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유러피안 재즈의 정수_Time Is A Blind Guide

토마스 스트로넨_Time Is A Blind Guide
글 입력 2024.02.0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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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Time Is A Blind Guide 공연 포스터.jpg

 

 

나에게 재즈는 <본 투 비 블루>, <라라랜드>, 그리고 <블루 자이언트>다. 재즈가 좋아서인지, 그 영화가 좋아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 속 재즈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물들의 서사가 음악에 담겨 전달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아직 내 플레이 리스트에 있는 이 재즈를 들으면 그 음악이 나왔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노르웨이의 드러머 겸 작곡가 ‘토마스 스트로넨’을 주축으로 결성된 5인조 현악 앙상블 ‘Time Is A Blind Guide’는 새로웠다. 재즈에 문외한이지만 평소 접했던 재즈와 달랐다. ‘Time Is A Blind Guide’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졌는데, 색소폰의 부재가 그 이유다. 재즈는 곧 색소폰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이들의 즉흥적인 연주를 보고 바꾸게 됐다.

 

재즈는 기본 코드를 중심으로 연주자의 즉흥성이 돋보이는 장르다. 재즈의 특징이 공연의 성격으로도 나타났다. 정장을 벗고 편안한 옷을 입은 연주자들을 보니 공연장 특유의 숨이 턱 막히는 분위기가 슬며시 사라졌다. 한 연주자는 외투를, 한 연주자는 얇은 셔츠를, 한 연주자는 반팔을 입었는데 2월 겨울의 어느 날, 잠시 계절을 잊은 듯했다.


모자를 눌러쓴 ‘토마스 스트로넨’이 말을 건네며 공연은 시작되었다. 그는 영어를 사용했고 나는 토익과 토익 스피킹을 준비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공연장 2층에 앉았지만 소리의 전달에는 이상이 없었고 보이지 않는 1층의 관객들이 웃을 때, 같이 미소를 지었다. 약간의 소리를 내며 내 눈앞에 있는 연주자와 보이지 않는 1층 관객과 공감을 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음악은 솔직하게 다가왔다. 이번 공연은 ‘Time Is A Blind Guide’의 신곡과 미공개 곡을 중점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잘 몰랐으니 그건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몰랐지만 이들의 연주가 솔직하게 전달된 게 놀라웠다. 연주를 들을 때만큼은 공감하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자연스럽게 공감의 우주선에 합류했다. 옆에 앉은 사람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같이 즐기고 있음에 ‘좋았다.’

 

 

[크기변환]TIABG 사진 (2).jpg

 

 

앞서 말한 새로움은 이들의 연주 방식에서 느꼈다. 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악기의 연주 방법을 거스르며 악기를 200% 활용했다. 튕기고, 긁고, 할퀴고, 뜯고, 두드리고, 돌린다. 피아노를 연주한 ‘아유미 타나카’는 건반을 두드리다가 자리에 일어나 건반 뒤의 피아노 줄을 뜯었다. 그 모습은 내장을 드러낸 그랜드 피아노를 잡아 뜯는 것 같았다. 연주와 연주자를 통해 음악의 신비로우면서도 음산한 느낌이 배로 전해졌다.

 

바이올린 연주자 ‘하콘 아쎄’도 그랬다. 바이올린을 사정없이 긁고 튕기는데, 마지막 바이올린 솔로 부분에서는 영화 음악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로 큰 긴장감이 울렸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가 떠올랐다. 그만큼 ‘Time Is A Blind Guide’의 공연은 음악과 함께 한 장면을 그려낼 정도로 깊고 넓은 감정을 담고 있다.

 

그 몫은 연주하는 이들 위로 비치는 사진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9년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고 현재는 풍경과 인물의 초상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안웅철’의 작품이 위로 비친다. 사진들은 바다, 파도, 하늘, 숲을 오가고 ‘안웅철’은 마냥 좋은 날씨의 풍경만을 포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즈와 더불어 관객들에게 장면을 그려낼 수 있는 권한을 준다.

 

 

[크기변환]KakaoTalk_20240205_141742502.jpg

 

 

<본 투 비 블루>, <라라랜드>, <블루 자이언트>와 같은 음악 영화(재즈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연주를 할 때의 인물들에게서 숨겨지지 않은 행복을 보는 게 좋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은 긍정적인 상황에만 놓이지 않는다. 음악과 꿈, 행복은 진부한 설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진부함이 좋다. 진부함만큼, 상투적인 것만큼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건 아직 모르겠다.

 

튕기고, 긁고, 할퀴고, 뜯고, 두드리고, 돌리는 이들의 몸짓과 연주가 끝난 후 슬며시 보이는 이들의 미소에서 ‘지금 이 순간 그럴 수 있음에’ 진심 어린 행복이 느껴진다. 우리는 앵콜이 있기에 마지막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워하며 박수를 친다. 진부함. 하지만 이 진부함으로 우리는 마지막까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진부한 행복과 진부한 앵콜이 만났지만 재즈의 새로움이 있던 ‘Time Is A Blind Guide’였다. 언젠가 누군가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위 영화들과 더불어 ‘Time Is A Blind Guide’를 말할 것이다.

 

 

 

박성준-컬쳐리스트.jpg

 

 

[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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