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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AI의 자율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구글 기반 AI인 제미나이가 안드로이드 유저의 의사와 상관없는 행동을 했다는 사례가 여럿 발생했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에는 AI라는, 인류 외 또 다른 지성체가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쏟아지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간과 AI라는, 두 지성체 간 공존은 과연 가능하게 될까?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은 두 지성체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고,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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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우주에는 이얌이라는 행성이 존재하고, 그 위에는 트라그라는 지성체들이 살아간다. 이얌의 주위를 공전하는 두 개의 위성 중 하나는 트라그의 번식이 이루어지는 달이며, 다른 하나는 트라그와는 다른 지성체인 옴이 거주하는 인공위성이다. 지성체의 인식 범위 안에서 우주는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 항성이 제공하는 빛과 온기,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생태계 역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트라그의 평온한 일상은 옴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균열을 맞는다. 옴은 트라그에게 지식을 전수받기 이전부터 이미 트라그와 유사한 수준의 지능과 본능을 지닌 존재였다. 다만 트라그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지배 구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며, ‘지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분명하다. 지성체는 과연 어디까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인간을 포함한 지성체는 신체적 조건만 놓고 보면 생태계에서 압도적인 존재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능과 기술을 활용해 더 강한 생명체를 제압해왔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일까, 아니면 자연이 허용한 또 하나의 방식일까. 아무런 위협 없이 유지되던 트라그의 세계에서 옴의 등장은 명백한 교란처럼 보인다. 트라그와 옴 사이의 오래된 관계는 학살과 애완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옴은 어떻게 트라그가 규정한 자연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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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그와 옴의 지능 차이는 결정적이지 않다. 트라그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지식과 기술, 그리고 몇 가지 유리한 조건 덕분이다. 테어는 트라그에게서 얻은 지식을 빠르게 기술로 전환하고, 이를 옴 사회에 적용한다. 영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 종족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설정을 제시하지만, 결국 핵심은 지식이 어떻게 전달되고 활용되었는가에 있다. 옴 사회가 짧은 시간 안에 급격히 변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지성체의 발전을 환경이나 혈통보다는 지식의 전승이라는 요소에 집중해 보여준다.

 

지식은 이 영화에서 지성체 간의 위계를 만들어내는 절대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이미 형성된 불균형을 가속하고 증폭시키는 매개에 가깝다. 트라그와 옴의 관계는 지식이 전승되기 이전부터 분명한 상하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지식은 그 구조를 정당화하거나 전복하는 방향으로 작동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조건에서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는가에 있다. 트라그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지식의 습득에 있어 평등한 구조를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옴은 애초에 배움의 주체가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옴이 지식을 받아들이고 기술로 전환하는 속도가 급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지적 역량보다는 생존을 둘러싼 조건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옴의 진보는 지식의 힘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기보다는, 불균형한 환경 속에서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결과이며, 동시에 지식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트라그의 오만이 낳은 균열이기도 하다.

 

옴은 결국 트라그의 번식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이를 위협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쥔다. 트라그는 위기를 느끼고 옴과 평화 협정을 맺는다. 달은 다시 트라그의 영역이 되고, 옴은 테어의 이름을 딴 인공위성으로 이주한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결말이지만, 이 협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트라그에게 번식 체계의 노출은 단순한 약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종족의 미래와 질서가 위협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반면 옴에게 번식은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된 문제다. 열악한 환경, 짧은 수명, 수많은 천적 속에서 옴에게 번식은 트라그보다도 더 절실한 과제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할 때, 이 평화 협정은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라기보다는 양측 모두에게 불안한 타협에 가깝다. 옴이 이얌을 떠나 인공위성으로 향한 이유 역시, 그들이 아직 결정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두 종족에게 있어 완전한 공존은 정말 불가능한 미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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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플래닛〉의 열린 결말은 지성체 간의 공존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단순한 도덕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평화 협정은 이해와 화해의 결과라기보다는, 서로의 취약함을 인식한 끝에 도달한 임시적인 균형에 가깝다. 이는 지식이 갈등을 해결하는 만능의 해답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관계 속에서 선택과 책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임을 시사한다. 트라그는 지식을 통해 지배를 유지해왔고, 옴은 같은 지식을 통해 생존의 가능성을 확보했지만, 그 어느 쪽도 그 결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화가 겨냥하는 대상은 단지 트라그와 옴이라는 두 지성체의 대립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타자를 이해의 범위 밖으로 밀어내는 태도 그 자체에 있다. 트라그가 행성 위의 유일한 지성체라고 믿는 폐쇄적 세계관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방식과 그리 멀지 않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특정 존재에게만 책임과 윤리를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대상은 관리하거나 소비의 영역으로 밀어낸다.

 

그렇기에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떤 관계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가에 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옴의 시선을 통해 폭력과 진보의 위험성을 드러내지만,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남기는 질문은 우리 자신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기후 위기와 생태계 붕괴가 가속화되는 지금, 이 질문은 낡은 담론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현실의 문제다. 공존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 이후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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