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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도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죽음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쩌면 전혀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혁명이라는 거대한 시대 속에서 신앙과 공포,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을 포착한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수도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끝없이 흔들리고, 공포에 압도되며, 때로는 신조차 의심한다. 그렇기에 블랑슈와 수녀들의 마지막 선택은 더욱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끝까지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던 블랑슈가 선택한 결말은 어쩐지 아리송하기도 했다.

 

귀족 가문의 딸인 주인공 블랑슈는 어릴 적부터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신의 품 안에서 평안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혁명의 시대는 수도원마저 가만히 두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하고, 수도자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한다. 수도원 내부에서도 각자의 신념과 두려움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초대 원장 수녀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완전한 평화를 유지할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죽음의 순간에는 극심한 혼란과 공포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이 있다고 해서 인간적 공포까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님을 드러내는 독특한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새 원장 수녀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블랑슈는 혁명의 공포가 가까워질수록 수도원을 떠나 다시 세상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그녀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다른 수녀들의 행렬에 스스로 합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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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슈를 보며 가장 오래 남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과연 블랑슈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까?

 

분명 그녀는 끝내 수녀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 계속해서 현실로부터 도망치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와 자신의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선택은 분명 용기 있는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용기는 현대적인 의미의 주체적이고 자기 확신적인 용기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오히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보다 거대한 질서와 타인의 희생 속에 자신을 맡기는 고전적이고 종교적인 용기에 가깝다. ‘나’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내려놓는 방향의 용기이다.

 

블랑슈는 마지막까지도 완전히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죽음을 향해 돌진했다기보다는, 어떤 평안에 이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초대 원장 수녀가 남긴 평화와 신의 은총이 그녀를 마지막 선택으로 이끈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몸을 움직여 그곳으로 걸어간 것은 블랑슈 자신의 의지였다.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도 최근 본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주인공 그레이스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용기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없이 망설이고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 로키를 만나며, 자신 역시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레이스의 용기는 자각 기반이다. 자신이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삶을 헤쳐나간다. 하지만 블랑슈는 다르다. 블랑슈의 용기는 어찌 보면 굉장히 수동적이다. 애초에 블랑슈의 행동을 ‘용기’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하지만 어쩐지 블랑슈에서 그레이스가 보였고, 결국 두 작품 모두 ‘원래부터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조금 흔들어놓는다. 용기는 특정 인간만이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어떤 순간 실제 행동 이후에 비로소 발견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나 역시 오랫동안 자신을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언젠가 아무 생각 없이 눈 감고 행동으로 옮긴 순간이 있었는데, 그 뒤에 깨달았다. 용기라는 단어는 굉장히 결과론적인 단어였다. 어떤 것에 용기 있다고 하려면 반드시 행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니 용기라는 건 내재 어떠한 유형의 것이 아닌, 단 한 번의 움직임에 붙는 단어였다.

 

그러니 어쩌면 용기란 행동 이전에 증명되는 성격이 아니라, 행동 이후에야 겨우 정의되는 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내게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용기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나의 따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순박함에서 벗어나지 말기 바랍니다.

 

-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p59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혁명이라는 사회적 배경과 종교라는 배경 위에서 두려움 많은 인간의 발자취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웅을 쉽게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흔들리고 두려워했던 사람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인간의 용기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복합적인 것인지 보여준다. 그렇기에 블랑슈의 마지막은 숭고함 이전에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로도 결국 한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블랑슈와 수녀들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자연스럽게 자기 삶 속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삶과 죽음, 신념과 선택에 대해 사유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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