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2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사랑을 떨어트렸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꺼내기 전, 가장 간편한 도피처는 내가 이어갈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단어의 본래 뜻을 살펴보는 일이다.
나는 가로로 긴 동그라미 안에 사랑을 적고 아래로 스크롤한다. 사전도 사랑을 말하고, 블로그도 사랑을 이야기한다. 논문에서도, 동영상에서도, 누군가의 인터뷰와 음악 안에서도 사랑은 늘 말을 하고 있다.
사랑이 우리 머리 위를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그 애매한 것이 늘 너와 내 곁에 있다.
2026년 더하우스콘서트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은 첫 번째 무대 ‘Portrait’의 프로그램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어린 시절 어두웠던 정서에서 지금의 안정된 정서까지를 곡으로 연결해봤습니다. 솔로에서 3인의 트리오로, 다시 솔로, 4인의 콰르텟과 솔로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에서도 제 개인의 음악 여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러브송을 통해 결국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모든 영역의 사랑) 작은 신념도 담아보았습니다.
오후 8시
블로흐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바알 셈」 모음곡 중 〈니군〉 — 김재영(Violin), 임현진(Piano)

사랑으로 다다르는 길 초입에 내려앉는 건반의 타격과 그 짙음, 그에 상응하는 바이올린의 결이 무척 또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매몰찬 것은 아닌데, 말릴 수 없는 처연성이 현 위에 가득해서 곡이 흐를수록 당혹스러울 만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김재영과 임현진은 자신보다도 두 손 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오직 소리로.
라흐마니노프 — 비가풍 3중주 1번 사단조
— 김재영(Violin), 박유신(Cello), 임현진(Piano)
이날은 무대 오른편, 그러니까 첼리스트가 잘 보이는 자리에서 공연을 봤는데, 덕분에 첼로의 성마른 첫 움직임을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었다.
박유신 첼리스트가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듯한 담담한 표정으로 곡을 온몸에 그어 내기 시작하면, 하얀 조명 아래 그 눈빛과 첼로가 겹쳐지는 순간 청자는 곡에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마주한 연주는 예상 이상으로 마음 안에 박히는 조각들로 가득했다. 음악 안에서 심장이 이렇게까지 박동할 수 있을까.
그저 라일락 향취를 맡고자 했을 뿐인데, 투명한 디퓨저 하나가 그 삼각형 안으로 통째로 쏟아져 버린 것 같았다. 내가 아직 만날 수 없는, 어쩌면 끝내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농밀한 에너지가 그곳에 모여들었고, 그 바람 안에서 누구 하나 흥분한 기색 없이 시선을 내려놓고 있었다.
비탈리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샤콘느 사단조
— 김재영(Violin), 임현진(Piano)
피아노와 함께 걷다 마주친 바이올린 소리가 그야말로 ‘끼약’이었다. 끼약. ‘저 사랑 뭐지?’와 ‘저 사람 뭐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 소리였다.
블로흐와 라흐마니노프를 지나 비탈리의 샤콘느를 만나기까지 깊게 쌓여 온 감정선 덕분일까. 통제 선상 안에서 절제됨을 잃지 않고 뜨거움을 노래하는 광경을, 얼음처럼 그려내는 연주 탓일까. 한 손에서 펼쳐지는 세련된 두 선의 소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진동한 탓이겠지.
악보도 보지 않고, 눈을 꼭 감은 채 독백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잊힌 채 지나온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저마다의 서사가 현 위에 하나씩 놓이는데, 어떻게 저 현에서 시선을 뗄 수 있을까. 뜨거운 어깨를 달래주는 다정한 건반을 놓칠 수 있을까.
공연 전, 더하우스콘서트의 ‘소심음감’에서 김재영 바이올리니스트가 ‘관객이 어떤 것을 들어주면 좋을지’에 관한 질문에 이런 말을 했다.
“연주자의 에너지가 관객분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 말이 어떤 뜻인지, 그날의 연주를 통해 직접 건네받을 수 있어 기뻤다.
멘델스존 — 현악 사중주 제1번 내림마장조 Op.12
— 김재영, 임동민(Violin), 박하문(Viola), 박성현(Cello)

