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제목은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지브리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2001년 개봉 이후 19년 동안 일본 역대 흥행 순위 1위 자리를 지켜왔을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2022년 일본 도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음악극으로 탈바꿈하여 무대 위에서 첫선을 보였다. 엄청난 기록을 세운 원작을, 다른 매체로 옮겨서 각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동명의 음악극은 2024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고, 2026년 한국에서도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고유의 감성을 좋아했던 나는, 공연을 보러 가기 한참 전부터 굉장한 기대를 품었다. 재밌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기에 과연 무대 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원작의 명성이 워낙 거대하여 약간은 실망하면 어쩌지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공연은 가히 내 기대를 뛰어넘었다.
원작과 무엇이 같았나? - 영화 그대로 무대 위에, 디테일의 힘
극을 보고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원작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었다. 대사는 물론이고 장면 구성, 등장인물들의 외형까지 영화를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치히로네 가족의 모습, 유바바의 온천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과 그 배경들, 이후 등장하는 가오나시를 비롯한 다양한 손님들의 모습까지 정확히 구현되어 눈이 즐거웠다.
또한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재현한 것이 정말 놀라웠다. 이를테면 유바바가 보우를 들여다보다가 파묻히는 장면, 하쿠가 치히로와 다리를 건너다가 개구리를 잠시 멈출 때의 움직임 등이 있겠다.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했던 부분들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살아있어 보는 맛이 있었다.
영화를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놓다 보니, 원작의 이야기가 주는 감흥이 극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다르게 말하면, 공연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예술적 성취를 확인한 계기가 된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순수한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는 부모가 돼지가 되어버리는 인간 탐욕의 문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실존적 문제, 강의 신으로 보여주는 환경오염의 문제, 그리고 사랑까지 아주 다양한 주제를 담아냈다는 것이 가장 훌륭한 지점일 것이다. 원작의 좋은 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겠지만, 각설하고 음악극 버전이 이룩한 성취로 넘어가 보고자 한다.
원작과 무엇이 달랐나? - 연극적 요소를 살린 창의적 연출
앞서 극에 대한 칭찬으로 원작과 똑같이 구현한 점을 들었는데, 이는 다르게 말하면 매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창의력이 발현된 것이다.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과 달리 무대는 시공간적 제약이 있고, 그렇기에 영상 매체의 표현을 무대 연출로 각색하는 데에는 굉장한 노력이 요구된다.
우선 대규모 무대장치가 실감나는 구현에 기여했다. 무대의 중심에는 회전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통해서 식당, 온천의 내부와 외부, 가마 할아범의 보일러실 등 다양한 장소를 유기적으로 표현했다. 분명히 같은 자리, 같은 무대인데도 수없이 많은 장소로 느껴지는 연출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은 실제로 작은 기차가 무대를 한 바퀴 돌고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오물을 벗어낸 강의 신이 날아가는 것은 관객석 위에 와이어를 사용해서 실감 나게 나타냈다. 하쿠가 용이 되어 날아가는 장면에서도,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다른 용 모형을 사용하여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은 아무래도 인형극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작은 숯검댕이들, 보우가 변한 쥐, 유버드(유바바 얼굴의 새), 개구리 등 사람이 직접 표현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이 다수 있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 극에서 채택한 방법은 바로 퍼펫, 즉 사람이 작은 인형을 들고 연기하는 것이었다. 잘못하면 사람이 더 눈에 띄거나 인형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거슬림 없이 마치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 전통극과의 결합
이 지점에서 일본 전통극과의 결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극이 더욱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일본인이 만들어낸 원작을 일본 전통 방식을 활용하여 고유한 정서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인형극의 요소는 일본 전통 인형극 ‘분라쿠’를 연상시킨다. 분라쿠는 17세기 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일본 고유의 인형극을 말하며, 노, 가부키와 함께 일본의 3대 전통극으로 분류된다. 정교한 모습의 인형들, 그리고 조종사들의 자연스럽고 살아 숨 쉬는 연기는 모두 분라쿠의 탄탄한 역사가 뒷받침하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무대 위 요소들을 모두 실제 인력으로 진행하는 방식은 또 다른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와도 연결된다. 가부키에는 등장인물들 외에 ‘쿠로고’라 불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출연자들이 무대를 보조하는 전통이 있다. 본 극에서 역시 이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여 가마 할아범의 손이나 거대해진 가오나시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전부 무대 위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관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인물과 내용에만 몰입하게 된다. 실제로 연출가 존 케이드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전통에서 영감받았음을 밝히며, ‘관객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다 보여주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믿을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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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작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공연이었다. 영상을 무대 위로 옮기는 과정의 무궁무진한 창의성에 한 번 놀라고, 구체적으로 전통 연극의 어법을 빌려와 노련하고 매끄럽게 표현한 완성도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오리지널 스토리의 힘을 다시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모든 매체 간 각색이 이렇게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좋은 예술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