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작화와 화려한 연출,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원작. 카카오페이지의 로판 웹툰들 중 상당수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웹툰이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쏟아지는 신작 웹툰들로 나의 지갑은 얇아지지만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다. 새롭고 재밌는 로판 웹툰은 로판 덕후인 나에게 늘 즐거움을 가져오니까!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나 애정하는 작품들도 있다. 그리고 오늘은 최근 웹툰 외전까지 완결난, 소설과 웹툰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작품, 『망나니의 누님이시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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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전개인데?
내가 이 작품을 애정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도 역시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초반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가장 큰 요소는 역시 '잘 만들어진 아는 맛'이다.
약혼자에게 배신당한 후 회귀한 주인공이자 제국의 황녀 '레지나'는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도입부의 전개는 어디서 많이 본, 일명 '아는 맛'이다. 로판을 조금이라도 많이 읽은 독자라면 바로 그 이후의 전개가 예상 갈만큼 클리셰 중에서도 클리셰를 차용한 형식이다.
약혼자 '헤르만'은 실은 외도하던 영애가 있었고, 동생 '테오르'는 전형적인 망나니였다. 약혼자에게 복수를 하고 동생을 성공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레지나는 망나니, 정확히는 '사랑에 미친 망나니'가 되리라고 결심한다. 이후 외도에는 외도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제국에서 제일 가는 미남, '아론'과 계약 연애를 시작한 레지나는 이어서 동생을 제대로 훈육하기 시작하며 복수의 첫단추를 훌륭하게 꿰었다.
초반부의 전개는 전형적인 복수물의 형태를 띄고 있다. 배신 당한 주인공,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약혼자, 이에 복수하기 위해 제안한 계약 연애.... 그러나 회귀의 과정부터 평범한 복수물의 클리셰는 벗어던졌다는 암시를 표현한다. 레지나가 회귀할 수 있던 이유, 생명을 바쳐 소원을 빌면 뭐든 이루어준다는 초대 황제의 유품이다. 그리고 전생에서도 헤르만의 곁에 꼭 붙어 있던 주술사, '아네타'는 그 유품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이는 회귀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네타는 그 유품과 동일한 형태의 목걸이를 레지나에게 선물한다. 마치 목걸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인 것처럼. 아네타가 주술사라고 확신하던 레지나는 그녀에게 더 한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직감하고, 본격적으로 그녀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해당 목걸이는 작품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목걸이로 인해 레지나가 회귀할 수 있었으며, 동일한 목걸이의 등장으로 아네타가 그저 그런 주술사, 혹은 헤르만의 연인이 아니라는 암시가 주어진다. 또한, 아네타가 레지나에게 목걸이를 선물한 후, 우리가 흔히 알던 로판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개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중요한 도구이자 후에 아네타의 정체 파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로 작용한 것이다.
목걸이의 등장 전까지 그저 '잘 만든 아는 맛'이었던 작품은 순식간에 반전된다. 하지만 이 아는 맛을 잘 풀어내어 독자를 사로잡는 것 또한 작품의 역량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딸을 등한시 했던 황제, 그리고 그런 황제에게 일말의 기대를 보이지 않았던 레지나. 가족물과 후회물이 결합된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구조이지만, 이를 굉장히 잘 풀어냈다. 절절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로 레지나에게 황제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나타낸다. 일반적인 가족물이었다면 이야기 후반, 레지나가 황제를 용서했겠지만 그녀는 끝까지 황제를 용서하지 않는다. 황제는 레지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다시는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걸 초반부의 속도감 있는 전개로 미리 보여준 것이다.
끊임없는 복선
목걸이를 시작으로, 작중 내내 복선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아네타의 주술에 걸려든 이들이 하나 같이 초대 황제의 이름에 과민 반응을 하는 것, 도입부에서 세 황족 중 레지나만이 아네타의 주술에 걸려들지 않은 것, 끝까지 공개되지 않은 황족의 미들 네임 등.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모두 천천히 밝혀지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이다.
