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홍광호 김준수의 미친 호흡, 데스노트에 내 자리가 없었던 이유 [공연]

뮤지컬 <데스노트> 후기
글 입력 2022.06.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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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리뷰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요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캐스팅보드.jpg

내가 감상한 4월 12일 공연의 캐스팅보드

 

 

“홍광호 김준수 페어로 데스노트를 봤어요.”

“어떻게?”

 

 

2022년, 많은 뮤지컬 덕후를 웃고 울린 공연이 있다. 바로 뮤지컬 <데스노트>다. 오디 컴퍼니가 작품을 맡은 이후 달라진 연출 요소가 큰 호평을 받은 한편, 호화로운 캐스팅으로 자리를 잡기가 매우 어려운 공연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잡기 힘든 회차는 라이토 역의 홍광호 배우와 엘 역의 김준수 배우의 공연일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한 자리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2층이긴 했지만 VIP석으로!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데스노트>라는 작품은 원작부터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모두 섭렵했던 내게 꼭 보고 싶은 공연 중 하나였다. 공연 당일이 되자, 눈을 빛내고 두 손을 모으며 한 장면 한 장면을 머리에 새겼다. 2022년을 휩쓸었던 전설의 뮤지컬 데스노트, 그 강렬했던 순간을 후기를 통해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김준수, 그보다 L을 잘 표현할 배우는 없다


 

김준수.jpg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를 꼽자면 단연코 김준수 배우였다. 그의 엘 연기는 쉽게 말해, 미쳤다. 지금부터 내가 쓸 이야기는 왜 그의 연기가 미쳤는지를 상세히 풀어 쓴 것에 불과하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김준수 배우는 엘의 ‘캐릭터 성’을 완전히 가져갔다.

 

 

“훌륭하다, 키라.”

 

 

목소리, 거기서부터 끝났다. 세상에 엘이 존재한다면,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뱀 같은, 어둡고 축축하면서도, 지나치게 똑똑한 그 목소리. 진실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속에 살짝 스며든 교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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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도 엘은 괴짜 같은 매력이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김준수 배우는 원작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극에 녹여냈다. 라이토의 행위를 신이 되고 싶은 어린아이의 위선으로 보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점점 초조해지는 엘의 모습을 표현했다. 종종 엘의 괴짜스러운 성격을 반영한 웃긴 대사가 등장하곤 했는데, 그는 엘 그 자체가 되어 과하지 않게 장면을 소화해냈다. 

 

 


*2017년 씨제스 컬쳐 공식 영상

 

 

모든 극을 통틀어 최고라고 여겼던 넘버는 ‘변함 없는 진실’이었다. 넘버가 끝나고 나는 기립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사신의 존재가 밝혀진 뒤, 무대 위에 홀로 남은 엘. 오직 검은 공간과 하얀 선만이 남아있다. 가치관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반영한, 그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헤집고 들여다보는 기분. 혼돈 속에서 그의 손을 따라 경계선이 움직이고, 마침내 사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연출이 압도적이다. 혼자 꽉 채운 자리, 오직 엘 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 순간은 여전히 내게 전율을 선사한다. 미친 몰입감의 이유는, 배우의 가창력과 연기, 연출이 완벽한 합을 이뤘기에 가능했으리라.

 

 

“내가 엘이야.”

 

 

뮤지컬 <데스노트>는 엘의 명장면을 최대한 재현했다. 극의 흐름 역시 이를 방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각색되었다. 엘의 등장, 개그 장면, 엘과 라이토의 첫 만남, 미사를 둘러싼 대립, 그리고 죽음까지. 엘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사랑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작품이 바로 데스노트가 아닐까. 배우 김준수는 신들린 연기로 엘의 내면, 그리고 감춰진 내면의 불안함과 결연함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렇기에, 나는 감히 데스노트의 뮤지컬 버전은 엘이 주인공이라고 칭하고 싶다.

 

 


홍광호, 라이토의 광기를 머금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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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광호 배우는 내가 뮤지컬 <데스노트>를 보게 된 이유였다. 김준수 배우에게서 캐릭터 성이 두드러졌다면, 홍광호 배우는 가창력으로 모든 것을 압도했다. 처음 등장하는 ‘정의는 어디에’ 넘버를 들었을 때, 강렬한 도입부에서 느껴졌던 그 웅장함을 잊을 수 없다. 초반 분위기를 휘어잡는 흡입력, 확 트인 발성과 압도적 성량을 감상하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경건히 손을 모으고 들었을 정도로.

