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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귀멸의 칼날’은 왜 이렇게 회상을 많이 보여줄까 [만화]

인물의 서사를 가장 ‘완벽하게’ 완성하는 법

by 정진영 에디터
2026.08.03 13:00

소년 탄지로가 집에 돌아온 어느 날, 가족이 전부 죽어 있었다. 사람을 먹는 괴물인 ‘오니’가 끔찍하게 가족 모두를 죽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여동생은 오니가 되었다. 탄지로는 소중한 가족을 잃은 복수를 위해서, 여동생을 다시 사람으로 돌리기 위해서 오니와 싸우기로 한다. 오니와 싸우는 부대 ‘귀살대’에 들어간 탄지로는 점점 더 강해지고 동시에 더 강한 오니와 싸워 나간다. 그렇게 싸워 온 끝에 탄지로는 드디어 무잔을 마주한다. 최초의 오니이자 오니를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적인 그를 말이다. 귀살대 모두가 달려들지만, 무잔의 계획에 따라 그들은 ‘무한성’에 빠진다. 오니와 귀살대가 모두 한 공간에 모인다. 이제 그들은 해가 뜰 때까지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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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충주 코쵸우 시노부(이하 시노부)는 무한성에서 가장 복수하고 싶은 오니를 만난다. 시노부는 가장 사랑하는 언니를 오니에 잃었다. 언니는 강한 귀살대원이었음에도 사람을 지키다 죽었다. 오니의 이름은 도우마. 도우마는 언니를 먹으려다가 해가 뜨자 도망간다. 그렇게 죽어가는 언니를 시노부가 발견한다. 언니는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시노부, 귀살대를 그만둬라.

넌 열심히 하고 있지만, 넌 아마도…


언니의 유언은 시노부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노부는 언니에게 증명하고 싶다. 내가 열심히 해서 언니의 복수를 할 수 있다고. 내가 언니처럼 강한 귀살대원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시노부는 언니처럼 살아간다. 감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억누르고 차분하고 상냥하던 언니처럼. 그러다 무한성에 떨어진 시노부는 기묘한 행색의 오니와 마주친다. 피를 뒤집어쓴 것 같은 모자, 무기는 날카로운 한 쌍의 부채… 모두 언니의 유언과 일치한다. 시노부는 무한성에서 언니를 죽인 바로 ‘도우마’를 만나게 된다. 시노부는 언니의 복수를 위해서 이제 목숨을 걸고 도우마와 싸운다.


그러나 도우마는 너무나 강하다. 전투는 일방적으로 보일 정도다.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쓰러진 시노부. 그때 시노부는 자기의 언니를 떠올린다. 언니가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 오니에 질 것이니 그만두라고 한 것이겠지. 시노부는 사실은 자기가 언니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런 시노부의 앞에 갑자기 언니의 형상이 나타난다. 죽어가는 시노부 앞에 나타난 이미 죽은 언니는 생전에 하지 않았던 말을,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언니의 형상은 시노부를 안아준다. 그러면서 시노부가 가지고 있던 질문에 답해준다. 시노부라면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그 말은 시노부의 각성을 이끈다. 시노부는 이미 죽었어야 마땅할 만큼 피를 흘렸지만 두 발로 서서 다시 혼신의 일격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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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시노부를 비롯한 귀살대원들의 회상에 긴 시간을 쏟는다. 그곳에서 대원들은 오니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회상은 각성의 순간을 제공하지만, 한 번의 각성만으로는 오니를 이기기는 부족하다. 그 순간, 애니메이션은 대원들의 앞에 그들이 가장 보고 싶었을 사람을 되살린다. 그리고 평생 듣고 싶었을 어떤 말, 아니 어쩌면 들을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한 말을 들려준다. 시노부뿐 아니다. 죽어버린 스승에게서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은 젠이츠도, 한참 전에 죽은 아버지에게서 인정받은 탄지로도, 한참 전에 죽은 아내의 부탁을 들은 아카자(하쿠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그들의 서사는 완벽히 완결된다. 그들이 평생을 거쳐서, 목숨을 바쳐서 싸워왔던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죽은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지, 지금의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할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우리의 생이 끝나기 전까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일정 부분 미결이다. 답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진 문제를 받은 우리는 그저 문제를 풀기만 한다. 해결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답을 듣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서사는 완벽해질 수 없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인물들이 죽더라도 그들의 서사가 완벽하다고 느끼는 이 만족감이란 바로 우리 현실에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이 부분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귀멸의 칼날〉은 한 인물의 서사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의 사명과 죽음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죽은 이들의 방법까지 동원한다. 회상이 길어지는 이유 역시, 서사 속에서 누군가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고 그가 등장했을 때 던질 말에 관한 맥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인물의 회상과 서사를 길고 길게 만들어서 쌓아올린, 이러한 완벽함은 만족감과 동시에 반칙이라는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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