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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떠올려 보면 옛날부터 여러가지 프로그램, 툴, 시스템을 시험 삼아 자주 사용해 보고는 했다.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사이툴, 메디방 같은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눌러보며 혼자 배웠고, 최근 들어서는 마인드맵 필기 앱이 유행하는 통에 모든 시험공부를, 앱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하기도 했다. 도서에도 등장했듯 디자인 전공의 필수 툴이라는 ‘피그마’ 역시 처음 나왔을 때 사용해 본 적이 있다. 그런 배움이랄까 일종의 몸통 박치기 같은 경험을 지나, 쓰는 프로그램만 쓰고 대화형 인공지능에 많은 것들을 맡기게 되는 지금이다.


그렇게 잠시 멈춰있을 때 『일을 위한 디자인』을 만나게 되었다. ‘공대 나온 디자이너’ 저자 올리비아 리는 현대에 직업인이 가져야 할 마인드에 대해 은유적이면서도 자세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전달한다. 인공지능이 상용화된 요즈음, 우리는 직업인으로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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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에 대해 알아갈 때 구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의 도입에서 마인드맵 공부법을 애용한다고 밝힌 만큼, 공부할 땐 패턴을 찾아내어 그것을 주제에 따라 묶고 적절하게 배열하는 것을 즐긴다. 올리비아 리는 그런 학습 과정의 구조를 뜯어 다시 살펴 분석하며, 추상화 -> 구조화 -> 적용 -> 검증의 사고 루프 원칙을 다룬다. 특히 문제를 정의하는 추상화와 정리하는 구조화를 강조한다. 내 경우 이때 사용되는 ‘추상화’라는 단어는 처음 보는 단어였다. 알아보니 일종의 프로그래밍 용어로, 복잡한 문제에 있어서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낼지 정의한다는 말이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거품인지 가려낸다”는 것. 저자는 그렇게 마주한 문제의 본질을 자신의 지식 혹은 경험, 정보와 연결하여 구조화해 보라며 제안한다.




최고의 프롬프트는 결국 ‘나’다


 

『일을 위한 디자인』 도서에 처음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 역시 이 캐치프레이즈 덕분이었다. 제목에서 ‘디자인’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사실 나와는 크게 관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표지의 문구와 목차를 읽으니 ‘일을 위한 디자인’이라 함은 “AI 시대, 일을 하는 직업인으로서 내가 가져야 하는 생각의 구조를 설계한다”라는 의미로 여겨졌다.


대화형 인공지능은 나의 말을 분석해 답을 내놓는다는 특성상 프롬프트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프롬프트 작성법에 대해서는 현재 많은 방법이 나왔다. 그런데 최고의 프롬프트는 결국 ‘나’인 이유는 무엇일까. AI는 답을 제시해 주지만, 본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는 쉽사리 알려주지 않는다. 묻는다 한들 적절한 대답인지는 ‘내’가 판단해야 하는 일이기에 다시금 추상화와 구조화 능력이 강조되는 맥락이다. AI는 좋은 도구지만, 어떻게 활용하고 의미 있게 적용할지는 나라는 인물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 있어서, 이번에는 학습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언런, 재학습을 통해 기꺼이 배운다


 

종종 새로운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 기존에 배운 것들을 전부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물론, 이미 있는 경험과 연결 짓는 방식 역시 좋은 학습 방법의 하나다. 그러나 올리비아 리는 “때로는 그 생각이 새로운 학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라고 말한다. 오래된 습관 위에 새로운 것을 덧칠한다 한들 결국 충돌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예시로 들만한 상황을 최근 겪었다. 오랜 기간 사용해 온 내 반려 노트북을 처분하고 RAM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맥북을 구매한 것이다. 처음 사용했을 때는 윈도우를 줄곧 사용해 온 터라, 기본적인 단축키부터 헷갈렸다. 이미 몸에 배어버린 윈도우 단축키 탓에 맥의 단축키를 외우는 데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전의 사고방식을 거의 완전히 없애고 구조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제야 비로소 새로운 단축키가 손에 익었다.

 

이러한 과정을 책에서는 ‘언런’을 위한 방법론, 초기화-재학습-전환-내재화로 소개한다. 이전에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손에 넣는 방식이다. 나는 이것이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 사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마인드’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사고와 신경 연결망은 자동화되어 있을 뿐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이나 신념이 언제든지 구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기존의 생각을 의심하고 다시 새롭게 하여 배우려는 마인드가 중요할 것이다.

 

이렇듯 『일을 위한 디자인』은 AI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아닌 AI와 함께 일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업인이 어떤 사고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 기술의 변화 앞에서 흔들리기 쉬운 태도를 점검하게 만든다. 저자의 시니어 디자이너로서 통찰과 진솔한 신념 등이 담겨 있어,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과 사고방식을 되돌아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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