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쇼타씨의 마지막 출장'은 한국으로의 마지막 출장을 앞둔 쇼타 씨가 단골 식당에서 한국 대학생인 대성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보기만 해도 시원한 맥주를 연거푸 몇 잔이나 들이켜더니 라면 앞에서 기어코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한 학생에게, 말을 걸지 않을 어른이 있을까?
한국에 자주 출장을 다녀 한국어가 능숙한 쇼타 씨,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어서인지 일본어를 잘하는 대성.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고, 으레 그렇듯 술의 힘으로 제법 친해져 각자 품에 넣어 두고 있었던 것을 주고받게 된다. 쇼타 씨는 직장인이라면 품에 안고 산다는 바로 그 사직서를, 대성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건네주려고 했던 편지를.
술을 마시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피해야 하는 것이 약속이다. 하지만 쇼타 씨와 대성은 서로가 가져간 사직서와 편지를 각각 있어야 할 곳에 가져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야 만다. 기묘한 외출의 시작이다.

심장이 다시 뛰다
워커홀릭으로 살아오며 밥 먹듯 출장을 다녔던 쇼타 씨는 이번이야말로 마지막 출장이라고 다짐한다.
열심히 일해서 사업을 일으키고 궤도에 올랐지만, 사장의 책임은 무겁고 일은 여전히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변수투성이다. 잘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아내와 아들과는 삶의 방향이 달라져 버렸고, 빈자리에는 캐리어를 빼곡히 채운 아들의 스티커만이 남았다.
누수로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는 파이프는, 마치 여기저기 구멍이 난 것 같은데 어딜 어떻게 메꿔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쇼타 씨의 인생 같다. 그래서 쇼타 씨는 이 출장을 마지막으로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하지만 대성과의 조우가 가져온 비일상적인 경험들은 쇼타 씨에게 마지막이 아닌 '처음'을 선사한다. 대성의 여자친구인 '나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무용 공연에서 쇼타 씨는 충격을 받는다. 스마트 워치가 심호흡하라는 알람을 보낼 정도로 급격히 상승한 심박수의 이유는, 공연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었겠지만, 그 역동적인 움직임 자체가 느끼게 하는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무대를 넘어 무대 밑에서조차 쇼타 씨에게 울림을 준다. 무대에 올라가고 싶었고, 고대했던 기회를 잡았지만, 결국 올라가지 못하고 관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봐야만 하는 인물을 스크린은 선명하게 비춰낸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은 열망 그 자체다.
한번 무너졌고, 그로 인해 힘들어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인물을 보며 쇼타 씨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시작을 향해
영화는 무겁지 않고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그렇다고 갈등과 고민을 가볍게 처리하지는 않는다. 마냥 예쁜 화면만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특정한 분위기를 오래 끌어가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전환해 주면서 완급을 조절한다. 이러한 연출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조화를 이루어, 보는 입장에서도 이 이야기를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대성이다. 앞서 비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쇼타 씨에게 영향을 준 대성의 존재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 웃길지도 모르지만, 동화 속 요정 할머니같이 느껴진다.
쇼타 씨로 시작해, 대성이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은 대성으로 인하여 일상의 변화를 겪는다. 작게는 부딪쳐 안경을 떨어뜨린 남자부터, 쇼타 씨의 아들인 유토와 유토의 어머니, 그리고 외로움을 겪던 할머니까지. 우연과 우연이 차곡차곡 쌓이며 생겨난 변화들은 한 편의 동화처럼 부드럽게 연출된다.
물론, 대성이 마냥 비일상의 매개체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대성의 변화 역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대성은 여자친구인 나오를 좋아하지만, 그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나오를 배려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된다.
쇼타 씨에게 필요한 것이 지금 처한 상황을 넘어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면, 대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쇼타 씨의 부탁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 대성은 영화 초반보다 훨씬 후련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쇼타 씨는 계속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결혼반지를 물에 떨어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는 힘든 과거와의 단절이라기보다는, 과거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쇼타 씨는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면서도 후회했기에, 계속 얽매여 있었으면서도 스스로 마주하지는 못했다. 도망치지도 머무르지도 못했던 그 상황에서, 이제는 마주할 것이라는 용기가 생겨난 것이다. 쇼타 씨의 책상 서랍에 가득한 사직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놓고자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얽매임을 의미했다면, 물속으로 가라앉은 반지는 그 얽매임으로서의 해방일 것이다.
그 과거에서 쇼타 씨는 물론, 그 주변의 사람도 서로 상처 주고 상처 입었을 것이다. 과거를 마주하고 나아가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같은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아들은 아빠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쇼타 씨가 마지막 출장을 앞두고 찾은 선술집에서 '대성'을 처음 만난 순간, 이미 '마지막'은 '처음'에 자리를 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지막일 줄 알았던 출장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사실은 시작이었던,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런 출장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