아네타의 정체는 상당히 이른 시점에서 밝혀진다. 그녀의 정체는 '마녀'로, 주술이 아닌 마법을 쓰는 자였다. 초대 황제가 마녀를 '멸종'시킨 후 살아남은 유일한 마녀인 그녀는 어째서인지 황족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 그녀가 헤르만의 반역을 도운 것도, 아니, 헤르만의 가문인 슬베이그 공작가를 이용하여 반역을 주도한 것도 모두 황실, '알페어' 가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녀의 마법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같은 여자에게 마법을 쓰는 건 금기라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마녀의 금기에는 여러 사항이 존재하는데, 이를 어길 때마다 그들의 마법의 원천인 심장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하며, 완전히 굳어진 순간에는 결국 가루가 되어서 사라진다고 한다. 아네타가 작중 내 마법을 건 이들의 대부분이 남자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테오르의 호위 기사 중 하나인 '제시' 경의 가문의 풍습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했다.
초대 황제와 함께 마녀의 멸종에 앞장 섰던 제시 경의 선조는 살아 남은 마녀의 저주가 혹여나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했다. 그 선조는 공작 작위도 버린 채 수도에서 물러났음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고, 마녀가 같은 여자에게 마법을 거는 건 금기라는 걸 알았기에 제시 경의 가문은 어린 남자 아이에게 여장을 시켜서 마녀의 불운을 피해가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작품 초반,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의 일부분으로만 여겨졌지만 후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작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황족들의 미들 네임이다. 편의를 위해서, 혹은 차용한 서양식 이름 방식에 따라 미들 네임을 그저 알파벳으로만 표현한 작품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미들 네임이 중요한 도구로 작동한다. 아네타의 복수 그리고 마법의 제약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네타의 진짜 이름은 '에발디나'로, 그녀는 초대 황제의 연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나무꾼을 황제로 만들어 준 것도 에발디나의 도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힘이 두려웠던 초대 황제는 결국 마녀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서 처형시켰고, 에발디나는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탈출하여 겨우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초대 황제에 대한 원한과 그들의 후손에 대한 복수심으로 에발디나는 슬베이그 공작가를 이용하기로 다짐했고 결국 반역까지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초대 황제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 신이 만든 규칙에서 벗어나 늘 신에게 외면 받았던 마녀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을 싹 잡아들인 자가 초대 황제였으니. 신의 눈에는 얼마나 충실한 신하로 보였을까. 그들의 보라색 눈동자는 신의 총애를 나타내고, 알파벳으로만 표기된 미들 네임은 마녀의 마법에 걸려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마녀는 소개 받은 이름으로 그들에게 마법을 걸 수 있는데, 알페어들의 미들 네임은 모두 그들만이 아니, 소개 받아도 마법을 걸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레지나가 테오르를 교육 시키기 위해 특별 제작한 '다콘 나무'로 만든 몽둥이 또한 단순한 개그적 요소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콘 나무는 황족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설정이 붙었는데, 레지나는 그저 황자인 테오르에게 상처를 입힐 순 없으니 이 나무로 몽둥이를 만들어서 테오르를 교육 한다. 뭐, 말만 교육이지 실상은 열심히 때리는 것이었지만... 다콘 나무이기에 테오르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는다.
그리고 후에 테오르는 이 몽둥이로 아네타의 마법에 걸려든 자를 때린다. 그저 망나니의 화풀이었지만, 몽둥이로 맞은 자는 놀랍게도 아네타의 마법에서 자유로워졌다. 신의 축복을 받은 나무가 여기서도 마녀들로부터 알페어를 지켜준 것이었다. 이쯤되면 후반부의 아네타가 알페어는 얼마나 신에게 꼬리를 잘 흔드는 개였냐고 잔뜩 빈정거릴 만도 했다.
작은 설정 하나까지 그냥 지나칠 수 없이,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전개 덕에 독자들은 작품을 더욱 즐길 수 있었다. 더하여, 레지나와 함께 아네타의 정체를 추리할 때는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 했다. 꾸준히 읽은 독자에게는 반가움을, 새롭게 유입된 독자에게는 신선함을 주는 장치인 것이다.
사랑과 용서, 그리고 연대
장르가 장르인만큼 계약 연애로 시작한 레지나와 아론의 사랑 이야기도 작품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이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아론이 처음으로 겪는 유형인 레지나, 그리고 절대로 아론을 사랑할 리 없다며 클리셰가 잔뜩 들어간 대사를 치는 레지나의 조합은 독자에게 달달한 설렘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소설로 볼 때는 시도 때도 없는 아론의 플러팅을 비판하는 독자도 다수 존재했다. 심각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건 아무래도 흐름 상 분위기를 깨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맞는 그림 작가님과 만난 웹툰 덕에, 아론의 미모는 누가 봐도 절세 미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독자들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꼽혔던 플러팅도 그 얼굴과 만나니 되려 설렌다는 평이 압도적이었다.
