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현대 사회는 유례없는 속도와 성장률로 기술적 진보를 이루고 있다. 근 미래 유망한 분야 중 하나로는 메타버스가 있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콘서트, 게임, 강의 등 이는 많은 분야로 진출하였으며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적인 상용화를 이루어냈다.

 

시공간 제약을 벗어나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자유로운 상호작용과 상호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비현실이 점점 구체성을 띌수록 현실의 전망은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인류 소멸을 향한 속도 또한 가파르다. 기후위기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지금, 비현실의 구현 기술은 인류의 유토피아를 향한 발걸음이 아닌 현실 도피의 수단에 더욱 가깝다. 그리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소멸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작성된 희곡,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코로나 펜데믹과 기후위기 그리고 가상현실 사이의 괴리를 통해 소멸로 나아가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202306290951450363_0.jpg

  

희곡은 2020년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코로나 펜데믹 혹은 그에 준한 재해가 다가옴으로 인해 대면보다는 비대면 소통이 익숙한 사회다. VR 가상현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이를 통해 가상의 여행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여행자 ‘그’와 그의 반려견 럭키, 기상청 직원인 ‘aa’와 ‘bb’가 있다. 온오프라인, 두 공간에서 시베리아 순례길을 떠나는 여행자 ‘그’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기상청 소속 연구원 aa와 bb는 위성을 통해 ‘그’의 행적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는 이야기다.

 

그들이 수집한 정보를 통해 ‘그’의 순례는 가상 여행 게임이라는 콘텐츠로 다시 재구성된다. 연극은 순례자 ‘그’의 독백, ‘그’를 지켜보는 aa와 bb의 대화 장면 두 파트를 번갈아 보여준다. 특히 aa와 bb의 대화가 주로 비춰지는데, 그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그’를 관찰하고, 그의 여행의 목적과 의미를 추측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희곡은 시공간의 전환이나 사건에 따라 장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화가 끝날 때마다 장면이 전환된다. 때문에 시공간은 더욱 모호해진다. 매 장면의 정서가 축적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보다는, 모든 장면은 개별적으로 기능하며 최초의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유지한다. 또한 aa와 bb는 직접 대면이 아닌, 가상현실과 위성을 통해 '그'의 순례를 간접적으로 지켜보는데, 때문에 그들이 추측한 그의 모습과 실제 ‘그’ 간의 정보의 오류와 딜레이가 발생한다. ‘그’가 데리고 다니는 현실의 반려동물이 온라인에서는 고양이 아바타로 보여졌기 때문에 고양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개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상청 직원들은 ‘그’를 지켜보기만 할 뿐 지켜주진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함과 동시에 기상 관측 대신 한낱 여행자의 순례를 기록하고 보고해야 하는 처지를 비관한다. 이렇듯 기후위기와 ‘그’의 순례 모두 개입할 수 없고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aa와 bb의 시선을 통해서 연극은 기후위기와 펜데믹을 거쳐가는 현대 사회 속 개인의 무력함, 실존적 가치에 집중하고 언택트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간 상호작용이 진정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131.jpg

공연소개 | 국립극단,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극이 진행되며 화면 너머로 직원들이 바라보는 순례자의 모습과 실제 순례자 사이의 괴리는 점차 드러난다. ‘그’가 왜 시베리아로 순례길을 떠나는지는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며, 온라인과 달리 현실에서는 구조 헬기나 지원 물자를 보내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희곡은 이러한 비현실에서의 상호작용은 결국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대면 관계와 달리 비대면 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은 불완전하며, 완전한 상호이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의사소통적 행위가 아닌 비대칭적 권력 관계에서의 전략적 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극 중 묘사되는 여행 시뮬레이션 게임은 순례자 ‘그’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다. ‘그’가 왜 순례를 떠나는지,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에 대한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게임의 진행과 완성도를 위해 ‘그’에 대한 알레고리는 온라인에서 새로 만들어진다. 순례자 주체가 아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철저히 자본주의에 복속된 방식으로 구성되며 이는 피상적으로 대상화된다. 게임 속 그의 캐릭터와 반려동물이 먹는 음식마저 기업의 협찬에 의한 것이다. 대중들은 실제의 ‘그’가 아닌 온라인 속 ‘그’의 행보에만 더욱 주목하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비현실은 개인의 의미와 맥락이 모두 자본에 묶여버려 대상화된 인물의 진실과는 무관한, 단지 공허함만을 지닌 공간인 것이다.

 

오늘날 사회는 더욱 불확실하고 불가지적인 특성을 띄고 있으며,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기후위기다. 허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자본적 가치로 구성되는 비현실을 확장하는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논리에 부합하는 듯하다. 모두가 소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현실 그리고 무한한 공허함을 끌어안은 채 팽창하는 비현실, 그 사이에서 흐릿해지는 개개인의 모습을 통해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