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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는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보통 16화까지 보아야 끝나는 드라마보다는, 3시간 이내에 하나의 세계관이 끝나는 영화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잘 만든 드라마, 내 취향의 드라마는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즐기면서 보게 된다. 특히 한 화 한 화 본방을 기다리면서 봤던 드라마는 인생의 한 부분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본 글에서는 그동안 마음속에 깊이 남았던 내 인생의 드라마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섯 명의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살기,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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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시대>는 내가 중학생 때 방영했던 드라마로, 처음으로 인생 드라마라고 생각했던 작품이다. 중학생이던 나는 사춘기를 겪으며 인생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청춘시대를 만나서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인간관계의 미묘함, 그 속의 불편함과 소중함을 드라마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현실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윤진명(한예리), 연애에 올인하지만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며 상처를 겪는 정예은(한승연), 외모를 무기로 삼는 듯하지만 숨겨진 상처와 사연이 있는 강이나(류화영), 소심한 성격이지만 첫사랑을 겪으며 변화하는 유은재(박혜수/지우), 그리고 여자 신동엽으로 불리며 활달한 성격이지만 정작 모태 솔로인 송지원(박은빈)까지 다섯 하우스메이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다섯 명의 하메가 주연이다 보니 드라마의 이야기가 굉장히 다채롭게 흘러가서 재미있었고, 연애 관련된 부분이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이어서 눈물도 많이 났다.

 

특히 이 작품 속의 박은빈 배우를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훌륭한 연기력으로 통통 튀는 캐릭터를 너무 잘 살려서,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송지원 캐릭터를 계속 찾아봤었다.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작품 속 캐릭터들에 대한 애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드라마가 끝나고 한참 동안 허전한 마음으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이 드라마에는 명대사가 참 많다. 특히 나레이션으로 인물의 속마음을 드러낼 때 대사들이 정말 주옥같다. 예를 들어 강이나의 “내 질투에선 썩은 내가 나”와 같은 대사가 있다. 이 작품의OST 로 쓰인 ‘홀로 있는 사람들’을 통해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참 소중한, 나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드라마이다.

 

 


위트로 무장한 명작, 멜로가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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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내 마음에 들어온 건 2019년에 방영한 <멜로가 체질>이다. 특유의 툭툭 던지는 유머가 참 매력 있는 드라마이다. 청춘시대를 좋아했던 나이기에, 어쩌면 비슷한 느낌의 하우스메이트들이 공유하는 이야기에 꽂혔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에는 20대가 아닌 30대로, 좀 더 높은 나이대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였다. 천우희와 안재홍, 전여빈, 한지은의 연기가 정말 마음 깊이 남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위트가 정말 뛰어나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으로는 PPL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 드라마의 PPL을 넣어버리는 것이 있다. 진지한 장면이 나오다가도 어처구니없게 웃기는 대사가 나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메인 커플인 임진주(천우희)와 손범수(안재홍)가 나누는 대화도 웃긴 것이 정말 많은데, 두 배우가 맛깔나게 살리는 것이 포인트. 손석구라는 좋은 배우를 발견하게 된 드라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전여빈 배우가 맡은 이은정의 서사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나는데, 야감독으로 등장하는 손석구와 처음에는 갈등하지만 결국 통하는 관계가 참 아름답다.


청춘이 살아가기 힘든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유머와 우정, 사랑으로 극복하자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드라마이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추앙 그리고 해방,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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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럼 현재 인생 드라마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답할 수 있다. 바로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나의 해방일지>이다. 명대사 몇 줄로는 정리할 수 없어서 집에 4권짜리 각본집 세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앞의 두 드라마보다는 상당히 진지한 드라마에 속한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며 내 취향도 좀 더 성숙해졌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우리 엄마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대사가 너무 작위적이라서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숨길 생각도 없이 일부러 대사 같은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좋았다. 다큐가 아니고 극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부분들을 건드려주는 대사들이 내 마음속에 있던 소망을 대변해 주는 느낌이었다.

 

“나도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두 시간 되나? 나머지는 다 견디는 시간.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 미정

 

한 번도 제대로 채워진 적 없다는 느낌은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이전까지는 몰랐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면에 그런 갈증이 존재해 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정, 창희, 미정의 세 남매가 갖고 있는 인생의 불만족과 갈증은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된다. 기정은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을 능동적인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해소하고, 창희는 주변 환경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결국 본인의 진정한 성향과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안정을 찾는다.


나의 해방일지의 핵심, 미정과 구 씨의 러브라인은 여타 드라마와는 굉장히 다른 성격을 갖는다. 미정은 “어디에 갇힌 건진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답답한 일상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한 번 해보기로 한다. 그 대상은 옆집에 머무는 구 씨이다. 미정은 구 씨에게 서로를 조건 없이 ‘추앙’해 줄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지만, 각자의 아픔을 드러내면서 미정과 구 씨는 끝내 서로를 추앙하는 관계로 이어진다.


"어떻게 지내시나? 그동안 해방은 되셨나?"

"그럴리가."

"추앙해 주는 남자는 만나셨나?"

"그럴 리가."

"보자."

"안 되는데.."

"왜?"

"살쪄서... 살 빼야 되는데..."

"한 시간 내로 살 빼고 나와." - 구 씨와 미정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함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사실 초반부의 미정이 카페에 앉아 야근하는 장면에서,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연인을 상상하며 버티는 것을 보고 이 드라마의 사랑이란 심상치 않은 것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추앙’이라는 단어도 무겁고 그걸 제안하는 것도 무모해 보였지만, 결국 상대방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해방해 주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나도 그런 해방감을 언젠가는 느껴볼 수 있을까….꿈꾸게 했다.


이 드라마는 대부분의 대사와 결론이 굉장히 철학적이다. 인생에 대한 철학을 대사로 담아낼 수 있는 박해영 작가의 능력은 언제나 존경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매년 여름만 찾아오면 산포의 논밭을 걸어가던 미정과 구 씨가 생각날 것 같다.

 

*

 

이렇게 내 인생의 주옥같은 드라마 세 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사실 16부작가량의 서사를 완성도 있게 연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품을 만나는 순간 한동안 거기에 빠져 살 수밖에 없기에, 종방 후의 허전함이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청춘시대>는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위로와 성장의 거울이 되었고, <멜로가 체질>과 <나의 해방일지>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드라마이다. 다섯 하메들, 멜체의 세 친구들, 구 씨와 세 남매까지, 그들은 한동안 내 인생의 일부였다. 당신에게도 그런 드라마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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