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 남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상담가를 찾는다. 영화 〈백룸(Backrooms)〉(2026, 케인 파슨스)의 첫 장면이다. 안 팔리는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클락(추이텔 에지오프 분)은 가족 간의 관계도, 이 가구점의 경영도, 자기의 꿈도 실패한 사람이다. 그는 치료를 위해서 왔지만, 딱히 자기의 잘못을 모르겠고 치료의 의지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마주 앉아있는 메리는 어떨까. 메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재개발을 피해서 허름한 집에 숨어서 살았다. 불안정한 어머니, 허락되지 않은 바깥 공간, 갑자기 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점철된 어린 시절이었다. 그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메리를 얽매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 무한한 공간 그 자체인 ‘백룸’이 나타난다.


백룸을 처음 발견한 클락은 이 공간에 미친 듯이 파고든다. 한때 건축가가 되고 싶던 그답게 끊임없는 공간의 설계도를 그려간다. 이 행위와 백룸은 그에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그러다가 클락은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함께 들어갈 것을 요청하고 더욱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끝이 없는 공간에 미지의 존재가 등장한다. 심상치 않은 걸 느끼며 클락과 직원들은 도망치지만, 클락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하고 클락은 실종된다. 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메리는 어쩐지 자기의 잘못이 있는 것 같다. 메리는 클락의 가구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백룸을 발견한다.


백룸은 헤맬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무한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백룸은 영원히 미지의 상태로 남겨진다. 백룸에 혼자 떨어지게 된 클락과 메리 그리고 관객인 우리는 마치 쫓기는 사냥감처럼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통제권을 잃는다. 늘 수동적인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공간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클락을 포함한 관객은 계속해서 궁금하다. 관객인 우리는 클락과 메리를 따라서 그 공포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리고 백룸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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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룸 안에서 메리는 헤매다가 다행히 클락을 만나지만, 되려 클락에게 납치되고 만다. 어느 식탁에서 묶인 채 깨어난 메리는 클락과 대화를 시도한다. 클락의 주변에는 눈이 6개이거나 일그러진 얼굴의 존재들이 서 있다. 클락은 그들을 ‘정물화’라고 부른다. 클락은 정물화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공간이 기억하는 모습인 거예요.” 그렇다, 이 공간은 자기가 기억한 것을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온전하지 않다. 기억은 늘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정확히 기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기억은 늘 불완전하게 복원하는 과정이다. 기억해내는 공간인 백룸은 그 자체로 기억과 닮아있다. 클락은 그곳에서 다시 메리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메리는 상담가로서 처음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클락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자기는 사실 변하고 싶지 않다고. 백룸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있어도 된다고 말하는 곳이라고.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꼈다는 클락은 메리에게 이곳에 있어도 되냐는 협박과 같은 허락을 구한다.


클락과 메리는 내담자와 상담자로 만났지만, 두 사람 모두 기억에 묶여있다는 점에서 같다. 기억의 영향력은 늘 어마어마하다. 과거의 기억은 계속해서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기억을 바탕으로 무언가 하지 않고 때론 무언가를 하려 한다. 기억은 우리를 통제한다. 기억이 아프면 아플수록 기억의 힘은 더 강해지진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기억은 우리를 무력화하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메리의 경우, 한창 파티가 진행 중인데도 자기의 방 안으로 누군가를 들이지 않는다. 침입되었던 불안과 어머니의 불안정 때문일 테다. 클락의 경우, 이 공간에 머물기로 선택하면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힘에 굴복하듯이 말이다. 그들이 백룸을 헤매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메타포와 같다. 무한히 펼쳐진 공간, 그 안에서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알 수 없는 공간, 그곳에서 그들은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이때의 무력감은 기억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클락, 메리 그리고 우리와 닮아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 아득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기억의 힘에 굴복하는 걸까?


메리는 협박하는 클락을 향해 처음으로 소리친다. "난 당신을 구할 수 없어요." 공포에 질리고 질린 끝에, 본심을 토해낸 것이다. 공포는 우리를 숨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무력함을 고백하게 한다. 벼랑 끝에서야 살고 싶었다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메리는 누구를 구해낼 수 없을 만큼 자기도 상처 안에 있었다는 걸 화를 내며 고백한다. 공포에 질린 끝에서야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다 그곳에서 아주아주 큰 ‘해적 클락’이 나타난다. '해적 클락', 클락의 기억으로 구성된 그 존재는 클락을 죽이고 메리를 쫓아온다. 그렇게 영화의 후반부, 메리는 계속해서 도망친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보이지만, 도망치고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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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나도 몰랐던 나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기억이 덮쳐와 공포에 질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무서운 채로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진심을 껴안고 기억이 덮쳐서 우리를 먹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도망쳐야 한다. 기억이 뒤에서 소리를 내더라도, 발목을 붙잡으려고 쫓아오더라도 우리는 도망쳐야 한다. 이 영화가 후반부에 계속해서 도망치는 메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친 끝에, 아주 미세한 틈으로 메리는 백룸에서 벗어난다. 어떤 연구실에서 깨어나 백룸의 진실을 묻는 연구자의 앞에서 메리는 홀가분한 듯 웃어보인다. 남은 백룸에서는 메리의 기억이 정물화처럼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메리에게 어떤 해도 가할 수 없다. 메리는 백룸을 헤매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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