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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뮤지컬 <매드해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아니, 잠깐. 정답을 맞히라는 게 아니다. 그저 당신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뿐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겠지. 그건 '나는 내가 먹는 것을 본다'와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먹는다'가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러니까...
막이 오르자마자 '조슬린'은 대뜸 관객을 향해 엉뚱한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포도주 마실래? 포도주는 없어. 있지도 않은 포도주를 권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그러다 조슬린은 아예 객석까지 내려와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에 대해 캐묻는다. 하지만 대답을 기다리기는커녕 끊임없이 중얼거리기만 하는 그의 말은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 같다.
그 기묘한 오프닝을 지켜보다가 도대체 저 인간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질 무렵, 조슬린은 문득 자신이 아는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2025년 초연 당시 19세기 런던의 차가운 현실을 동시대의 메시지로 섬세하게 풀어내 호평을 받은 (주)홍컴퍼니의 뮤지컬 <매드해터>(강남 작/작사, 리카C 작곡, 오루피나 연출, TOM 1관, 2026.06.09.~08.30.)가 성원에 힘입어 약 5개월 만에 앵콜 공연으로 돌아왔다. 루이스 캐럴의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모자 장수'를 모티브로 하는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앞둔 19세기 런던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자'를 찾고자 하는 두 소년의 여정을 그린다.
아, 가만. 그래서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이 뭐냐고?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조슬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수수께끼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의 결말일지도 모르니까. 시작은 아주 높은 굴뚝 위다. 그리고 아래로, 아주 깊숙이. 런던까지 떨어질 거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내 생일! 열네 살엔 열두 시간씩 일할 수 있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뒤로 이어지는 조슬린의 긴 독백은 한 소년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조슬린의 이야기는 '노아'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노아가 '처음부터' 모자 장수였던 것은 아니다. 움직이는 철제 구조물에 매달린 노아가 등장하는 순간 공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파이프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그 구조물은 마치 비좁은 굴뚝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노아는 바로 그 굴뚝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굴뚝을 겨우 빠져나온 노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자를 잃어버리고 그 와중에 사장으로부터 해고 통지까지 받는다. 굴뚝을 청소하기엔 몸이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그 차가운 현실 뒤로 펼쳐진 무대 배경은 그에게 주어진 가혹한 날들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하다. 여기저기 얽혀 있는 파이프, 거친 질감의 벽면,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쇠로 된 무대 장치들까지. 그곳은 마치 거대한 공장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맑게 웃는 노아는 노래한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내 생일. 열네 살엔 열두 시간씩 일할 수 있어." 그러니 일도 금방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노아가 품은 미소가 무대 전체를 타고 흐르면 어느새 그곳은 마냥 삭막한 공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앨리스가 토끼 굴을 타고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처럼 굴뚝을 타고 차가운 런던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노아는 그곳을 따뜻하게 물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노아의 해맑음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생일은 맞은 노아가 이젠 열네 살이라 열두 시간씩 일할 수 있다며 기뻐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걸 웃으면서 말하는 노아의 모습은 어쩐지 섬뜩하기까지 하다. 고작 열네 살에 불과한 노아가 하루의 절반을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는 모습은 고도로 산업화되던 시기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노동자들. 일을 많이 할 수 있음에 기뻐하던 그들. 빛나는 '산업 혁명'이라는 말 이면에는 쉬는 시간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갉아내며 살아가던 그들이 있었다.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노아는 결국 '헥터'를 설득해 일을 따내고 그의 모자 공장에 입성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첫 번째 넘버인 '실크로 된 탑햇'에서 펼쳐진다. 뮤지컬 <매드해터>는 이 오프닝 넘버를 통해 작품이 가진 세계관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하는 만큼, 그런 동화를 떠올릴 때면 연상되는 톡톡 튀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담은 선율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 음악은 작품이 앞으로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갈 것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들을 순식간에 19세기 런던으로 데려간다.
