룽 역시 그 아파트로 몰래 들어간다. 아룽이 샤워하고 나오는데 무슨 소리가 나고 아룽은 급하게 몸은 숨긴다. 그는 샤오강을 발견한다. 서로는 뻔뻔하게 여기 어떻게 왔느냐고 하지만, 메이린이 오는 소리에 둘 다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간다. 로비 화장실에서 외출준비를 하는 두 사람, 통성명을 한다. 함께 납골당에 다녀오기도 하고 아룽의 노점에 샤오강이 오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빈집’이라는 공간에서 얽힌다. 하지만 관계를 맺진 못한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향해서 하는 말, 움직임, 심지어 서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섹스까지도 혼자만의 일방적인 움직임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상대가 자기에게 엄청난 의미와 사랑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화하거나 섹스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외로우므로 붙어 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상대일 필요는 없다. 상대는 대체되어도 상관없다. 그저 눈앞에 누구더라도, 이 외로움을 채울 수 있다면 상관없는 것이다. 외로움이란 갈증이 심할수록 더욱 그러해진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행동하는 그들의 움직임과 말은 필연적으로 상대에게 향하지 않고, 그저 혼자만의 갈증을 채우기 급급한 일방적인 무언가가 될 수밖에 없다.
연출에서도 이런 점을 찾을 수 있다. 가령 아룽과 메이린이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절대 대화를 번갈아서 보여주지 않는다. 메이린의 말만, 아룽의 말만 보여준다. 상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알 수 없게끔. 그렇게 되면서 통화는 그저 혼자만 듣고 멈춰버린 일방적인 말이 된다. 섹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섹스 장면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영화는 두 사람을 함께 비추지 않는다. 그저 행위를 하는 사람만을 홀로 보여줄 뿐이다. 모든 것은 일방적인, 상대에게 닿지 않는 ‘혼자만의 것’이다.
이는 영화 속에서 펼쳐진 상황과도 비슷해 보인다. 샤오강과 아룽은 집이 없으니 일단 빈집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당장 머물 곳이 없기에 집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어떤 집이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절대 집주인이 되지 못하기에 누군가 들어오면 긴장하고 숨어야 하며, 들키기 전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 그저 자기 위해서 급급하게 찾은 공간이며 집과 합의된 관계가 아니라, 혼자서 잠깐 머물렀다가 떠나는 일방적이고 일시적인 거주다.
이는 그들이 도시에서 생존하는 방식과도 닮아있다. 도시는 그들을 채워주거나 받아주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 안에서 내내 긴장한 상태로 있어야 하며 편히 잠을 이룰 수 없다. 인물과 도시와의 관계성을 말하기 위해서 영화는 인물들에 관해서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개인에 관한 정보와 서사를 많이 제공할수록 이 이야기는 개인(인물)의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물들에게 ‘도시에 사는’이라는 기표만을 남겨놓는 것처럼 보인다.
2.
메이린은 집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빈 아파트에서 고객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객은 오지 않는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메이린.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약을 먹고 잠을 청해보지만, 어쩐지 쉽게 잠들 수 없다. 메이린이 떠난 빈집에서 샤오강은 자기의 다른 짐에서 검은 원피스를 꺼낸다. 원피스를 입은 채 ‘여성스럽게’ 걸어보고 앉아보기도 한다.
이후 영화는 세 사람을 한 공간에 불러 모은다. 잠들기 힘들었던 메이린은 아룽을 찾는다. 집에 혼자 있던 샤오강은 아룽과 메이린이 섹스하던 침대에 누워있다. 그때 메이린과 아룽이 섹스를 하기 위해서 그 방으로 들어오고 샤오강은 침대 밑으로 숨는다. 두 사람이 위에서 격정적으로 관계를 맺는 소리가 들리고 샤오강은 침대 아래에서 자위한다. 곧 메이린이 떠나고 샤오강은 조심스럽게 나온다. 여전히 잠을 자는 아룽, 샤오강은 그런 아룽을 보더니 입을 맞춘다. 한편, 샤워를 마치고 집에서 나온 메이린은 공원을 산책한다. 아직 미완성인지, 아니면 철거 중인지 모를 황폐한 공원의 풍경 속에서 유유히 걷는 메이린. 그러다 벤치에 앉은 메이린은 소리를 내어 엉엉 울기 시작한다. 심지어 휴지를 꺼내어 눈물을 닦다가 다시 울어버린다. 그렇게 길게, 길게, 울어버린다.
영화에서 말하는 외로움과 소외는 유독 여성인 메이린과 동성애자인 샤오강에게 두드러진다. 이는 자연스레 그들의 정체성과 연관시킬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여자와 도시에 사는 동성애자의 소외를 목격하는 것이다.
메이린의 경우, 여성이자 부동산 중개업자이다. 이 두 가지의 기표는 겹치는 부분이 많다. 거주 공간이자, 안락함의 공간이 팔아야 하는 상품의 공간이자 일하는 공간이 된다. 이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며, 그들이 원하는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가려야 한다. 위장과 고립을 도구로 삼아 수행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메이린은 결말 부분에서 왜 울었을까. 메이린은 영화 내내 사람을 찾고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고객)은 대부분 잠시 왔다가 떠나거나, 서로의 이름조차 공유하지 않고 떠나간다. ‘아룽은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아룽과의 섹스도 행위 이상이 되지 못한 듯하다. 이 모든 것에 결핍되어 있는 것이 애정이다. 메이린의 일도, 아룽과의 섹스도, 모두 메이린이 자기여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 상대는 자기를 찾는 것이 아니다. 애정은 아름답고 두루뭉술한 말처럼 느껴지지만, 본질적으로 실존에 가까울지 모른다. 오로지 ‘나’이기 때문에 찾아주는 누군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내가 세상에 붙어 있을 만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메이린에게는 없다. 그러니 애정을 채울 수 없다. 메이린은 애정을 받을 수 없고 그렇기에 자기의 외로움을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걸 마주한 게 아닌가.
샤오강의 경우, 애정을 굉장히 갈구하지만 이를 말할 수 없다. 말하면 그대로 구별되어버리므로 이는 또 다른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말할 수 없기에 발생하는 외로움, 그러나 말해버리면 다른 외로움을 낳는 외로움. 영화는 말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소외가 있다는 걸 샤오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 이는 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속 장면 중, 회사에서 샤오강을 제외한 직원들이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샤오강을 끼지 못하고 구석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그가 동성애자로서 느끼는 소외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샤오강은 정말로 아룽을 좋아했을까. 샤오강은 아룽을 진짜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샤오강이 아룽을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속도가 빠르다는 걸 생각해 보자. 샤오강은 아룽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의 정이 들 만큼 시간이 오래 지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못하고 그저 소외된 채로 있었던 – 영화 초반부 아룽을 만나기 전까지 샤오강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 샤오강에게 아룽이란 어쩌면 애정을 나눌 가능성이 있는 남자다. 그러나 아룽은 알지 못하니 샤오강의 마음은 일방적인 움직임 그 자체이다. 샤오강이 소외를 채우고자 할 수 있는 건 잠든 아룽에게 입을 맞추고 도망가는 것뿐이다. 샤오강에게 애정이란 이런 식으로 결핍된다.
외로운 이들은 애정을 찾아 갈구하지만, 그 외로움이 애정을 찾을 수 없게 한다. 이 비극적 도시에서 외쳐보자. 마음속으로, 조용하게,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겠지만. 애정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