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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고대 비극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단순한 재현이나 전통 계승에 있지 않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는 동시에, 그 서사가 되풀이되는 현재를 마주한다. 테베·아르고스·코린토스 같은 가상의 폴리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 서사에 새겨진 폭력과 권력, 신화적 반복은 여전히 우리의 세계에서 재생산된다. 고전은 시간이 흘러도 닫히지 않는 질문을 품은 형태로 남아,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연극도 시대를 거치며 변화의 시도를 끊임없이 꾀했다. 고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유래된 연극은 최초의 배우인 테스피스의 등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그리스 희랍극,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연극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서사극과 부조리극을 넘어 현재에는 포스트드라마적 시도를 이어가며 연극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몇천 년 동안 불변하는 서사를 가지고 수많은 연극적 시도를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안트로폴리스는 왜 고대 비극을 현대로 가져왔으며, 왜 포스트드라마로 재해석했는가? 그 이유는 오늘까지 ‘테베’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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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로폴리스는 5부작으로 이루어진 연극이다.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썼으며, 2025년부터 국립극단에서 공연되고 있다. 2025년에는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라이오스를 공연하고 2026년에는 오이디푸스, 이오카스테, 안티고네를 순차적으로 올릴 예정이다. 시리즈 중 첫 극은 10월 1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시연되었고 두 번째 극은 11월 6일부터 11월 22일까지 시연되었다. 두 극 모두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했으며 연출은 윤한솔과 김수정이 각각 맡았다.

 

안트로폴리스의 첫 번째 극에서 1막은 프롤로그, 2막은 디오니소스에 대한 내용이며, 두 번째 극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에 관한 것이다. 이 중 디오니소스는 에우리피데스가 쓴 <바쿠스의 여신도들>을 각색한 극이다. 두 극 모두 고전의 현대화를 통해 그리스 비극의 구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하며, 인간 문명과 진보에 대한 본질적 비판을 제기한다.

 

 

 

고전의 현대화 – 비극의 순환과 반복


 

그리스 비극의 세계에서는 신과 인간의 부조리하고 비대칭적인 구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인간이 겪는 비극은 단순한 악행이나 비행이 아닌 하마르티아에서 기인된다. 이 비극은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언된 것이고 인간은 이를 부정한다. 그러나 비극은 곧 운명으로 닥치며 인간은 고통을 통한 깨달음을 얻는다.

 

안트로폴리스는 이 비극의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그리하여 고대의 비극이 현대에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조상과 자손으로 이어지는 죄의 대물림과 그 뿌리를 낱낱이 파헤치며 비극의 순환과 반복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대부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상’을 가진 인물이다. 안트로폴리스의 주인공은 어떠한가? 그들은 신을 믿기보단 이성과 과학이 주는 합리성을 선택한다. 신의 경고와 예언을 부정하며, 과거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더욱 근현대적인 맥락에서 저지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고대의 조상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안트로폴리스는 세계가 과연 옳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인지, 이러한 진보성이 과연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현재의 관객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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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로폴리스의 프롤로그는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시공간에서 출발한다. 분장을 받고 있는 배우들을 뒤로한 어떤 이는 돌, 하늘, 태양과 같은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자연물에 최초로 언어를 붙이기 시작한다. 다른 배우는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끌고 간 이야기, 용을 죽인 카드모스가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전사들과 함께 테베라는 도시를 세운 이야기를 차례대로 전개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인간의 언어는 돌, 하늘, 태양에서 고층 건물, 사이렌, 교통 체증이라는 하강과 붕괴의 언어로 변화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한 명의 배우는 그 언어들을 계속 읊조리며 울먹인다. 자연과 생명을 말하던 언어는 점차 인공물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정작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것은 후자일 것이다.

  

2막은 1막과는 사뭇 다르다. 2막 디오니소스는 고대, 중세, 현대의 시공간이 함께 혼재한다. 고대 그리스 연극처럼 코로스가 존재하여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장면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 그와 동시에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매스미디어나 cctv 구도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현대 배경의 묘사 또한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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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는 2막의 첫 장면에서 등장한다. 무대가 가려진 장막 앞에서 그는 자신의 태생과 목적을 관객에게 설파한다.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경박하고 어설프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섬뜩하다. 그가 신으로서 관장하기로 자처한 영역은 술과 광기, 섹스다. 극은 여성 배우의 입을 빌려 이것이 복종에 대한 남성적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꼬집는다. 어떻게 보면 그의 모습은 본능과 야만, 폭력의 화신에 더욱 가깝기도 하다.

 