이곳은 틀린 걸 틀렸다 말하는 내가, 이상한 게 이상한 내가 이상한 곳
헥터의 모자 공장은 기계와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노동자들은 기계의 부속품이나 톱니바퀴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노아는 쉬는 시간을 보장해 달라며 헥터를 설득하고, 겨우 얻어낸 그 10분 동안 노동자들은 문을 열고 나가 햇볕을 쬐며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공장의 삭막함과 노동자들의 모습은 무대 위 '철제 구조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각화된다. 두 배우가 직접 끌고 옮기며 움직이는 이 구조물은 공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었다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되기도 하고, 만국박람회의 관람객이 되기도 한다.
2인극인 뮤지컬 <매드해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수십 명에 달하지만, 연출은 런던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조물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또한 구조물은 인물을 대신하는 것뿐 아니라 장소를 전환하는 요소로도 활용됐다. 구조물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면 그곳은 구빈원 근처의 골목이 되기도 하고 헥터의 사무실이 되기도 하며, 박람회장이 되기도 했다. 인물의 등장과 장소의 전환이 제한적인 소극장 무대의 특성을 파이프로 엮은 이동형 구조물로 대체하며 역동성을 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홍컴퍼니
그렇게 공장에서 일을 하던 노아는 기술을 배워야만 계속 일을 할 수 있음을 깨닫고 펠트 공정을 배우러 '몰리'를 찾아간다. 펠트를 만드는 그곳은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몰리에게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노아는 어느 날 공장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그는 헥터의 아들인 '조슬린'이었다. 이상한 모자 그림을 그리는 조슬린은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찍어내는 모자가 아닌 각자의 개성이 담긴 모자를 쓰는 세계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몰리가 일을 그만두게 되자 노아는 그를 대신해 펠트 작업을 하게 된다. 이때 독특한 음향 연출이 펼쳐지는데, 수은에 중독되어 미쳐가던 공장 사람들의 목소리가 극장의 여러 방향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진 것이다. 무대 위의 소리가 객석을 타고 흐르는 순간, 서라운드로 퍼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작품의 세계관을 더욱 생생히 감각하게 만들었다. 관객은 노아와 함께 공장 한가운데에 갇히게 되고 기묘한 음향 효과를 통해 퍼진 노동자들의 광기는 그 객석을 완전히 뒤덮었다.
사람들이 이상해진 이유가 모두 '수은' 때문임을 알아낸 노아는 헥터에게 말한다. "수은을 계속 쓰면 사람들이 아프게 될 거예요. (...) 그런데도 바꾸지 않는다고요? 문제도 알고 답이 뭔지도 아는데!" 그러자 헥터는 네가 생각하는 답이 건강하게 일하다 모두가 길바닥에 나앉는 거냐고 반문한다. 그제야 노아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이 세계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이곳은 이상한 게 이상한 내가 이상한 곳이다. 쫓겨난 노아는 길바닥에서 잠이 들고, 어느 골목에서 눈을 뜬다. 굴뚝을 타고 내려와 런던이라는 이상한 세계에 도착한 노아는 헥터의 공장을 거쳐 구빈원 근처 골목까지 다다른다.
노아와 친구들의 뭐든지 모자가 되는 모자 가게
잠든 노아를 그곳에 데려온 이는 마찬가지로 길거리에 쫓겨난 '도티'였다. 많은 일을 겪고 지쳐버린 노아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고, 도티는 일을 하면서 견딘다고 답한다. 죽어라 일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또 일이라니. 그러나 도티가 말하는 '일'은 달랐다. 그건 햇볕을 따라 자리를 옮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자신만의 일을 한다는 도티의 말에 다시 미소를 되찾은 노아 앞에 조슬린이 찾아온다.
