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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누구나 한 번쯤 외로웠으므로 [공연]

외로운 한 소년이 사랑을 배우고 성장하기까지 -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by 이하영 에디터
2026.08.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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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는 유난히 외로운 시기다. 세상은 전에 없이 넓어지는데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는 오히려 희미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부모와는 조금씩 멀어지며, 아직 스스로를 지탱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방 안에서 휴대폰과 컴퓨터를 붙들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세상과 내가 분리된 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사라진다면 누가 슬퍼할까’, ‘나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일까.’ 그 시절에는 이런 질문이 삶 전체를 뒤흔들 만큼 커다랗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에반 역시 그런 질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 에반의 불안과 외로움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특별히 불행한 한 소년만의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한 번쯤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에반이 겪는 외로움은 보편적이다. 관객들은 에반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 혹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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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을 알아차리기까지


 

에반에게는 고질적인 외로움이 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 하이디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늘 바쁘다. 물론 하이디는 에반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과 상대가 그 사랑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종종 그렇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언제나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자식은 자신이 필요로 했던 말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서로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정작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게 되기도 한다.


에반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와 애정.

 

에반은 원하던 온기와 애정을 예기치 않은 우연으로부터 얻게 된다. 에반이 치료의 일환으로 자신에게 쓴 편지가 우연히 동급생 코너의 손에 들어가고, 코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부모는 그 편지를 아들이 남긴 유서로 오해한다. 에반은 섣부른 판단으로 오해를 바로잡는 대신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요구하며, 쉽게 바로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거짓말은 역설적이게도 에반이 변화하는 계기가 된다. 코너의 부모는 에반을 가족처럼 대해주고, 짝사랑하던 조이와 가까워지며,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관계들이 그의 주변에 생겨난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에반은 마침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에반뿐만 아니라, 에반의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에반의 이야기를 통해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로 연결된다. 에반의 거짓말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이 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코너의 가족 또한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비록 거짓말에서 비롯됐을지라도 에반이 전하는 이야기의 힘은 진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에반은 코너와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눈 적이 없지만, 상상 속에서 두 사람의 우정을 만들어낸다. 에반의 상상 속에서 코너는 에반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에반이 만들어낸 코너는 어쩌면 에반 자신이 가장 간절히 필요로 했던 사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더 큰 오해와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에반은 자신이 얻었던 관심과 사랑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코너의 가족에게 진실을 고백한다. 그 순간 에반은 스스로 성장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게다가 어린 나이일수록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스스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면서 많은 것들을 점차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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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느끼는 이 슬픔이 아주 작은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에반과 코너는 서로를 잘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너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했듯, 에반도 스스로를 낭떠러지에 몰아세웠다. '누가 내 존재를 알아줄까.' 그들은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반복하고 있었다.


코너의 죽음은 에반에게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에반은 자신이 엉망이고, 잘못을 저질렀고,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발견한다. 특히 하이디와 에반이 대화를 나누면서 에반은 자신이 알아채지 못했던,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던 온기를 느끼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까.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즐거워야 하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서툰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때로는 말하지 않은 채 상대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운해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이러한 관계의 어려움에서 예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곁을 떠나지 않는 관계인지 모른다.


에반이 거짓말을 했고, 그 사실이 밝혀졌지만, 하이디는 에반에게 화를 내는 대신 '지금은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작은 일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한다. 에반은 코너의 가족이 주던 관심과, 조이와, 친구들을 잃었지만, 작품은 에반이 겪어야 하는 거짓말의 대가보다 그 이후를 보여준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삶은 계속되고, 관계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며, 사람은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춘기에는 눈앞에 밀려온 파도 하나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아직 시간이 가진 힘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실패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대개 지나고 난 뒤에야 배운다.


에반 다시 외로워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반은 다시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시, 또 다시.


<디어 에반 핸슨>은 인간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과는 다르다. 인간은 외롭고, 서로를 오해하며,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손을 내밀고, 누군가는 용서하며, 누군가는 다시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지금의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진 것처럼 혼자 바닥에 내던져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완전히 혼자인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 정도의 믿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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