 

 


 

 

그 유명한 홍광호의 <데스노트> 넘버 영상. ‘이것이 뮤지컬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내게는 실제로 그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뮤지컬을 본 의미가 있었다. 황홀한 기분에 젖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뉴스에서 넘버로 이어지는 흐름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데스노트의 힘을 깨달으며 점점 번져가는, 라이토의 은은한 광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순간, 그 공간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신념, 결연한 의지, 인간과 악마의 경계에 선 그로울링.

 

다만 영상과는 달리 공연에서는 부분적으로 개사가 이루어진 듯했다. 정확히는 ‘각오했어, 나의 희생’이 ‘각오했어, 작은 희생’으로 바뀌었다. 나는 공연을 보기 전, 영상을 통해 라이토가 자신의 정신적 희생을 감수하고도 악인을 죽이는 신념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봤다. 하지만 ‘나의 희생’에서 ‘작은 희생’으로 가사를 바꾸자 소수의 악인을 죽여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외부 환경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아 다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데스노트의 사용을 결심하는 것에는 라이토 내면적 변화가 더욱 크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여겼기에. 사소한 개사여도 넘버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또 다시 돌아올 데스노트에는 개사 전 가사가 쓰이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연기적으로는 라이토에게 ‘정의’가 곧 ‘위선’이나 다름없음을 잘 드러냈다. 그의 라이토 연기의 기반에는 선민의식이 자리한 듯했다. 자신을 선택된 인간이자 새로운 세계의 신으로 여기며 악인을 존재 가치도 없는 쓰레기로 판단한다. 하지만 사실 라이토는 선이 아니라 위선을 추구했을 뿐. 엘의 등장에서 그는 나를 거역하는 자는 곧 악이라는 흑백 논리를 펼치며 ‘내가 정의다’라는 가치관을 드러냈다. 또 자신을 미행했다는 이유로 형사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모습은 선악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린 위선자 그 자체였다. 홍광호 배우는 라이토가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라이토는 그저 ‘자신의 정의’ 아래에 세상을 무릎 꿇리고 싶은, 신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 어린아이가 너무 머리가 좋았기에 벌어진 비극이 바로 <데스노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홍광호, 김준수. 말이 더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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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과 라이토는 만나기 전부터 숨막히는 긴장감을 보여줬다. 1막 끝, “내가 바로 정의!”를 외치는 지점에서 입을 틀어막은 관객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죽음의 게임’ 넘버에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 합과 호흡이 빛을 발했다. 엘과 라이토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바로 그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그리고 내 심장은 결국 터져버렸다, 오고 가는 테니스공 사이에서 말이다.

 

 

 

 

‘놈의 마음 속으로’ 넘버는 가히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명장면이다. 특히 연출이 화려해서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장면이었다. 라이토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엘, 그리고 전환되는 테니스 코트. 공을 칠 차례가 오면 마치 게임처럼 테니스 코트의 라인이 빛난다. 그 오가는 긴장감 속에서, 장면이 갖는 에너지가 폭발했다.

 

 

“이건 진심인데, 당신이 키라가 아니길 바래요. 나한테는 처음 생긴 친구니까.”

“근데 넌 날 살인마로 의심하고 있다는 거잖아. 내가 정말 그렇게 보이니? 살인마로?”

“네.”

 


엘과 라이토의 구도는 이 장면을 통해 바로 알 수 있다.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답지 않다고 여기는 엘과, ‘도전을 받아주지.’라고 지지 않고 응수하는 라이토. 그 팽팽한 긴장감 속에 주고받는 호흡은 정말 두 사람이라서 서로에게 맞출 수 있다. 테니스 라켓을 격렬하게 휘두르면서 안정적으로 넘버를 부르는 것은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넘버가 끝난 뒤 얼굴에 맺힌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열정적이고 치열한 접전을 현장에서 모든 관객이 관전한다.

 

결국 그들은 입증했다, 공연이 매진될 수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두 역할의 의문점, 꼭 이래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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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두 역할이란, 아마네 미사 역과 라이토의 여동생 역이다. 특히 아마네 미사 역의 변화는 이번 공연 때 유난히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강력한 ‘불호’다.

