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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람은 누군가를 떠올릴 때, 자신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A라는 사람이 가족인지 친구인지 직장동료인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아빠’로서 한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완전한 타인으로서 그를 받아들이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다.

 

최근 아빠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그냥 아빠 자신일 뿐인데’.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모르고 있었다.

 

 

 

아빠도 30년째 회사가기 싫어


 

할머니댁을 갔다 집에 가는 길 차에서 아빠가 말했다. “내일 비가 왕창 왔으면 좋겠다. 골프 약속 취소 되게..”

 

빨리 내일 강수량과 강수 확률을 찾아봐달라는 아빠의 말에 조수석에서 열심히 뉴스를 읽었다. 강수확률은 90%지만 강수량이 10mm 정도라는 나의 말에 아빠가 망연자실했다.

 

“제발 새벽 5시부터 비가 왕창 내렸으면 좋겠다.”

“아빠는 아직도 골프가기가 그렇게 싫어?”

“응. 근데 또 내일 안 해도 그 다음 약속이 잡히니까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우선 내일 회의준비할 것도 많은데.. 이번분기 성적이 안 좋아서 아빠 또 월요일 회의에는 무서운 분위기도 뿜어내야 해.”

 

으르릉 무서운 척을 하며 이야기하는 아빠 옆에서 깔깔 웃었지만 아빠의 말 속에 약간의 착잡함을 느꼈다. 다같이 카페에서 차 마시는 문화로 다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아빠가 코웃음을 치면서도 내심 정말 그러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렇게 힘든 걸 30년동안 해온 아빠가 대단했고, 한편으론 내가 취업을 해서 저렇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민이도 곧 취업하면..”

“아악! 나한테 취업 이야기는 그냥 꺼내지마 !”

 

아빠는 전혀 부담주려는 의도 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간 것 뿐인데 나는 제 발에 저려 소리질렀다. 집에선 딸들의 히스테리를 받아주는 착한 아빠였다.

 

 

 

아빠가 엉엉엉



자취방에서 본가로 온 저녁 10시, 아빠가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빠 안 왔어?”

 

두리번대는 내게 엄마는 거래처와 술자리로 늦는다고 알려주었다.

 

엄마와 식탁에서 도란도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취한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비틀대면서도 이번 주 <폭싹 속았수다>를 못 봤다며 옷을 갈아입고 거실 티비를 틀었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빠가 다급하게 부엌에 있는 우리를 불렀다. 격한 감정의 목소리였다. “봤어? 봤냐고.. 아빠가 금명이를 기다리다가…”

 

아빠가 엉엉 울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드라마 장면 중 핸드폰이 없던 시절, 딸을 가진 아빠가 밤이 되도록 딸만을 기다린 모습을 보며 아빠가 펑펑 울고 있었다.

 

5살의 아이가 된 듯 꺼이꺼이 눈물을 닦으며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엄마와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웃는 우리에게 아빠는 훌쩍이며 이야기했다. “아니.. 하루종일 기다린거라니까? 너무 슬프..흐흑..”

 

극단의 F인 우리 아빠지만 엉엉 우는 모습은 나도 처음이였다. 아빠가 나이가 들며 더 감수성이 풍부해졌다고 엄마와 이야기했다. 아빠도 저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항상 강했고 때론 무섭기도 했던 아빠가 나보다 약해진 존재로 보였다.

 

 

 

아빠의 꿈


 

“아빠는 은퇴하면 바로 유럽갈거야. 너희 엄마는 여행 안 좋아하니까 나 혼자 여행가서 맘껏 누리고 와야지.”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가서 유유자적 쉬고 올 거라는 아빠의 힘찬 포부였다.

 

“은퇴만 하면!” 이라며 하고 싶은 일을 줄줄 읊는 아빠의 모습에서 “종강만 하면..!”라며 놀러갈 계획을 읊는 내가 보였다.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학기는 고작 4개월이고 아빠는 30년이 넘었다.

 

언젠가, 아빠가 친구들과 약속하고 돈까지 모아놨던 유럽 배낭여행이 건축사 시험과 겹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덕에 잘 취직할 수 있었기에 자신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포기했던 배낭여행이 여전히 아빠 안에 가득했다.

   

한참 내가 사춘기일 시절, 아빠가 너무 미울 때가 있었다. 아빠는 사랑 표현도 가득하고 가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장이었지만, 내 눈에는 효자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으로만 보였다. 아빠도 완벽할 수는 없는 꿈도 있고 지칠 때도 많은 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엄마의 모습만 보니 비교적 아빠의 고충은 알아주지 못했다는 걸 커가면서 그 사랑의 크기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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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을 정말 사랑하고 이성을 가진 학씨 아저씨랄까.

늙어갈수록 유해지는 아빠의 모습 속에 감추어있던

양관식이 생기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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