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엄마의 학예회에 가다 [사람]

글 입력 2024.11.2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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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던 저번 주 주말에 엄마의 학예회에 다녀왔다.

 

학예회는 본래 학교에서 하는 공연이라는 뜻이다. 엄마는 학교에 다니지는 않지만, 1년 전부터 동네 시민센터에서 난타를 배워왔다. 배움이 있는 곳은 어디든 학교이기에, 엄마가 주말에 한다는 난타 공연을 나는 학예회라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에 살면서 한 달에 두 번 올까 말까 한 내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 처음부터 엄마가 날 초대한 건 아니었다. 생활체육센터에서 꾸준히 듣던 난타수업에서 공연을 한다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얼핏 주워듣고는 “그럼 가야지!” 하고 가기로 약속했다. 엄마의 공연. 이런 이벤트는 처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정확히는 마치 내가 엄마의 부모님이 된 느낌이었다.

 

 

 

나를 울린 노래


 

공연 당일 동네 꽃집에서 예쁜 튤립 한 다발을 사고 공연이 예정된 복지센터 건물로 향했다.

 

공연장에는 팀별로 맞춘 형형색색의 단복을 입은 엄마 나이또래의 어른분들과 지긋하신 어르신 분들이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발을 종종거리고 있었다. 일주일간 내가 지었던 메마른 표정보다도 생기 넘쳐 보여 괜스레 같이 긴장이 되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가 속한 난타팀은 맨 마지막인 8번째 순서. 엄마의 차례가 오기까지 아빠와 앞 순서의 공연들을 관람했다. 긴장을 안고 무대에 오른 첫 팀은 하얀 셔츠에 빨간색 천 리본을 단 시니어 합창단분들. 합창단분들께서 무대에 올라 긴장된 표정으로 숨을 가다듬는 모습에서부터 왠지 모를 찡한 감정이 느껴졌는데, 노래가 시작되니 갑자기 온 신경이 집중되면서 더욱 몰입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라디오 사랑 덕에 옛 노래, 트로트들도 흥얼거릴 정도로 꿰고 있는 나였지만 첫 곡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고, 노래를 모르니 자연스럽게 가사를 더 귀 기울여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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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얼마나 내게 필요한 사람인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

사랑해요 사랑해요

날 믿고 따라준 사람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요

 

정말 왜 이리 눈물이 날까요. 노래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세상 어떤 ‘믿고 듣는’ 가수의 목소리보다도 깊었던 목소리. 부르는 가사 하나하나 귀가 아닌 마음에 다시 써내려 져 가는 그런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날 노래하셨던 어르신분들은 알까. 당신께서 그렇게 좋아해 마다하지 않는 가수 임영웅이의 노래보다도 더 마음을 울리는 위로를 선물하셨다는 걸. 그 노래 한 곡에 지금의 연륜을 새기게 되기까지의 모든 시간과 경험이 모두 녹아있는 것만 같았다. 한 분 한 분의 얼굴과 반짝거리는 눈이 눈에 띄었다. 모두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만 느껴져 마음을 진정할 새 없었다. 그래서 남은 모든 무대들에 열렬한 박수로 모든 마음을 대신했다.

 

 

 

실수도 나누면 그만


 

그리고 드디어 엄마가 무대에 오를 시간이 왔다. 학예회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한 나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랬을까. 나까지 덩달아 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노래와 함께 둥, 둥,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엄마는 맨 앞 줄 센터에 당당히 서서는 스틱을 두 번이나 떨어트리는 대형사고를 일으켰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순간 가장 크게 웃은 것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큰 실수를 해도, 관객석에 나와 아빠가 여전히 든든히 응원하고 있기에 엄마는 괜찮을 거라는 걸. 앞전의 두 번의 실수를 지나,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엄마의 표정을 보며 얼른 무대가 끝나고 잘했다고 다독여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 제일 먼저 엄마에게 달려가 꽃다발을 안겨 드렸다.


나는 그럴 때 지독히도 큰 사랑을 느꼈다. 전 날 집에 들어오며 풀려버린 신발끈이 귀찮아 그냥 뒀었는데, 아침에 다시 신으려고 보니 단단히 메어져 있을 때. 계란말이에 당근은 싫다고 지나가듯 하는 투정에 “그냥 좀 주는대로 먹어라”하고 한 소리 들었지만 그 다음 계란말이에 당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을 때. 내가 학예회 무대를 할 때마다 그 많고 많은 아이들 중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하곤 손 흔들어 주셨을 때. 세상에 나만 보이는 듯이 그 시절 줌인으로 찍어주고, 내가 잘 하건, 실수를 하건 그저 잘 했다고 안아주셨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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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랑이 마음 깊이 남아서 따라 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의 학예회에 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박수치고, 꽃다발은 안겨 드린 건 내가 올해 실천했던 사랑 중에 감히 가장 밀도 높았던 것 같다.

 

다들 한 번씩 부모님의 학예회에 가 봤으면 좋겠다. 나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드라마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릴지도, 예상치 못한 허점에 웃음이 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것으로도 채우기 어려웠던 허전한 마음에 단비 같은 사랑을 맞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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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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