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가끔 나에게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하신다. 나는 그만큼 옛날 음악, 영화 등 과거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나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돌아갈 수 없는 날들에 대한 향수를 모두 어느 정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 추측한다. 이렇게 옛날 것을 좋아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나에게 재개봉 열풍은 참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된 명작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고, 극장 음향으로 처음 접할 수 있다니!
몇 년 전부터 OTT가 미디어 시장을 주도하면서, 극장가는 떠난 관객들의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서 고전 명작들을 재개봉하기 시작했다. 올해만 해도 ‘더 폴’, ‘택시 드라이버’, ‘델마와 루이스’ 등 이름만 대면 아는 영화들이 영화관에 걸렸다. ‘시네마 천국’도 그중의 하나로, 재개봉 소식을 접하자마자 무조건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간만에 친구랑 함께 본 영화는 예상대로 너무 좋았고,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왔다. 이 글은 ‘시네마 천국’을 재개봉으로 난생처음 접한 사람의 감상이 되겠다.
이야기에 대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설명해 보자면,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어린 소년 토토는 마을 영화관 Cinema paradiso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친구가 되며 영화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영화와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인생의 멘토가 된다. 세월이 흘러 토토는 성장해 마을을 떠나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알프레도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그는 잊고 있던 추억과 감정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물을 닦으면서 든 생각은, 이건 영화를 매개로 인생에 대해 노래하는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굉장히 단순했지만, 인생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찬미하게 만들었다.인생의 아름다움은 대게 마음 바쳐 무언가를 좋아했던 기억에서 비롯된다. 토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커서는 엘레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결국 그 기억들이 인생을 지탱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예술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들이 있기에, 토토의 인생 속에서 내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알프레도와 같은 멋진 어른이 있어 아이를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점 또한 아름답다. 우리 사회에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예뻐해 주고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어른들이 없다면 위대한 성장 또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챙겨주는 무수히 많은 진짜 어른들이 곁에 있다.
그러나 알프레도를 생각하면 동시에 참을 수 없이 슬퍼진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불가항력이지만 그래서 언제나 슬프다. 알프레도의 부고로 시작하는 구성이 초반부터 아련한 마음과 함께 감상하도록 만들었다. 본인의 인생은 내리막 단계이지만, 자라나는 희망을 위해서 단호하게 고향을 떠나서 돌아보지 말라고 할 때는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찼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둘의 상황이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점은, 영화관에서 울고 웃는 관객을 보면서 나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Cinema paradiso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스크린을 보고 울고 웃으면서 작품을 즐기는데, 그 모습이 나와 겹쳐 보여서 기분이 묘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난 것이 또 다른 ‘영화에 대한 영화’,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이다. 나는 ‘바빌론’을 ‘시네마 천국’보다 먼저 본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 나는 영화의 세계로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알아듣지 못한 요소들이 매우 많았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결국 인생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는 인상을 받은 반면, ‘바빌론’은 영화 산업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그 명과 암까지 종합적으로 다룬 영화였다. 그렇지만 두 작품은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자신이 몸담은 장르에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대개 그렇듯이, 나 또한 좋아하는 일이 의무가 되는 순간 애정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감독들은 본인의 분야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진정한 덕업일치인 것이다. 그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구성 및 음악에 관하여

‘시네마 천국’은 1990년에 개봉한 영화로 벌써 35살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경험한 적 없는 시절의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습성이 있으므로, 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 시절의 소품들, 풍경들, 화면 구성 방식에 매료되었다. 옛날 영화를 볼 때 내가 재미있어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요즘에는 흔하지 않은 연출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 토토의 엄마가 전화를 돌리면서 토토를 찾는 장면에서는 실내의 조명을 매우 어둡게 조성하여 시칠리아의 대낮인 밖의 풍경과 실내가 대비되었다. 어린 시절의 빛나는 기억과 시간이 지난 현재를 대비시키는 걸까? 또 토토가 로마로 떠나는 기차역 시퀀스에서 헤어짐을 표현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는데, 얼굴이나 대사 등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등을 토닥이는 손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이었다. 유행이란 것은 참 신기하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는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참 지난 후에는 그 방식들이 다시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의 노골적인 연출 방식이 지금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재개봉을 통해 옛날 영화들을 몇 차례 관람하면서 파악한 또 다른 특징은, 몇 개의 OST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선율이 자주 등장하므로 이를 통해 정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해당 OST가 기억에 잘 남는다. 물론 이 영화 속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그 자체로 너무 훌륭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래의 영화 음악 중에도 훌륭한 것이 많은 것에 비해, 하나의 OST가 모두와 공유된 기억 속에 자리 잡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옛날 영화의 OST가 좀 더 보편적으로 사랑받았던 이유는 소수의 음악이 영화 내내 흘러나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마지막으로, 기억과 영화에 관하여

영화를 보러 들어간 극장에는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그분들은 아마도 90년대에 이 영화를 처음 접하고, 재개봉 소식에 다시 보러 오신 관객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분들이 나보다 훨씬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부러웠다. 젊은 시절의 기억과 연결된 영화가 재개봉을 해서, 다시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마치 토토가 성공한 후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 Cinema paradiso를 보는 기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만 같고, 아련함과 슬픔이 증폭되어 다가올 것만 같았다. 나도 35년 후에 다시 볼 영화를 고른다면 어떤 작품을 보고 싶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주기적으로 영화관을 찾아서 영화를 보러 가는 나를 신기하게 보는 친구들이 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집에서 OTT로 감상하는 것이 싸고 편리하기에 그쪽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영화관을 간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하고 특별한 일이다. 완전한 몰입의 경험을 좋아하는 편인데, 집에서는 중간에 끊기거나 알림이 울리거나 무슨 일이 생기는 등 방해받는 요소가 매우 많다. 그러나 극장은 방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강제적으로 몰입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기에 좋다. 아도르노는 영화를 대중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장치로 보았지만, 나는 나를 속일 수 있는 곳이기에 극장이 좋다. 영화는 화려한 환상을 통해 나를 꿈속으로 데려가 준다. 현실이 마음대로 안 될 때는 꿈에 의존해도 되지 않을까? 내 삶에서 벗어나 한바탕 꿈꿀 수 있는 곳, 나에게 영화관은 그런 곳이다.
다시 개봉한 옛날 영화는 나를 과거 속으로 데려다주어 더 다양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2시간가량 몰입해서 살아볼 수 있다니, 정말 매력적이다. 장소와 시기는 매번 달라진다. 말하자면 만 오천 원짜리 단기 여행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재개봉 열풍이 끊이지 않고 쭉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야 나의 여행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재개봉 영화는 무얼 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