 

장민제 배우의 가창력은 매우 훌륭했다. 특히 ‘생명의 가치’ 넘버는 정말 대단했을 정도로. 다만문제는 1막에서의 콘서트 장면이다. 백댄서와 함께 춤을 추며 마치 ‘인기 가요’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었는데 지나치게 길고, 불필요했다. 나는 다소 오글거리고 지루한 감정을 느끼면서, 임팩트 없는 루즈함을 참아야만 했다. 넘버의 가사도 아쉬웠다. ‘I’m ready’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 시점에서는 무엇이 준비됐다는 건지 잘 와닿지 않았으며 설령 이후의 관점에서 ‘키라를 만날 준비’라고 해석하더라도 흐름 상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역할에 억지로 넘버를 쥐여 준 느낌. 하지만 2막이 시작되며 미사 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이후의 흐름이 괜찮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1막의 등장 타이밍과 연출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아예 해당 장면을 삭제하거나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대체한다면 더 밀도 있는 장면 구성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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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라이토의 여동생 역은 미사 역할과 달리 그 존재 가치에 의문이 있다. ‘나의 히어로’ 넘버에서 배우의 가창력이 매우 훌륭했음은 사실이지만, 여동생의 존재가 라이토에게 영향을 준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굳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라이토가 여동생에게는 착한 오빠지만 데스노트로 살인을 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대조적으로 비춰질 수는 있다. 하지만 라이토의 이면은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보이는 착한 모범생 아들의 모습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여동생의 말이 아마네 미사의 콘서트를 가는 계기가 되지만, 기존 설정이 유명 가수이니 우연히 접했거나 원래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게는 콘서트 장면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정말 이 역할이 극에 꼭 필요했을까? 개인적으로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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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집중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선’의 존재이다. 작중에서 ‘선’은 계속해서 언급되며 특정한 의미를 형성한다.

 

첫 번째 의미, 인간과 신의 경계

라이토가 아버지와 갈등할 때, 선을 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선은 인간과 신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개인마다 각자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가 동의하는 규칙, 즉 법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정의를 합치시키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자는 죽어야 한다’는 라이토의 정의이며, 그는 신이 아니기에 이를 사회에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데스노트라는 힘을 사용해 인간과 신의 경계, 즉 선을 넘었고 자신의 신념을 강제로 실현했다. 선을 넘는 것은 이처럼 초월적 차원의 변화이자 인간으로서 결코 행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추측된다.


두 번째 의미, 개인이 갖는 정의의 한계(내적 갈등)

형사들이 키라 수사 활동을 계속할지를 갈등하는 장면에서, 히데 형사는 결국 수사를 포기하며 ‘선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즉, 그는 내적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정의 안에서는 가족을 저버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엘 역시 내적 갈등을 통해 ‘선’을 조절하는 장면이 있다. 그의 정의에서 사신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는 과거 인정될 수 없었지만, 결국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한계의 범위를 변화시켰다. 그 지점은 무대 위에서 선을 확장하는 직접적인 연출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엘은 자신의 한계를 넓히며 ‘사신이 존재하더라도 키라는 인간이며, 신은 삶의 의미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그를 반드시 체포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결국 갈등 속에서 내가 가진 정의의 한계에 굴복하거나, 그 범위를 확장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의미, 타인과 다른 정의의 경계(외적 갈등)

‘정의는 어디에’ 넘버에서, 등장인물들이 각각 네모난 선 안에 갇혀 있는 연출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마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형태로 여겨진다. 즉, 우리는 서로 다른 정의를 가졌기에 이념적 갈등을 겪고, 이 정의들이 부딪히고 맞닿아 또 다른 정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정의가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뮤지컬 <데스노트>는 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대사나 넘버에서 ‘선을 넘는’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키라의 행동과, 내적 혹은 외적 갈등을 겪으며 변화하는 개인의 정의를 보여주고자 했다.