Adagio non troppo - Allegro non tardante
1악장은 비탈리의 열기가 한 겹 가라앉은 뒤에 찾아온, 더 넓고 더 어두운 공기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게 이든 콰르텟의 연주에서였고, 이번 무대가 두 번째였으니 그 자체로 의미가 깊었다. 음원을 듣는 것 말고, 공연을 통해 같은 곡을 다른 연주자 조합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굉장한 색다름이었다.
더군다나 이 곡의 1악장 도입부에는 연하늘색 온기가 은은히 번져 있었다. 방금 전 비탈리의 뜨거움이 잠시 저물어든 사이의 이야기라고 떠올려보면 어떨까.
무턱대고 황홀하다고 말하기에는 까만 고요함 쪽에 더 가까운 소리가 펼쳐졌다고 해야 할까. 쉽사리 표현하기 어려웠다. 내리꽂는 밀집감보다는 풍경이 되는 시간. 지금 앉은 자리에서 팔을 마구 내뻗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로움이 있다. 49:26 무렵 들려온 첼로의 선율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네 대의 현악기 모두 하나같이 영롱하다.
Canzonetta: Allegretto
그 영롱함이 공명하는 방울이 되고, 짧은 검은색 실크 리본이 되었으니. 남자 연주자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성마름과 각 맞춤 속에서도 소리는 제대로 광택을 내고 있다.
굉장히 풍부한데 안아주는 맛은 없고, 윤기가 나도록 반듯하게 닦아낸 표면 같은 매력이 있다. 약간 새 차를 뽑고 한껏 신이 난 멋진 사촌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Andante espressivo
이날 공연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악장이었는데, 그 시간을 선명하게 건네받을 수 있어 행복했다. 제1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정적이 얼마나 길고 또 깊을까, 그 생각만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멀어짐마저 아쉽지 않았다.
Molto allegro e vivace
힘! 강력함! 몰아침! 이 우선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 숨 정도는 내려놓고 깨끗하게 정면돌파하는 방향감이 분명해서 어디 가- 하고 붙잡기는커녕, 은은하게 드리워진 서정성에 마음 편히 공중의 음표를 탐미할 수 있었다.
1:01:30, 이를테면 이런 부분.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내딛어버리는지.
오늘의 멘델스존은 블랙 멘델스존이 분명하다. 까만 밤 안에서 이토록 울창해질 수 있다니! 제 갈 길을 이렇게 잘 맞춰 낼 수 있다니.
새카만 무지개와도 같은 것이 그늘진 공간의 어둠과, 휘영청한 달 주변의 빛 테두리가 되어 사방을 번쩍거린다. 1:05:25, 혼자 남았을 적에도, 그 공을 넘겨받았을 때에도 두꺼운 선은 이어진다. 얇아졌다 해도 그 든든함이 가득하니 박수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수크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사랑의 노래〉 Op.7, No.1 (arr. by J. Kocián) — 김재영(Violin), 임현진(Piano)
다정한데 온순하지 않고, 소리는 성격 있고 다채로운데 그 안은 부드럽다. 이 나긋한 개운함은 뭘까. 수분크림은 아닌데… 아, 워터 에센스려나. 은은한 향기가 가만히 코끝을 맴돈다.
앙코르
쇼팽 — 녹턴 제20번 올림다단조 — 김재영(Violin), 임현진(Piano)

클래식을 사랑하지만, 이상하게 앙코르 곡을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어디서 들어봤는데. 제목이…” 곡이 흐르는 동안 친구와 나는 소리 없는 퀴즈쇼를 나누고 있었다. 짙은 사랑의 결이 이어지는 그 와중에도.
김재영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잘 다루는 연주가임은 매우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그 사실이 유달리 도드라지는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숨죽이게 된다. 유려한 끝으로 이어지는 이 길목에서도.
누군가를 향해 곧장 달려가는 감정보다, 소리의 끝에 오래 남아 머물러주는 기척에 가까웠으니. 아참, 내가 말했던가?
그의 사랑이, 우리 머리 위를 동동- 떠다니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