웹툰의 후반부부터 외전에서 볼 수 있는 헤르만과 에발디나의 서사 역시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는 요소였다. 그저 가벼운 만남으로 아네타를 좋아한 헤르만이 아닌, 아주 어릴 적부터 에발디나의 존재를 알고 그녀만을 사랑해 온 헤르만과 그런 헤르만을 차마 내칠 수 없던 에발디나의 서사는 또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 했다.
그 외에도 레지나의 시녀와 호위 기사의 이야기, 황제와 황후의 사랑, 테오르와 황태자 비의 귀여운 연애 등 여러 유형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사랑 외에도 용서를 큰 주제로 다루고 있다. 초대 황제가 에발디나에게 저지른 잘못, 그리고 에발디나가 제국민들에게 저지른 잘못. 그 모든 것에 대한 사죄와 용서는 작품 후반부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레지나는 마녀들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초대 황제의 일기장을 에발디나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듣고, 이를 건네주게 된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는 찌질했던 한 남자의 웃기지도 않은 자기 만족이지만, 에발디나가 끝끝내 듣고 싶었던 그 말이 마녀들의 언어로 적혀있었다.
이렇듯 레지나는 이미 죽어버린 초대 황제의 일기장을 에발디나에게 전해줌으로서 그의 마지막 용서를 전달했고, 에발디나는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복수를 멈춤과 동시에 사죄의 의미로 죽기 전까지 제국의 마법 연구에 힘을 썼다. 용서는 선택이지만 사죄는 필수. 레지나가 장난스레 던진 진담이 아름다운 결말을 위한 최고의 대사가 되었다.
마녀들이 레지나에게 일기장을 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지나를 만난 건 에발디나를 위해서였다. 그들도 그들이 사랑했던 작은 마녀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건 원치 않았을 거다. 더하여, 마녀들은 레지나에게서 에발디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내제된 상냥함이었다. 그 상냥함을 잃지 않았으면 해서, 상냥함으로 사죄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 마녀들은 마지막 힘을 써서 레지나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비록 악역 역할이었던 에발디나와 헤르만이 완전한 죗값을 받지는 않았지만, 작품은 완전한 선과 악 대신 새로운 형태의 결말을 보여주었다. 권선징악이 어쩔 수 없는 주를 이루는 미디어에서, 각자의 사정 속 그들만의 연대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레지나가 사죄를 전해주어서, 에발디나가 사죄를 해서 제국은 전례없는 마법의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억울하게 죽은 마녀들에 대한 기록을 정정했고, 초대 황제의 악행까지도 모두 인정했으며, 마녀들을 마법사라고 다시 칭하기 시작했다. 에발디나는 마지막 마법사로서 연구를 도왔으며, 레지나는 제국도 지키고 사랑하는 동생이 무사히 황위에 오르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테오르는 망나니 기질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누나의 진심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누구도 지키지 못했던 지난 생과는 달리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도 약속하게 된 레지나는 완벽한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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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가장 흔한 전개를 가장 울림있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늘 악역의 몰락만을 바라던 우리는 악역의 존재의 의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이토록 입체적인 인물들이 전하는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 작품을 본 이후, 로판 속 여러 악역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저 흔한 나쁜 사람이 아닌, 전개를 위해 필요한 악역이 아닌, 최종 보스에 버금가는 악역들은 각자의 사정을 갖고 있다. 그만한 악행을 벌이기 위한 설득이 독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만한 서사를 가진 이를 우리는 용서할 수 없었던 걸까?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감정으로 그들을 대한다면, 작품 속 인물들을 마냥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디어를 좋아하고, 매체를 좋아한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설득과 개연성을 부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전지적 3인칭 시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는 레지나와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따라간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의 주요한 역할이다. 독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러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에발디나를 용서하고, 그녀를 짠하다고 느끼며, 초대 황제에게 화를 느낀다. 헤르만의 절대적인 사랑을 마냥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론의 심리적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황제를 온전히 용서할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건 주인공이 주는 힘이다.
여러 모로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독자가 그대로 따라가면서 최종적으로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느끼는 것이 잘 만들어진 웹소설 혹은 웹툰의 정석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망나니의 누님이시다』를 애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