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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리가 집을 떠올릴 때 어쩌면 두 곳 이상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현재의 거처와 어린 시절 나고 자란 곳. 자신이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든, 자신의 고향은 어디였는지만은 변함없이 분명하다.

 

나는 타지의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살던 동네에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스무 살에는 집 바로 뒤에 있는 대학을 다녔는데, 성인이 되어도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환경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퇴근길을 제외하면 거리는 항상 조용했고 아이들의 목소리는 해가 갈수록 사라졌으며, 대학가였음에도 청년들을 보기 어려웠던 곳이 고향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십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상상은 들지 않았고 그렇기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고향을 떠난 이후에서야 의심이 들었다. 사실 떠나지 않았더라도 현재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 생각은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 시기에 접한 것이 바로 나이트 인 더 우즈 Night in the woods다. 게임은 갑작스럽게 대학을 자퇴한 고양이가 쇠락한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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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란 무언가를 두고 떠나는 장소와 동시에 무언가를 잃은 사람이 돌아오기도 하는 장소다. Infinite Fall에서 제작한 인디 게임 나이트 인 더 우즈는 그 교차점에 선 청년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게임 속 세상은 개성적인 비주얼과 서정적인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레이어는 대학 자퇴생 메이 보로우스키를 통해 그가 귀향한 고향 포섬 스프링스를 둘러본다. 때로는 전신주 위를 걷고, 자동차를 밟으며 지붕으로 올라가는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게임은 어렵지 않다. 주인공 메이를 조작하며 마을을 탐방하고 주민과 자유롭게 교류하는 것뿐이다. 거리를 걸을 때 마주치는 인물들은 모두 개별적인 스크립트가 존재하는데, 그들과 나누는 자잘한 대화에서 우리는 포섬 스프링스가 어떤 마을인지 서서히 감각하게 된다.

 

 

 

몰락한 신화와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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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섬 스프링스에 들어서자마자 휘날리는 낙엽은 한 해의 종착지인 겨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포섬 스프링스는 한때 부흥했으나 광산의 폐쇄와 함께 몰락한 곳이다. 통신도 어려운 마을에서 낡은 건물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사라진다. 자본주의는 폐광촌에 불과한 곳을 조명하지 않는다. 마을의 일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거주민은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 붕괴는 결코 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평화 속에서 느릿하게 진행된다.

 

메이와 친구들은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으나 현실에 부딪혀 한 차례 좌절한 청년들이다. 메이는 부모의 무리한 투자에 힘입어 대학으로 갔으나 곧 자퇴를 하게 되었고, 그의 친구들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이유로 인해 자신의 꿈을 시도해보려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 중 누군가는 기성세대의 무력감을 그대로 답습하며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려고 시도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거부하고 낯선 곳으로 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포섬 스프링스의 청년들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길 원한다.


그렇다고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받아들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유령’이 되어 다른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마을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포섬 스프링스를 지탱하던 산업의 몰락, 마을에서 미래를 꿈꿀 수 없어 떠나가는 청년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의 동력을 끝내 상실해버린 인물이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위안


 

게임은 노동계급의 고뇌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삶 자체를 결코 염세적이나 비관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유령 사건 전후, 메이는 그동안 감췄던 자신의 어려움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메이 또한 친구들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결국 살아가는 존재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증오하던 메이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받아들인다. 그는 “살아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꺼이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비록 앞으로도 감당해야 할 힘겨운 문제들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삶을 아파한다는 것은 곧 그 삶에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어도 괜찮다. 그리고 그런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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