극 중 고대와 현대의 공존을 가장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의상이다. 디오니소스와 바쿠스의 여신도들은 현대의 트레이닝 복처럼 생긴 붉은 옷을 입고 있으나 펜테우스와 테베의 사람들은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있다. 이는 과학혁명과 계몽사상이 막 태동했을 시기다. 그리고 현대의 옷을 입고 있던 아가우에는 비극을 재현하는 순간부터 고대 여성 의복으로 바꿔 입는다. 극은 이러한 장치해 고중세와 현대 간 혼재를 발생시키나 서로의 시대적 교차성은 부각하지 않는다. 이 극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한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것. 즉 모든 시간선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극은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이 나아가던 진보의 로드맵 자체를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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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라이오스는 사뭇 다르다. 라이오스의 서사는 현재까지 전승되지 못했기에 현대의 극작가가 대부분 창작해야만 했다. 이 극은 단 한 명의 여성 나레이터만이 등장해 배우 전혜진과 다른 인물을 오가며 이야기를 풍부하게 이끌어간다. 무대에는 거대한 계단식 구조물과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전사의 상징물, 그 외 기타 소품만이 있다. 나레이터는 아무것도 전승되지 않은 라이오스에 대해 여러 가지의 가정을 제시하며, 이전 극보다도 더욱 먼 발치에서 서사를 전개한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처럼 라이오스의 시간대도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한다. 예언의 신전은 로또 가게가 되었고, 황무지에서 시작된 테베는 어느덧 콘크리트 건물과 검은 철길로 이루어진 도시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테베는 현대 한국을 나타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테베의 시민들은 토속적인 탈을 쓴 채로 사투리와 억양을 사용한다. 또한 인물들은 한국의 최근 정치적 사건을 극 내 이야기와 적극적으로 연결하는데, 이 덕분에 관객들은 테베를 현재 세계와 맞물려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왜 안트로폴리스는 이러한 시도를 감행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김형기, 2011) 의사소통을 위한 매체로서의 연극은 지시적 기능과 수행적 기능을 동시에 가진다. 인물, 줄거리, 관계, 상황 등 묘사 내지 재현과 관련된 지시적 기능과 달리 수행적 기능은 사건의 실행과 그것의 직접적인 영향에 방향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수행적 예술은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현실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된다. 이는 관객이 단순한 방관자의 시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유를 극장 너머 현실까지 확장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안트로폴리스는 연극의 수행적 기능에 특히 집중하였고, 일부 장면에서는 포스트드라마적 기법 또한 시도하였다. 그렇기에 극은 오로지 중심인물의 서사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기존의 스토리텔링에 적극적인 이의를 제기하고 인물 간 구도를 전복시키며 관객들이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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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의 후반부 장면에서, 한 배우는 몇 분 동안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며 소통을 시도한다. 이는 극 내 벌어졌던 사건과 관계없는, 인간 문명의 발전사에 대한 연설이다. 이때 그는 역할이 아닌 몸 자체로서 무대 위에 존재한 채 수행적 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그 장면 동안 객석 조명은 서서히 켜지기 시작한다. 무대에서 대기실로 통하는 통로도 환히 개방된다. 배우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퇴장하여 관객을 자연스레 현실로 이동시키고 막을 내린다.

 

이후 디오니소스에서는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의 몰입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펜테우스가 중요한 대사를 하는 도중마다 그의 어머니인 아가우에가 등장하여 흐름을 끊기게 한다. 또한 스크린에 풍자적인 영상을 송출하여 웃음을 유발하고, 펜테우스와 디오니소스의 대화를 빨리 감기처럼 진행하여 관객들이 무대 위의 인물에게 이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라이오스에서 이러한 수행적 연출과 포스트드라마적 기법은 더욱 두드러진다. 라이오스에서는 사이를 의도적으로 많이 넣어둬서 장면 간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또한 나레이터가 말하는 사건들도 비순차적으로 배치되어있어 관객들이 이야기의 공백을 주체적으로 메우도록 했다. 이 극의 나레이터도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배우 전혜진으로서 존재한다. 그는 객석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중간 중간 관객과 대화를 하고 스트레칭을 시키는 등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한다. 또한 배우는 라이오스의 서사에 대해 말하다가도 신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빼먹지 않는다.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 대해, 전승하는 주체와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존재들에 대해 말하면서 신화적 서사의 불균형적 구도를 자각시킨다.

 

안트로폴리스는 이미 모두가 결말까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관객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기존의 텍스트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공간에서 관객과의 직접적 소통을 하며 극 바깥에 더욱 초점을 두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극에서 다루는 서사는 결코 극적 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 인간사의 모든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연극은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테베는 어디에 있는가?


 

테베의 시초는 살육에 있다. 카드모스가 죽인 용의 이빨에서 자라난 전사들의 피가 흩뿌려진 땅이다. 그런데 이것이 산업혁명과 신자유주의가 이륙해낸 오늘날의 도시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 땅을 일구어낸 동력이자 원죄는 본질적으로 같다.

 

인간의 문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오늘날의 문명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과거의 폭력과 부조리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극은 말한다. 여기서 촉발되는 비극은 펜테우스처럼, 혹은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것처럼 늘 예언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부정하는 것뿐이다. 안트로폴리스의 징벌은 이성, 합리성과 대립되는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영역에서 발생된다. 이는 바쿠스의 여신도와 아가우에 그리고 스핑크스의 울음처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광기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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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 모든 이야기는 비극의 전승으로 시작해 비극의 전승으로 끝난다. 만일 세멜레가 죽지 않았다면, 라이오스가 아버지에게 버려지지 않았다면, 이오카스테를 향한 사회적 여성 수행의 강요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비극이 계속 이어졌을까? 라이오스가 왕좌에 올라가는 길에 밟는 레드카펫은 전쟁에서 귀환한 아가멤논이 밟은 카펫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안트로폴리스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비극은 폭력의 순환이자 다음 세대의 대물림인 것이다.

 

이런 비극의 계보는 결국 추상적 구조에 머물지 않고, 한 인물의 육체를 통해 다시 현실로 강림한다. 극은 이 숙명적 굴레를 비극을 마주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피가 든 양동이가 무대 천장에서 아주 느리게 내려온다. 인물은 곧 닥칠 순간을 기다리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그는 피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한다. 저항으로 이어지지 못한 절망과 비탄은 신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태어나기 전부터 주어진 비극의 굴레를 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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