그리고 노아는 그곳에서 조슬린과 함께 모자 가게를 차린다. 한 사람만을 위한 한 사람만의 모자. 개개인의 인생이 담긴 모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노아의 모자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급기야 노아는 만국박람회장 앞에서 모자를 팔자는 제안까지 한다. 위험할 거라는 조슬린에게 그는 말한다. "우린 그냥 모자를 파는 것뿐이야. 혁명이나 전쟁 같은 게 아니라."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런 행위 자체가 이 사회의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일이라는 누군가가, 이건 앞으로 큰 혁명이 될 거라고 위험을 조장하는 누군가가 존재했으니. 그건 바로 헥터였다.
이 모든 게, 단돈 10실링 6펜스!
네 모자가 런던의 질서를 흐린다는 헥터는 노아에게 모자를 만들지 말라고 강요한다. 그러자 조슬린이 나타나 이러지 말라고 이건 다 내가 한 짓이라고 빌고, 노아는 그런 조슬린을 막는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헥터는 말한다. "수은 중독이구나." 다시 보니 무대 위에는 노아와 헥터 뿐이다. 수은에 중독돼 환각을 보게 된 노아가 조슬린이라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모든 걸 알게 된 노아는 질서를 흐린다는 바로 그 모자를 쓰고 사람들과 함께 박람회장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아주 짧았지만 분명 있었던 그 10분 뒤에 찾아온 건 끔찍한 폭력이었다. 들이닥친 경찰이 그들을 진압하는 순간, 19세기 런던의 현실은 1980년대 한국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노점과 빈민촌을 강제 철거한 그들. 거리를 배회하던 이들을 강제로 잡아들여 가두었던 그들. 환경 미화와 도시 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폭력 아래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던 그 순간을 말이다. 작품 속 19세기의 런던과 1980년대의 한국은 누군가의 빛나는 축제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져야만 했던 풍경으로 맞닿아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폭력이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 모두가 무자비하게 치워진 거리에 홀로 남은 노아는 친구들을 대신해 박람회장 안으로 들어가 난동을 부린다. 탑햇의 핵심은 바로 이 펠트의 감촉이죠! 그 위에 사람들의 피와 땀을 덧씌운 탑햇이 단돈 10실링 6펜스! 그러자 헥터가 소리친다. "저 더러운 까마귀 새끼를 내 책상에서 끌어내!"
이제 네가 이야기할 차례야
무대 위에 홀로 남은 조슬린은 주인을 잃고 거리에 남겨진 모자 사이에 앉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저 인물은 정말 노아의 환각 속 그 친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주인을 잃고 기다리고 있는 모자일 수도 있겠다. 그는 다시 노아가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무수한 시간을 견디며,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일'을 반복한다. 조슬린은 그렇게 노아의 이야기를 수십, 수백 번 발화해 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른 지금, 드디어 수수께끼의 정답을 확인할 시간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가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에 대한 정답을 묻자 모자 장수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전혀 몰라." 결국 이건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에 대한 나의 생각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 더러운 까마귀가 노아라면, 깨끗한 책상은 헥터이지 않을까. 노아의 부모님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돌아가셨고, 그 역시 일을 하다가 미친 모자 장수가 되었다. 그리고 극 중 헥터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네 나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부모님의 벌이가 끊기니 살던 곳에서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때 헥터는 알게 됐다. 이 도시에서는 돈이 있어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동은 이런 방식으로 대물림된다. 그러니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 즉 노아와 헥터의 공통점은 바로 그 지독한 가난과 노동의 굴레인 셈-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뮤지컬 <매드해터>의 인물들은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생각할 시간'을 빼앗긴 이들이다. 공연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울리는 종과, 공연이 진행되는 순간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노아가 그토록 바랐던 단 10분의 쉬는 시간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극 중에서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 동안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극장에 앉아 이 뮤지컬 세계에 진입한 관객은 잠시 쉼을 취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조슬린이 들려준 이야기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금 이 세상의 이면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당신 차례다. 누구라도 좋으니 저 끝없는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조슬린에게 제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가능하다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의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