 

 

 

운명을 거스른 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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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의 후반 30분은 다소 빠르게 진행된다. 미사가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하기 전까지의 흐름은 원작을 충실히 반영했지만, 그 이후의 내용은 사실상 오리지널 스토리로 각색되었다. 라이토는 미사가 붙잡힌 상황을 역이용해 렘을 협박하고, 결국 렘은 엘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쓰고 소멸한다. 이때 엘이 라이토를 총으로 쏘는 반전이 흥미롭다. 관객에게는 이 반전이 ‘혹시 렘이 시나리오를 바꿔 적었나?’ 하는 작은 희망으로 이어지지만, 이 역시 라이토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이미 다 끝났다는 말투로 허무하고 힘 빠지게 넘버를 부르는 홍광호 배우의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결국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며, 아무 의미 없는 끝이다’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엘의 저항은 이 모든 이야기에 유의미한 자취를 남겼다 하겠다. 그는 처음으로 데스노트의 힘에 거역한 인간이 되었다. 라이토는 엘에게 총을 달라고 하며 시나리오에 쓰여 있으니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시나리오상에는 엘이 라이토에게 총을 건네주고 라이토가 엘을 쏜다는 내용이 적혀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팔이 이끌리는 동작을 통해 데스노트의 힘이 작용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엘은 총을 자신의 손에 단단히 쥐고 말한다.

 

 

“난, 틀리지 않았어!”

 

 

그는 라이토에게 죽임당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자살로 생을 마친다. 혹자는 그의 죽음 자체가 데스노트에 쓰인 것이니 이미 타살로 볼 수 있지 않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인간은 죽기 직전, 데스노트에 적힌 대로 행동하게 된다. 그 운명에 거스를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엘은 최초로 이를 자각하고, 거부하여 운명을 개척한 인간이다. 이는 데스노트의 힘을 가졌던 라이토의 대척점에 선 엘의 캐릭터성과 부합하는 죽음이었다. 그는 끝까지 인간이었으며, 결코 신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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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토의 최후는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철저히 데스노트에 굴복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사신 류크의 변덕으로 인해, 신이 되려 했던 인간이 추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 갑작스러운 전개로 느껴질 수 있으나 홍광호 배우의 연기가 개연성을 간신히 되살렸다. 인간의 덧없는 삶을 표현한 원작과도 일치하는 결말이다.

 

이 뮤지컬의 결말은 허무하다. 이 허무함이 의도된 것이라 할지라도 개연성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최후에 남겨진 것은 운명에 저항한 ‘엘’의 작은 희망이다.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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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의 연출은 훌륭했으며, 특히 영상을 활용한 부분이 좋았다. 또한 웅장하고 중독성 있는 넘버와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가창력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인 엘과 라이토 역을 맡은 김준수 배우와 홍광호 배우의 연기는 작품의 몰입감을 극대화하여 관객들에게 황홀함을 선사했다. 이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다만 다소 갑작스러운 결말과 두 여자 캐릭터,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라이토의 의상이 아쉽게 느껴졌다.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인만큼 곧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보다 개선되어 더욱 전설적인 작품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나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은 뮤지컬 <데스노트> 후기와 함께 막을 내린다. 사랑해 마지않던 작품과 끝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다. 

 

그동안 내 글을 사랑해 준 이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를 전하며.

 

 

출처

오디컴퍼니 인스타그램

CJeS Culture 유튜브

 

 

변서연.jpg

 

 

[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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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 불루베리
    • "놈의마음속으로" 억 목소리가 다르네 했더니 홍광호배우가 아니네요ㅠ 기사는홍광호배우 자료는다른배우...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변서연
    • 불루베리영상에 오류가 있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수정되었습니다:)
    • 0 0
  •  
  • ㅇㅇ
    • 저도 에디터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거 같아요. 홍광호 배우님과 김준수 배우님의 연기는 그냥 황홀 그자체고 감동이었어요. 미사의 넘버는 여전히 좀 갸웃한 느낌이 있지요. 처음 봤을 때는 흐름이 갑자기 끊기는 느낌..? 확실히 길어서 더 루즈한 느낌도 있구요. 연출 부분이나 넘버 길이라던지 수정은 좀 필요할지도요.. 저는 동생의 의미는 나름대로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동생을 대하는 라이토의 태도가 점점 변하는 모습을 통해 악에 잠식되는 자신만의 정의에 취한 라이토의 모습이 극대화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곧 7월에도 올라오는 공연은 그대로일지 아니면 또다른 수정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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