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전시회를 본 뒤, 근처 카페에서 케이크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 같이 놀아서 너무 재미있었어. 집 조심히 들어가! 다음에 또 놀자.'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보낸 뒤,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맑고 초록빛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즐거워 보였다. 그때, 주황빛 택시등을 쓴 차가 내 옆을 지나갔다. 심장이 쿵 가라앉았다. 그 택시의 운전석에 아빠가 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건 택시의 차종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어디쯤 달리고 있을지, 어떤 손님을 태우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늘은 별일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존재
아빠가 택시기사가 되기 전까지 거리의 택시를 눈여겨본 적이 거의 없었다. 수없이 내 곁을 지나갔을 텐데도 그저 풍경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런데 아빠가 택시 운전을 시작한 뒤부터 길 위의 택시 한 대 한 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항상 내 곁에 존재해왔지만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마치 거리의 택시처럼.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날이면 아빠가 준 용돈을 지갑에 챙겼고, 내 얼굴에는 아빠와 닮은 눈과 코가 있었다. 화가 나면 욱하는 성격, 생선을 싫어하는 입맛도 아빠로부터 온 나의 일부였다.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곳곳에 아빠가 있었다.
택시기사라는 사람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님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지, 나는 오늘 몇 번째 손님인지, 식사는 하셨는지 묻고 싶어졌다. 그동안 나는 목적지를 말한 뒤 기사님의 뒷모습만 무심히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는 기사님의 알 수 없는 표정이 백미러로 보였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어엿한 중년 남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청년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체구가 컸을 그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미터기에서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그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었다.
아빠라는 사람
내가 아빠의 차에 탈 때는 미터기가 켜지지 않는다. 마치 그 안에서만큼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늘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고, 나의 하루에 있었던 일을 열심히 들어주곤 했다.
물론 시간은 흘렀다. 조금씩 늘어가는 흰머리와 작아진 체구가 그걸 말해준다. 하지만 아빠와 나 사이에 있는 미터기 화면의 요금은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이제 그만 내리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아빠는 그저 묵묵히 운전하며 내 곁을 지켜주었을 뿐이다.
요즘은 아빠와도 맛있는 것을 더 자주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오래 나누려고 한다. 먼저 안부를 묻고, 함께 있지 않을 때면 짧은 메시지라도 남긴다. 늦은 밤까지 운전하는 날에는 꼭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조심히 들어오세요. 이따 집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