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스팔트에 뿌리내린 한 그루 나무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글 입력 2024.05.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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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다녀왔다. 정영선은 한국의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이다.

 

과연 조경을 전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은 전시관에서 조경이 담고 있는 ‘예술’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을까? 전시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가기 전까지 들었던 의문이었다. 보통은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 그 자체를 갤러리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시이다. 반면 조경은, 자연적인 땅에서 시작된다. 즉 자연을 캔버스 삼아 광활하게 펼쳐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경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실내 전시를 통해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경선에게 조경이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시를 관람한 후의 나는 이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사실은 이전에는 이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었으며, 앞으로도 공감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나는 조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이번 전시가 조경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작업이며 그 과정 또한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작은 규모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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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일부 스케치와 도면을 전시관 내 바닥 한가운데에 놓은 새로운 방식의 배치는 전시의 주제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었다. 관람객이 전시관 내부를 불규칙하게 거닐며 바닥에 위치한 정영선의 작업들을 하나하나 곱씹어가는 구조가 마치 사람들이 공원, 혹은 자연 속을 거니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더하여 이러한 불규칙적인 작품 배치는 자칫 많은 관람객으로 인해 한 곳으로 사람이 몰려 통행에 불편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 주었다.

 

그리고 조경의 기록들이 화이트 큐브에만 국한되어 있는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디자인된 ‘전시마당’의 정원 연출은 정영선이 중심이 되는 전시의 정체성을 바로잡아 주었다. 해당 정원은 전시를 관람하러 오는 관객이 전시관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주할 수 있으며, 전시관람을 마친 후에도 다시 지나치게 된다. 나는 이러한 동선으로 인해 같은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관람 후 그 자리에 위치한 정원이 가지는 의미와, 그 정원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과정이 새롭게 눈에 들어옴을 느꼈다. 어떤 곳에 나무가 심어지는지, 어떤 곳에 자연석이 배치되는지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닌 사람의 고뇌가 묻어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제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전시마당 정원, 그리고 종친부마당 정원의 연출은 그 무엇보다 해당 전시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 큰 역할을 기여했다고 본다.

 

이제 전시관 내 작품 배치가 아닌 전시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와서, 당시 내가 체감했던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인간의 능력은 그 한계가 없구나,’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능력이란 어떤 초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노력이다. 과학과 예술, 거기에 철학까지. 거의 모든 학문이 융합된 조경이라는 분야에 한평생 몰두해 온 인물의 삶을, 이 전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들여다보았다. 정밀하고 미세한 도면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기계가 아닌 인간의 손으로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작업을 실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경이로움이 들기도 한다. 작은 공간에 담기기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긴 노력이 깃든 생애가 너무나 커다랗게 느껴진다.

 

특히, 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해당 장소나 기업에 깃든 역사적 의미를 조경 작업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는 현대에 와서 그 연결고리가 약화된 공간과 인간 간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일회성이 짙은 장소의 머무름과 다수, 무명이 된 사람들의 교차는 현대인들에게 ‘정착’이라는 개념을 약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묵묵히 자연으로서의 역할에 머무르며 알게 모르게 자리하고 있던 나무와 돌, 풀과 꽃은 일상 속에서의 우리에게 머무름과 정착의 개념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이 말인 즉, 자연을 품은 조경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원초적인 안정감을 이 복잡한 도시 속에서, 혹은 딱딱한 건물 내에서 선물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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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역사가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발자취는 기억하거나 저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서 쉽게 휘발되고 만다. 기억하려는 노력이 먼저 존재해야지만 기억되는 것처럼, 그것들을 계속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남겨두기 위해서는 어떠한 장치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에 정영선 조경가가 평생을 걸쳐 이어온 조경작업이 포함된다고 보았다.

 

장소와 역사,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자연이었다. 맥락 없이 그저 무작위로 놓인 공원이 아니다.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 구성된 조경으로 하여금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를 염두에 둔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 안에서 사람들이 과거와 연결된 현재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정영선의 손을 거쳐 탄생한 도시 공간 속 자연에 감동하는 이유가 그곳이 그저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소의 맥락에 특별한 이야기를 부여하고, 그곳에 맞는 옷을 재단하는 재료가 자연일 뿐이다. 그 자연을 옮겨 심는 자가 바로 조경가이고, 정영선은 조경가이자 예술가로서 자연을 재료로 장소와 사람을 잇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지난 50여 년간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을 이어온 것에, 나아가 ‘한 땀 한 땀’ 자연을 만들어온 것에 감탄하며 관람을 끝마쳤다. 인간의 열정에는 한계가 없음에, 그리고 그 열정은 어쩌면 상상도 못 할 다수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음에 어째서인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의 열정이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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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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